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제국의 부활을 꿈꾼 성왕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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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제국의 부활을 꿈꾼 성왕③

백제미녀 한주의 러브스토리… 성왕의 한강유역 상실이 설화 배경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0-12-29 11:25:38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덕양산)과 주변일대는 고구려 시절 왕봉현(王逢縣)이라고 불렸다. 왕봉(王逢)은 ‘왕을 만난 곳’이다. 또한 왕봉은 왕영(王迎·왕을 영접함)으로도 불리는데 같은 의미로 읽힌다.

왕봉(王逢)의 유래

「삼국사기」〈지리지〉 고구려편에 왕봉의 유래가 나온다. ‘왕봉현은 개백이라고도 한다. 한씨 미녀가 안장왕을 맞던 곳이어서 왕봉이라 이름하였다.(王逢縣一云皆伯漢氏美女迎安臧王之地故名王逢)’ 왕봉의 왕은 고구려 22대 안장왕을 가리킨다. 한씨 미녀는 출신과 이름을 알 수 없으나 왕봉을 개백(皆伯·백제 행정지명)이라 칭한 점으로 보아 한씨는 백제출신의 여인일 가능성이 높다.

덧붙여 「삼국사기」〈지리지〉는 달음성현(達乙省縣)의 유래도 소개한다. ‘달음성현은 한씨 미녀가 높은 산마루에서 봉화를 놓고 안장왕을 맞이하던 곳이다. 후에 고봉이라 이름하였다.(達乙省縣漢氏美女於高山頭點烽火迎安臧王之處故後名高烽)’. 달음성현(고봉현) 역시 왕봉현과 마찬가지로 안장왕과 한씨 미녀가 관계한다. 고봉은 경기도 고양시 중산동에 소재한 고봉산이다. 따라서 왕봉현과 달음성현은 고양시 일대의 고구려 행정지명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고구려 안장왕과 백제 한씨 미녀는 어떤 관계일까? 대관절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기에 왕봉현과 고봉현의 유래가 되었을까?

안장왕과 한주의 러브스토리

단재 신채호는 ‘해상잡록’을 인용해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관계를 「조선상고사」에 상세히 밝힌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구려 안장왕은 태자시절 장사꾼 행상을 하고 백제 개백현(皆伯縣)에 놀러간다. 당시 개백현에는 절세미인 한주(漢株·한씨 딸)가 살고 있다. 안장왕은 백제 순찰병의 눈을 피해 한씨 집으로 숨어 들어갔다가 한주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한다. 그리고 고구려로 떠나면서 고구려 태자신분을 밝히고 훗날 한주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개백현 태수가 한주의 미모를 탐하여 강제로 혼인하려하나 한주는 완강히 거절한다. 분노한 태수는 한주를 옥에 가누고 감언이설로 회유한다. 한주는 옥중에서 정몽주의 시로 잘 알려진 단심가(丹心歌)를 부르면서 절개 의지를 꺾지 않는다.

보위에 오른 안장왕은 한주를 구하는 사람에게 포상을 약속한다. 이때 안장왕의 여동생 안학(安鶴)공주와 사랑을 나누던 을밀(乙密)이 나선다. 을밀은 한주를 구해오는 조건으로 안학공주와의 정식 혼인을 요구한다.

을밀은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로 쳐들어간다. 때마침 개백태수가 생일 잔칫날에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 한주를 죽이려 하자 을밀의 군사가 들이닥쳐 한주를 구한다. 을밀은 개백현 일대를 점령하고 안장왕을 맞이한다. 이에 안장왕은 한주를 부인으로 삼고 을밀 또한 안학공주와 혼인한다.

설화의 역사적 배경

안장왕과 한주의 러브스토리는 조선의 춘향전과 모티브가 비슷하다. 안장왕은 이몽룡에, 한주는 춘향에 대비된다. 이 설화는 서기 529년(성왕 7년) 성왕이 고구려와 맞붙은 오곡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성왕은 오곡전투에서 군사 2000명을 잃으며 대패한다. 이 사건으로 성왕은 아버지 무령왕이 확보한 한강하류지역을 고구려에게 빼앗긴다. 또한 2000명 군사의 손실은 수도 웅진을 불국정토로 만들고자 했던 성왕의 꿈을 좌절시킨다. 전투에 참가한 군사는 웅진귀족세력이 제공한 병력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성왕은 통치력에 치명상을 입으며 사비 천도를 결심하게 된다.

오곡은 한강하류 이남인 지금의 서울시 강서구 오곡동이다. 또한 고구려 안장왕과 백제 미녀 한주 설화의 배경이 된 장소는 한강하류 이북인 경기도 고양시(왕봉현·오봉현) 일대이다. 이는 고구려가 먼저 고양시 일대를 점령하고 이어 한강 하류를 건너 강서구(오곡)를 점령한 사실을 반영한다.

백제 미녀 한주와 고구려 안장왕의 러브스토리는 성왕의 백제가 한강하류지역을 고구려에게 빼앗긴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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