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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는 왕의 죽음을 단편적으로 기록한다. 예를 들어 ‘00년 00월 왕이 죽었다’는 식이다. 기록만 놓고 본다면 대부분의 왕은 자연사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특수한 경우에는 좀 더 구체적이다. 신하에게 살해되거나 또는 용의 출현에 빗대어 쿠데타 발생을 암시하는 경우이다.
무령왕도 마찬가지이다. 「삼국사기」는 523년(무령23) 5월 ‘왕이 죽었다(王薨)’고 짤막하게 기록한다. 사망당시 무령왕의 나이가 63세(461년 출생)임을 감안하면 자연사였을 공산이 크다.
「고구려사략」의 무령왕 독살 기록
그런데 뜻밖에도 무령왕이 독살당한 기록이 「고구려사략」에 나온다. 누가 독살한 걸까? 무령왕의 부인 연(燕)씨와 서자 명농(明穠-성왕)이다.
<안장대제기> 기록이다. ‘계묘(523년) 2월 사마(무령왕)가 한성으로 가서 좌평 국우와 달솔 사오 등에게 명하여 한수이북 주와 군의 15세 이상 백성을 동원하여 쌍성(쌍현성)을 쌓으라 명하였다. 사오의 처 백(苩)씨를 맞이하여 처로 삼고 3월에 도성으로 돌아왔다. 5월에는 사마의 처 연(燕)씨가 사오의 처 백씨를 투기하다가 사마를 독살하였다. 사마의 서자 명농은 상(喪)을 숨기고 스스로 즉위했다. 상(안장왕)이 사마가 제삿날에 사냥한 것을 싫어했는데 과연 명농이 비밀리에 아비를 죽였다.’
무령왕은 523년(무령23) 2월 한성(서울)에 행차하여 쌍현성(경기 파주)을 쌓는다. 이 내용은 「삼국사기」에도 나온다. 그런데 「고구려사략」은 덧붙여 이때 무령왕이 한성에서 사오의 처 백씨를 처로 삼았다고 기록한다. 이어 3월 무령왕은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돌아오고, 5월 연씨부인이 백씨를 투기하며 무령왕을 독살한다. 이때 서자 명농이 아버지 무령왕의 상(喪)을 숨기고 스스로 즉위한다(自立). 다시 말해 무령왕의 부인 연씨와 아들 명농은 한 통속이다.
연씨부인과 서자 명농
성왕(명농)은 왜 서자인가? 「삼국사기」는 성왕을 무령왕의 ‘아들(子)’로 설명한다. 적자(嫡子) 또는 장자(長子)가 아닌 그냥 아들(子)이다. 특히 서자는 왕위계승 서열과는 거리가 멀다. 성왕은 결코 왕이 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일본서기」 기록에 의하면 성왕은 502~505년 사이에 태어난다. 성왕은 무령왕이 즉위(503년) 전후에 백제 귀족출신 여성을 통해 낳은 아들이다. 바로 무령왕을 독살한 연씨부인이 성왕의 어머니이다.
무령왕릉 출토품 중에 연씨부인의 호칭을 알 수 있는 유물이 있다. 왕비의 은팔찌와 왕비의 지석이다. 무령왕 생전인 520년에 제작된 은팔찌 명문에는 ‘대부인(大夫人)’으로 나오고 무령왕 사후인 526년에 합장하며 새긴 지석 명문에는 ‘왕대비(王大妃)’로 나온다.
다시 말해 연씨부인은 무령왕 생전에는 왕비가 아닌 대부인의 칭호를 받고 무령왕 사후에는 왕대비(태후)의 칭호를 받는다. 이는 성왕이 무령왕의 정실왕비 소생이 아닌 것과 또한 연씨부인이 성왕의 어머니임을 설명하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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