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 때 고구리 영토였던 유비의 고향 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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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탁군, 서진 때까진 한족의 땅·광개토태왕 시절 고구리 행정구역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0-11-02 18:53:51

<한서지리지> 기록에 유주의 속했던 군현(郡縣) 중 서진이 차지했던 땅은 5호16국이 난립했던 혼란기에 모두 북방민족에게 넘어갔다. 자료 부족으로 유주의 어느 군현들이 서진의 영토였는지 골라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삼국지 유비의 고향 탁군(涿郡)만큼은 서진에서 넘어간 군현임이 확실하다.

오호십육국 중 가장 강력했던 나라는 흉노의 일파인 갈족(羯族)의 후조(後趙, 319~351)와 저족(氐族)의 전진(前秦, 351~394)이었다. 다른 세력으로는 선비족 모용황이 세운 전연(前燕, 337~370)을 꼽을 수 있다. 아마도 유비와 장비의 고향 탁군은 당시 그들의 소유가 됐을 것이다.

당시 고구리는 고국원(331~371)·소수림(371~384)·고국양(384~391)이 통치하고 있었다. 후조와 전진과는 전쟁 없이 잘 지냈지만 모용선비족의 전연·후연과는 자주 부딪치곤 했다. 특히 고국원제 때는 모후인 주(周)태후가 모용황에게 인질로 잡혀가는 바람에 제대로 힘도 못 쓰고 끌려 다녔다.

북조의 최강자 전진이 동진과의 비수대전에서 참패하자 선비족 탁발규가 386년에 북위(北魏)를 세우고 후연을 멸망시켜 북조의 패권을 쥐게 됐다. 따라서 당연히 서진 관할의 일부 유주 땅은 북위가 차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유주 모두가 광개토태왕(호태왕) 때 고구리의 강역이 됐던 것이다.

이러한 근거는 1976년 평안남도 덕흥리에서 발견된 고분에서 찾을 수 있다. 고분의 천정에 있는 묘지명에는 영락(永樂) 18년(408)에 77세로 죽은 망자 진(鎭)이 생전에 역임했던 관직명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건위장군(建威將軍)·국소대형(國小大兄)·좌장군(左將軍)·용양장군(龍驤將軍)·요동태수(遼東太守)·사지절(使持節)·동이교위(東夷校尉)·유주자사(幽州刺史)”

훙(薨)과 영락(永樂)이라는 글자로 보아 망자는 호태왕의 제후급 신하였다. 통상 묘지명의 관직은 역임 순서대로 적는지라 마지막 벼슬이 유주자사였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전실(前室)에는 13명의 관리가 망자에게 보고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적혀진 지역명과 직함은 다음과 같다.

①연군(燕郡) 태수 ②범양(范陽) 래사 ③어양(漁陽) 태수 ④상곡(上谷) 태수 ⑤광령(廣寧) 태수 ⑥대군(代郡) 래사 ⑦북평(北平) 태수 ⑧요서(遼西) 태수 ⑨창려(昌黎) 태수 ⑩요동(遼東) 태수 ⑪현토(玄兎) 태수 ⑫낙랑(樂浪) 태수 등이다. 1명은 판독 불능상태다.

즉 유주는 호태왕 때 행정구역이었다. 주를 다스리는 자사(刺史)와 군을 다스리는 태수(太守)라는 직함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강단사학계는 자사와 태수는 중국 고유의 관직인지라 서진에서 유주자사를 역임했던 진이 고구려로 망명했다가 죽은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폈다. 그러나 <고구리사초략>의 기록에 따르면 그 논리는 어불성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위 지명과 <한서지리지>의 유주에 속해 있는 군들을 비교·분석해보면 어양과 상곡, 대군, 북평, 요서와 요동, 현토와 낙랑은 공통이다. 벽화에만 있는 지명은 연군, 범양, 광녕, 창려이며 <한서지리지>에만 있는 지명은 탁군과 발해군의 2개 군이다.

벽화의 범양은 <한서지리지>에서 유주의 탁군에 속한 범양현이 군으로 승격됐고 광녕군은 274년 서진에서 유주의 상곡군의 일부를 떼어내 설치했다는 연혁이 있다. 창려는 요서군의 교려(交黎)현의 이름이 바뀌었고 군으로 승격된 것이다. 즉 모두 <한서지리지>의 유주와 같다고 봐도 된다.

벽화의 연군은 <한서지리지>에서 유주가 아닌 연지(燕地) 또는 광양국(廣陽國)·연국(燕國)으로 설명돼 있다. 2만740호에 인구 7만658명의 작은 군이다. 이런 식으로 작은 시군을 왕이 다스리는 국(國)이라고 불러 혼돈을 야기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예로부터 한족들의 습성이다.

태수들의 지명이 덕흥리 고분벽화에 언급됐다는 의미는 그 군현들이 고구려 호태왕 때의 행정구역이었다. 태수들이 망자(유주자사)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보아 모두 유주에 속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서진 때까지 한족의 땅이었던 유비의 고향 탁군이 호태왕 때는 고구리의 땅으로 변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