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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가 우리 정치권의 화두가 된 지 꽤 오래다. 대다수 국민도 이에 동의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70년간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개인과 기업 간의 불균형이 지나치게 심화된 것이 원인 제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 헌법 119조 2항에 의하면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국가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정부의 색깔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다. 진보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면 이에 더 적극적이고, 반대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을 보면 보수든 진보든 구분 없이 경제민주화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이 목격된다. 거기에 더 많은 표가 몰린다는 판단에서 기인한다. 우려스러운 점은 지나치면 역작용이 생겨나기 마련이며, 경제를 위축시켜 국가 전체의 파이가 줄어들어 분배의 몫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내일은 어떻게 되든 오늘만 잘살아 보자는 식이다.
경제민주화는 크게 세 개의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소득 재분배 차원의 접근이다. 소득 불평등을 전제로 가진 자의 소득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리고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세금을 줄여주거나 면제해 주는 것이다. 이에 더해 기본소득이라는 명목으로 국가가 전 국민에게 무조건 정기적으로 지급하자는 것이다. 한편으론 기초 연금, 청년 수당, 출산장려금, 실업 급여 등 다양한 맞춤형 선별 지원 방식도 속속 등장한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두고서도 보편적이냐와 선별적이냐를 두고 공방이 치열하다. 갈수록 대상자가 늘어나고, 지원 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진다.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에 이르기까지 경쟁적으로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확대하겠다고 분주하다. 문제는 이러한 행태들이 과학적 근거나 경제적 효과 검증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다수인 약자에게 돈을 준다는데 싫어할 리가 만무하다. 자연스럽게 정치 포퓰리즘이 만개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다. 이들에게 국가의 곳간이나 미래 세대에 대한 고민이나 근심이 실종된 지 오래다.
둘은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명목에서의 국가 개입의 확대이다. 특히 큰 기업일수록 불공정 혹은 지배력 남용이라는 올가미가 씌워져 경제적 활동이 제약을 받는다. 시장 강자들의 횡포에 대한 약자들의 저항이 힘에 부치자 국가가 개입해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다. 시장 경제의 원리 차원에서 보면 건전한 시장의 흐름을 왜곡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나 몰아주기 시비가 잦았다.
그러나 경제의 개방과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이에 대한 시비도 많이 줄어든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약자들의 불만과 불평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노동 시장에서는 전통적 약자인 노동자와 강자인 자본가의 마찰이 가장 뜨거운 감자다. 정부는 자본가보다 노동자의 편에 서기 일쑤다. 요즘같이 노동 시장에서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도 양측의 팽팽한 긴장감은 여전하다. 냉정하게 보면 노동자의 위상이 과거와 다르게 현저히 상승하였으며, 이 때문에 기업 활동을 접거나 해외로 도피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경제자유도가 높을수록 GDP 성장률 높아져, 경제민주화보다 경제자유화가 우선순위
셋은 경제에 관한 국가의 규제와 조정이다.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그 정도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나게 달라진다. 대부분 국가가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는 국가 주도의 경제 체제로 드라이브를 걸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선진화될수록 민간 주도로 방향을 선회한다. 자연스럽게 비대한 정부보다 날렵한 정부를 선호한다. 하지만 후진 경제일수록 정부 부처가 누더기처럼 이어 붙어 융통성과 효율성이 사라진다.
칸막이와 부처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민간을 옥죄는 건수가 증가하고 요령은 교묘해진다. 늘어나는 부처 혹은 공무원 수만큼 규제와 조정이 늘어날 것은 삼척동자도 인지한다. 정부 눈치 보거나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민간에서는 대관(對官) 담당자까지 두고 있다. 오죽하면 국내에서 일정 기간 활동하는 외국 주재원이나 특파원들도 이런 낯선 풍경에 혀를 차겠는가. 심지어 해외 나가서까지 주재국 정부를 상대하는 대관 직무가 있을 정도니 기가 찰 노릇이다. 큰 정부가 책임 회피나 도덕적 해이의 함정에 빠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경제민주화가 나쁘고 틀렸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에 대한 지나친 신봉이 자칫 만능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우리 사회에 권위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가 않다. 경제민주화로 완장을 차는 사람이나 관변 단체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도 수그러들지 않고 강화되기만 한다. 더 심각한 것은 경제민주화의 베일에 가려 이보다 더 상위 개념인 ‘경제자유화’가 실종되고 있는 점이다.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이 침해당하는 현상들이 비일비재하다. 우선순위가 잘못됨에 따라 개인의 창의력은 상실되고, 기업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파이를 키워서 나눠 먹는 것이 아니고, 있는 파이를 쪼개서 나누는 것에 혈안이 된다. 상대적 다수인 약자를 위한답시고 편 가르기를 서슴지 않고, 국가주의 혹은 전체주의 유혹에 신속하게 빠져든다. 일시적인 포만감이나 행복은 누리겠지만 머지 않아 모두가 망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정해진 순서다. 국가나 미래 세대들은 더 가난해지고 더 큰 절망감에 빠진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성장률과 경제자유도의 상관관계를 보더라도 자유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GDP 성장률이 높아진다. 경제자유도 1%가 개선되면 성장률이 0.3% 올라가고, 국가별 순위에서 10계단 상승하면 1.8%까지 올라간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하고 있는 국가별 경제자유지수를 보면 한국은 25위 수준으로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일본보다는 다소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다수 경쟁국에 비하면 아직 열위에 있다.
호주나 아일랜드와 같은 상위 국가 레벨로 올라가면 1.8〜2.1%의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현재 우리는 1인당 GDP 3만달러를 간신히 통과해 선진국 진입 문턱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기 위한 성장 동력이 고갈돼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자유화와 경제민주화 중 어느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하는지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경제민주화에 무게를 둔 나머지 경제자유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점을 내버려둬서는 경제가 살아날 리가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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