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야성에 묻힌 불행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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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에 묻힌 불행의 씨앗

삼국통합을 잉태한 김춘추의 슬픔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2-18 09:52:52

의자왕은 즉위 이듬해인 서기 642년(의자왕 2년) 전국을 순행하며 백성을 위무하고 또한 사형수를 제외하고 죄의 경중에 따라 대사면을 실시하는 등 신왕의 즉위를 적극 알린다. 그리고 그해 7월 전격적으로 신라를 공격해 40개성을 함락시킨 뒤 8월에는 신라 대야성(大耶城)에 총공세를 가한다.

대야성은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이다. 백제에서 신라 수도 경주로 연결되는 최단코스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신라 24대 진흥왕이 대가야를 멸망시키며 흡수한 신라의 서쪽 심장부이다.

당시 대야성 성주는 김품석(金品釋)이며 아내는 김춘추의 딸 고타소(古陀炤)이다. 『삼국사기』 기록이다. ‘성주 품석이 처자를 데리고 나와 항복하자 윤충이 그들을 모두 죽이고 품석의 목을 베어 왕도로 보냈다.[城主品釋與妻子出降允忠盡殺之斬其首傳之王都]’

사실 김품석이 항복한 이유는 자신의 심복 검일(黔日)의 배신 때문이다. 검일은 김품석이 자신의 아내를 빼앗아 첩으로 삼자 앙심을 품고 백제로 전향한다. 대야성의 모든 정보를 백제에 제공하고 대야성 성내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다. 대야성의 신라군은 일거에 무력화된다. 윤충(允忠)은 항복한 김품석 처자를 죽인다. 그리고 시신을 사비도성으로 보낸다.

의자왕은 김품석과 고타소의 머리를 사비도성 감옥 바닥 아래에 묻는다. 이는 과거 관산성(충북 옥천) 전투에서 신라 하급장수 고도(苦都)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한 성왕에 대한 복수이다. 효수된 성왕의 머리는 백제로 돌아오지 못하고 신라관청 계단아래에 묻힌다.

백제의 대야성 승리는 신라에게 치명상이다. 백제는 확실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계속해서 신라를 압박했다. 반면 신라는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방향을 모색한다. 당시 신라는 27대 선덕여왕의 치세로 김춘추와 김유신이라는 걸출한 두 영웅이 선덕여왕을 떠받치고 있었다. 김춘추는 외교전에 사활을 건다. 당과 고구려는 물론이고 백제의 전통적인 우방인 야마토(일본)에까지 손을 내민다.

특히 딸 고타소의 죽음을 접한 김춘추의 비통한 모습이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춘추는 딸의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서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사람이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하였다.[春秋聞之倚柱而立終日不瞬人物過前而不之]’ 김춘추는 넋이 나간 사람마냥 비통한 심정을 가누지 못한다.

그로부터 6년 후인 648년(의자왕 8년) 김유신은 대야성을 되찾는다. 이때 포로로 잡은 백제 장수 8명과 고타소와 김품석의 유골을 맞교환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교환이다. 김유신은 고타소의 유골을 찾아 조금이나마 김춘추의 아픔을 달래 준다.

대야성 전투 결과는 ‘복수가 복수를 낳는’ 한편의 막장 드라마이다. 의자왕은 성왕의 복수를 하고, 김춘추는 딸의 복수를 한다. 특히 김춘추의 복수는 삼국통합(통일)의 씨앗을 잉태하고 결국 백제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부모에 대한 복수보다 자식에 대한 복수의 강도가 더 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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