음식을 잘 씹어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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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생활명상 즐기기

명상은 생각의 파문을 잠자코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

김성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0-06-23 16:21:18

아침마다 30분쯤 자리에 앉는다. 저녁 늦게 정좌하는 습관 때문에 아침명상 시간 만들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눈뜨고 물 마시는 일 다음에 ‘닥치고 정좌’를 붙박이 했다. 화장실에서 씻고 의관정제 따위를 앞에 두면, 아침명상 못한다.

그렇게 앉아서 무엇을 어떻게 할까? 한 마디로 말하면 방석에 척추 펴고 눈 감고 앉아서, 그냥 존재한다. 이것을 풀어 말하면, 눈 감고 내 몸의 이미지를 살펴보는 게 첫 순서다. 마음으로나마 주인의 다정한 시선을 받은 몸은 솔찮이 좋아한다. 잠자는 동안에도 덜 풀린 몸이 이완되는 느낌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왕이면 살짝 미소를 머금고 내 몸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것도 괜찮다. 그새를 못 참고 생각이나 기억이나 걱정이 여름날 모기처럼 윙윙대는 경우도 있다.

명상 중에 ‘생각이나 기억’을 보면 뭐랄까, 하나같이 낯익은 친구들이 나를 향해 악다구니를 질러대는 형국이다. 이것들은 참 대책 없다. 세상의 그 많은 제약회사 벌레 퇴치 약으로도 박멸되지 않는 모기나 파리 같다. 명상 중 일어나는 ‘생각이나 기억’들을 없애려는 마음은 ‘모기를 어떻게 멸종 시키지?’와 같은 화두(話頭)급 욕심일지도 모른다. 뒤집어 말하면 걱정할 일은 아니다. 화두는 언젠가 깨우쳐지는 대상이므로. 문제는 깨우쳐지기 전에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인류가 만약 모기 박멸을 포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만고불변의 진리로 끌어안은 사람은 ‘생각이 없으면 나도 없다’라는 무의식적 사고틀 안에서 생각과 기억 공장을 풀가동 중이지 않을까. 왜? 내가 없으면 안 되잖아! 내가 없으면 벌어놓은 돈도, 가족도, 명예도, 친구도 다 꽝이잖아! 그러니 ‘세상 없어도’ 나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해! 하지만 그런 분도 ‘모기가 없으면 나는 없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생각이라는 모기떼를 잘 내려놓지 못한다.

생각 한 숟갈을 꼭꼭 씹으면 마음이 건강해진다

며칠 전 아침명상 중에 모기 한 마리가 윙윙댔다. 진짜 모기가 아니라 ‘어떻게 그만 둘 것인가’라는 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는 존재 즉, 상위 인지(meta cognition)능력을 사용하곤 한다. 명상이 그런 순간이다. ‘어떻게 그만 둘 것인가’라는 내 생각과 파생되는 잡념을 스스로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일이다. 이런 내면을 촬영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이 내 생각을 바라보는’ 3~4차원의 입체 영상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은 이런 다면다층(多面多層) 구조다. 그것을 알고 활용하는 사람과 활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 자신을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다중 생명체로 보는 사람과 마룻장 같은 평면 생명체로 압착시켜놓은 삶의 속살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날 아침명상 중 떠오른 ‘어떻게 그만 둘 것인가’는 내가 다니는 회사의 퇴임에 대한 ‘내면의 모기 소리’였다. 이 내면의 모기가 보유한 필살기는 분신술이다. 잠결에 어른거리는 모기 소리처럼, 한 마리의 모기가 수십 마리의 음향효과를 낸다. 생각 또한 이와 같다. ‘어떻게 그만 둘 것인가’라는 모기 한 마리는 ‘내가 왜 지금 그만 둬?’ ‘두고봐,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알게 될거야’ ‘내가 팽 당한 걸까?’ ‘마치고 어디로 여행가지?’ 따위의 분신술을 발휘하여 수십 마리의 ‘생각 모기’ 떼를 만든다. 과거의 나 또한 ‘생각 모기’ 때문에 괜한 생피부를 긁어대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데카르트가 말한 ‘생각’이 설마 이것을 두고 말하지는 않았으리라. 그 ‘생각’이 이것을 두고 말했다면, 그의 명언은 이렇게 바뀌게 된다. ‘나는 망상한다. 고로, 존재한다.’

명상은 마음의 건강을 돕는 마음의 작업이다. 음식 한 숟갈을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은 대충대충 위장에 투척하는 것에 비해 건강효율이 훨씬 높다. ‘어떻게 그만 둘 것인가’라는 생각 한 숟갈을 잘 씹어 먹는 것 또한 같은 이치다. 그날 아침명상 내내 ‘어떻게 그만 둘 것인가’라는 주제에 집중했다. ‘어떻게 그만 둘 것인가’라고 자문하면 호수 위에 퐁당, 잔돌 던진 것처럼 기억이나 생각의 파문이 일었다. 나는 그것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이나 생각의 파문은 잦아들었고, 나는 다시 질문했다. ‘어떻게 그만 둘 것인가.’

그래서 해답을 얻었냐고? 그것은 밥 먹었는데 왜 살이 안찌느냐는 물음과 유사하다. 인생이 산수인가.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는 인구에 회자하는 경구가 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흙탕에 젖지 않는 연꽃처럼 /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경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각자 마음대로 풀이하면 된다. 본 원고의 주제에서만 살펴보건대 이 경구에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결과’가 없다. 나아가서 결과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의 기미조차 없다. 사자도 바람도 연꽃도 무쏘도. 그냥 ‘그럴 뿐’이다. 그날 아침명상 중에 떠오른 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사자나 바람이나 연꽃이나 무쏘가 그러하듯, ‘어떻게 그만 둘 것인가’라는 한 생각을 깊숙히 되물을 뿐이다. 비서실에 법인카드를 넘기고 사무실을 뒤로하는 순간까지 이 질문을 놓지 않는다면, 나는 내 인생의 생각 한 숟갈을 맛있게 소화한 셈이리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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