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제국의 부활을 꿈꾼 성왕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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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제국의 부활을 꿈꾼 성왕②

사비 천도와 남부여 국호변경의 내막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0-12-22 12:40:01

백제 26대왕인 성왕은 무령왕의 아들이다. 이름은 명농(明穠)이다. 「삼국사기」는 ‘지혜와 식견이 뛰어나고 일을 처단함에 결단성이 있다(智識英邁能斷事)’고 기록했다. 군주의 자질을 타고 났다는 평가다. 「일본서기」는 ‘천도지리에 통달하여 그 이름이 사방에 퍼졌다(聖王妙達天道地理名流四表八方)’고 기록했다.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대단한 지식인이라는 평이다. 성왕은 사후의 시호이지만 「삼국사기」는 성왕을 ‘나라사람이 성왕이라 불렀다.(國人稱爲聖王)’고 적어 생전의 휘호이기도 했다. 바로 불교의 전륜성왕(轉輪聖王)이다. 「일본서기」는 ‘성명(聖名)’으로 썼다.

성왕의 출생 배경

원래 성왕의 아버지 무령왕에게는 따로 태자가 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순타(淳陀) 태자이다. 무령왕이 야마토(일본)에 체류할 때 얻은 야마토 왕실(또는 귀족) 출신 여성의 소생이다. 순타태자는 아버지 무령왕을 따라 귀국하였다가 무령왕이 백제왕에 즉위하자 태자에 봉해진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다. 왕실과 귀족간의 정치적 다툼이 배경이다. 그러나 순타태자는 백제로 돌아오지 못하고 서기 513년(무령왕 13년) 야마토에서 사망한다.(七年秋八月癸未朔戊申百濟太子淳陀薨-「일본서기」〈계체기〉)

성왕은 아버지 무령왕의 즉위 직후 태어난다. 대략 502~505년 사이이다. 어머니는 무령왕 즉위에 공을 세운 백제 귀족가문의 연(燕)씨 부인이다. 성왕은 배다른 형 순타태자가 야마토에서 사망하면서 자연스레 무령왕의 후계자가 된다.

사비 천도의 내막

성왕의 대표적인 치적은 538년(성왕 16년) 단행한 사비 천도이다. 한 국가의 천도는 하루아침에 용달차 불러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성왕은 최소 10년 정도를 준비했다.

그는 재위초기인 526년(성왕 4년) 웅진성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이듬해 대통사를 창건하는 등 웅진도성을 정비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당연히 물자와 노동력을 제공한 웅진세력의 불만이 쌓여갔다. 때마침 529년(성왕 7년)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해오자 이를 막기 위해 보병과 기병 3만을 출동시킨다. 그러나 오곡(서울시 강서구 오곡동) 전투에서 고구려에 대패해 2천여 군사를 잃는다. 이 사건으로 웅진세력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왕권조차 위협받게 되자 성왕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다. 그것이 바로 사비 천도다.

사비(소부리)는 지금의 충남 부여이다. 원래 사비 땅은 매우 습한 지역이다. 사람이 살 수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버려진 땅이다. 습한 땅을 단단히 다져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궁궐을 짓는 데는 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하다. 이 시기 「일본서기」에 사비세력을 대표하는 사택기루(沙宅己婁)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성왕은 사택 가문과 손을 잡고, 사택기루를 조정의 영수인 상좌평에 임명하고 천도 관련 업무 일체를 맡긴다.

고대 사회에 있어 도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다. 천도는 곧 중심의 이동이다. 지배세력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예를 들어 고구려 20대 장수왕은 427년 평양 천도이후 국내성 세력의 거센 반발을 경험했다. 신라 31대 신문왕은 삼국통합(통일) 직후인 689년 달구벌(경북 대구) 천도를 계획하다가 경주세력의 반발로 그만둔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왕의 사비 천도는 성공적이었다. 이 시기 문헌기록을 보면 웅진세력이 반발한 내용이 전혀 없다. 「삼국사기」가 성왕을 결단성 있는 군주로 평가한 대목은 새겨볼 만하다.

성왕의 사비천도는 이전의 웅진천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웅진천도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소실되어 발생한 외부적 요인의 천도라면, 사비천도는 성왕 스스로가 주도한 내부적 요인의 천도이다.

남부여 국호 변경의 의미

성왕은 538년 사비 천도를 단행하자마자 곧바로 국호를 남부여로 변경했다. 사비천도 직후 국가체제를 일신하면서 취한 국가 정체성의 천명이다. 성왕은 공식적으로 부여를 계승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부여의 기원은 해모수의 북부여(기원전 239~86년)이다. 고구려 시조 추모(주몽)은 북부여 왕족의 후손이다. 이어 해부루의 동부여(기원전 86년~기원후 22년)가 있다. 동부여는 대소왕 시절 고구려 3대 대무신왕에 의해 멸망당해 대소왕의 동생과 종제(從弟)에 의해 갈사부여(22~68년)와 연나부여(낙씨부여·22~494년)로 각각 분화한다. 마지막으로 연나부여는 고구려 21대 문자명왕에 의해 멸망당하며 만주지역 부여는 역사에서 사라진다.

백제는 북부여왕족 출신 위구태의 서부여(122~345년)가 기원이다. 서부여의 본거지는 대륙 요서지방이다. 서부여의 한 부류가 백가제해(百家濟海)하여 한반도 부여백제(부여기마족)를 세운다. 이 중 한 부류는 일본열도로 건너가 야마토(大倭·大和)로 재탄생하며(397년 응신왕), 또 한 부류는 한반도에 잔류하며 이후 한성백제를 접수한다(427년 비유왕).

성왕이 사비 천도를 단행할 당시 부여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없다. 백제 분국인 대륙 요서지방의 백제군도 수명을 다하며 성왕의 아버지인 무령왕 시기인 503년 요서백제군의 거발성은 폐쇄돼 웅진도성에 편입됐다.

성왕은 사비 천도를 단행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진 부여의 부활을 꿈꾼다. 남부여 국호변경은 부여의 계승차원을 넘어서는 실질적인 부여의 재건이다. 사비도성은 새로운 부여국의 탄생지이며 부활한 부여제국의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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