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태왕 비문과 다른 삼국사기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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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태왕 비문과 다른 삼국사기 기록들

고구리인이 직접 새긴 호태왕 비문…삼국사기보다 730여년 앞서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0-11-09 18:07:26

삼국지 유비·장비의 고향 탁(𣵠)군은 서진 때 범양(范陽)군으로 개명됐고 이후 북방민족들에게 넘어갔다. 이상하게도 고구리 광개토태왕 때 행정구역인 유주로 편입되었음을 알려주는 벽화가 1976년 평남 남포시 덕흥리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중국사서에 관련기록이 없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기에 호태왕비문에 관련내용이 있는지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광개토태왕 이전에 고구리의 남쪽 유주 땅은 상당기간 다른 세력들이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국천왕 사후 황위계승에서 소외된 발기(發岐)가 요동을 공손탁(公孫度)에게 넘긴 이래 오랫동안 되찾아오지 못했다. 위장 관구검에게 도읍 환도성이 도륙당하기도 했고 고국원왕 때 모용황과 백제에게 요동·요서를 잃기도 했다.

이랬던 고구리에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인 광개토태왕이 나타나 마침내 영락대통일(永樂大統一)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그 과정은 현재 길림성 집안현에 우뚝 서있는 호태왕비에 상세하게 새겨져 있다. 광개토태왕은 영락이라는 연호를 썼기 때문에 영락대제라 불러도 무방하다.

먼저 비문 서두에 의하면 영락대제에게 붙여진 시호(諡號)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평안(平安)은 휘호(徽號)며 우리에게 익숙한 광개토(廣開土)는 글자 그대로 ‘땅을 개척해 넓혔다’는 그의 특별한 치적을 말하는 것이므로 광개토태왕이라기보다는 호태왕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호태왕 비문은 고려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보다 730여년이나 앞서는 기록이다. 종이로 된 『삼국사기』는 이미 그 원본이 없어진 반면에 돌에 새겨진 비석의 원문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또한 비문은 주체적인 사관을 가졌던 당시 고구리인들이 직접 돌에 새긴 소중한 역사자료다.

『삼국사기』에는 ‘광개토왕’이라고 기록돼 있고 자체연호사용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비문에 즉위 391년(신묘)~414년(갑인) 기국(棄國)으로 새겨진 호태왕의 재위년도가 392년(임진)~413년(기축) 훙(薨)으로 기록돼 있고 비문해석에 필요한 자료도 거의 없다.

참고로 공자가 <예기>에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천자가 죽으면 붕(崩), 제후는 훙(薨), 대부는 졸(卒), 선비는 불록(不錄), 서인은 사(死)”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비문에는 고구리 태왕의 죽음을 붕 대신에 기국(棄國), 승천(昇天) 등으로 새겨놨다.

반면에 일본 궁내청서고에서 잠자다 남당 박창화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온 『고구리사초략(高句麗史抄略)』에는 비문의 모든 내용이 상세 또는 간략하게라도 기록돼 있어 비문해석에 필요한 많은 자료를 제공한다. 여기에 깨져 없어지고 변조된 글자까지 원형대로 복원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비문에 따르면 호태왕은 5년에 비려(碑麗), 6년에 백잔(百殘), 8년에 식신(息愼=숙신), 9~10년에 왜와 14년에 왜구(倭寇), 17년에 후연(後燕), 20년에 동부여(東扶餘)를 정벌해 주변의 사해(四海)를 모두 복속시켰다. 그런데 과연 비문에 기록된 많은 전쟁 중 어느 것이 유주 관련 전쟁일까.

<삼국사기>를 읽었을 때 광개토왕 최고의 치적처럼 보이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다음 관미성 관련 기록이다. “원년(392) 겨울 10월, 왕이 병사를 출동시켜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을 공격해 점령했다. 그 성은 사면이 절벽이고 바다로 감싸여 있었다. 왕이 일곱 방면으로 병사를 나누어 공격한 지 20일 만에 성을 점령했다”

그런데 위 기록은 <고구리사초략>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돼 있는데 반해 비문에는 아예 그 내용이 새겨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관미성 전투가 비문에 새겨진 정복전쟁들보다 중요하지 않았거나 규모가 작았던 전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참고로 관미성의 위치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난공불락의 요새인 관미성의 함락소식을 접한 백제 진사(辰斯)왕이 놀라서 죽는 바람에 침류(沈流)왕의 아들 아신(阿辛)이 즉위했다. 침류왕이 죽었을 때 애첩 가리(佳利)는 연인 사이였던 시동생 진사를 즉위시켰다가 진사가 죽자 아신을 보위에 올렸다. 아신은 호태왕에게 계속 도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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