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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죽음 판정을 받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우가 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그런 경우였노라는 사람은 두 번 만난 적 있다. 이 두 분을 만나는 시점은 다르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죽음을 경험하기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증거를 댈 수는 없지만 우리 주변에서 이런 경험담은 은근히 회자되기도 한다.
3년 전쯤, 잘 돌아가던 우리집 김치 냉장고가 고장난 적이 있다. 11년 8개월 동안 웅웅거리는 소리를 주방에 쉼없이 발사하던 기계였다. 일정하고 단조로운 진동음 속에 살다보면 그 소리가 주방과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둔감해진다. 냉장고에서 바닥에 물이 흘러내림으로써 그 작동이 멈췄음을 알게 된 아내가 말했다. ‘요즘 냉장고는 10년을 넘으면 사람 나이로는 100살을 넘긴 거라던데, 이것도 수명이 다 됐나봐.’ 내가 말했다. 엊그제 산 거 같은데 벌써 10년? 와아, 그새 10년이 넘었구나.
기계의 전원 끄기와 사람의 명상
생명이 끊어진 기계에 대한 나의 대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동네 수퍼 마켓에서 대형 쓰레기 처리용 딱지를 사 붙여서 재활용 쓰레기장 앞으로 옮겨 놓는 것이고, 또 하나는 판매처에 전화해서 사후 서비스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도저도 선택하지 않았다. 언젠가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루 정도 전원 코드를 뺐다가 다시 꽂아보라는 얘기였다. 어차피 수명이 다했다면 이런 시도라도 해보고 버리든지, 서비스 신청을 하든지 하고 싶었다.
전원 코드를 뺐다가 18시간 정도가 지난 후 다시 꽂았다. 녀석을 내다버리기 전, 사실상 마지막 과정을 형식적으로 치르는 셈이었다. 당연히 무슨 기대가 있을 리 없었다. 그동안 나는 김치 냉장고의 소생을 위해서 해볼 만큼 해봤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전원 코드를 꽂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김치 냉장고가 다시 웅웅거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녀석이 작동 정지했을 때, 나는 전원을 끄기도 하고, 엔진 부분을 손으로 쾅쾅 때려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냉장고 몸체를 발로 차보기까지 했었다. 우주 비행선에서도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면 그 부위를 꽝꽝 두들겨본다는 말이 떠오른 때문이었다. 나는 혹시 냉장고 깊은 곳에서 웅웅거리는 그 소음이 들려올까, 귀를 세우고 숨을 죽이곤 했다. 그러다가 아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사람 나이로 100살이 넘은 녀석이라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제 미련을 버려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녀석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전기 공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몸소 경험하는 수수께끼여서 더욱 신기하고 놀라웠다. 갑자기 작동 중지한 냉장고가 전기 공급을 끊은 상태에서 18시간을 보낸 후 다시 제 기능을 되찾게 되다니. 그로부터 3년. 오늘도 그 김치 냉장고는 여전히 나지막한 저음을 흩뿌리며 돌아가고 있다.
사람과 기계를 등치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소위 죽음 경험(했다고 생각하는)자의 소생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기계에서는 심심찮게 일어난다. 어쩌면 흔한 일이다. 모바일 폰 같은 경우, 전원 끄기를 통해 잡다한 쓰레기 정보를 없애곤 한다. 그러다보니 최근에 나오는 것들은 일정 시간이 되면 전원이 꺼졌다가 켜지는 상태를 자동적으로 발생시키는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지속적이고 일방적인 전류의 유입 혹은, 흐름을 제로화함으로써 기계의 내면을 완전 휴식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명상이나 멍때림, 그리고 수면, 이 세 가지 현상은 얼핏보면 ‘전원끄기’를 닮았다. 하던 일이 뚝 끊어지듯 멈추는 현상이나, 내외적인 작동 중지를 거쳐 내면의 질서를 회복시켜주는 현상이 그렇다. 이 현상을 겪고 나면 (일반적으로) 사람이든 기계든 생기를 되찾게 된다는 점도 닮은 요소다. 홍익학당이라는 명상 수련터를 운영하는 윤흥식 선생은 이렇게 ‘모든 것이 꺼진 상태’를 불교 용어로 ‘열반’이라고 한다. 초기불교에서는 수행자의 마지막 경지라고 하는 ‘열반’을, 그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늘 경험할 수 있고, 개념만 익히면 ‘수시로 경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18시간의 ‘전원 끄기’를 우리집 김치 냉장고의 ‘명상’ 혹은, ‘열반’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신의 모바일 폰이 버벅거릴 때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하면 대체로 그런 권유를 받게 될 것이다. ‘전원을 완전히 껐다가 켜보세요. 그래도 상태가 안 좋으면 한번 방문해 주시겠습니까.’
자신이 의학적으로 죽었다가 깨어난 경험자라고 하는 두 분 중 한 분은 교통사고였다. 깨어서보니 의사는 사망 진단을 내렸고, 가족은 장례 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깨어난 이후 벌어진 상황은 상상에 맡기겠다. 의식이 말끔히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자신이 ‘다른 여자’가 되었음을 알았다. 과거의 기억도 또렷하여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명백하게 대비해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보는 자신은 아이들에게 쨍쨍거리는 목소리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남편만 보이면 뭔가를 시키느라고 눈알을 굴리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소위, 두 번째 생이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누구에게도 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표현은 지나친 겸손이다. 그녀는 어디에서든 일이 보이면 ‘그냥 하는’ 사람이었다.
명상의 궁극적 상황을 유사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수면은? 멍때림은? 나는 이 세 종류의 생리적 현상이나 공통점 등을 미적분할 생각은 없다. 다만, 당신이 혹시 이 세 종류 중 어느 한 가지라도 필요한 상황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을 권유하고 싶다. 여기에서 가장 적극적인 작업은 물론 명상이다. 몸을 멈추고, 눈으로 보려는 습관을 멈추고, 냄새나 소리나 감촉을 따라가는 욕망을 멈추고, 그저 가만히, 마음의 전원 끄기 상태로, 그냥 존재해보는 것. 그러므로, 일단 몸부터 멈춰보라. 아니면, 멍때리기도 좋다. 수면의 행복은 강조 포기하겠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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