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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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예술과 인생

화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을 생각하며

김수영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3-05 09:40:40

임권택은 한국 영화를 세계만방에 위세를 떨치게 만든 위대한 영화감독이다. 학력은 최근 러시아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김기덕 감독과 같이 중학교 중퇴의 경력이지만 그가 만든 영화를 보면, 세계 그 어느 감독의 영화보다 뛰어난 영상미와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의 독창적인 예술 감각으로 만든 ‘취화선’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취화선’은 2002년에 개봉한 작품으로 칸느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위대한 작품이다.

임 감독은 일찍이 1962년에 한국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만들어 대흥행을 했으며, 일제시대 조선 청년들의 조국애를 그린 ‘장군의 아들’과 판소리를 주제로 만든 영화 ‘서편제’라는 놀랍고 위대한 영화를 만들어 세계 영화계에 일대 혁명을 가져 온 한국의 자랑이자 존경스러운 감독이다.

‘취화선’은 술에 취한 화가로 그림의 신선이란 뜻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조선시대(1850년대) 위대한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을 주제로 삼았다.

영화 ‘취화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계천 거지패들에게 얻어맞고 있는 장승업(최민식)을 김병문(안성기)이 구해준다. 김병문은 승업을 역관에게 소개하여 궁궐의 허드렛일을 하게한다. 승업은 잡일을 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는데 이 그림을 본 김병문이 훌륭한 화가라는 뜻의 오원(吾園)이라는 호를 지어준다.

장승업은 타고난 재능으로 최고 화가로의 명성을 얻고 궁궐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인 승업은 궁궐에서 갖가지 행사를 그려 내는 것이 견디기 어려워 궁궐을 도망쳐 나온다. 그는 궁궐에서의 구속적인 화풍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화풍과 함께 자유로운 생활이 그리워 전국을 방방곡곡 떠돌아다니면서 술과 그림에 취해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가 사랑한 기생 매향(梅香)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승업은 자신이 그토록 도달하려는 경지에 오르지만 어느 날 의문 속에 홀연히 세상을 떠난다.

영화에서 승업 역할을 맡은 최민식의 대단히 매력 있는 연기와 임권택 감독의 탁월한 영화를 이끌어 가는 기법과 영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마지막 장면인 인천의 바닷가 보랏빛 해초가 가득한 길을 괴나리봇짐 하나를 둘러메고 터벅터벅 외로이 걸어가는 장면은 너무도 아름답다.

이 장면은 고고한 미술작품의 그것처럼 감동적이어서 아직도 눈에 선하다. 또한 하얀 마른 갈대가 바람에 휘날리는 호젓한 바닷가에서 기생 매향과의 열정적인 장사장면은 그 어느 영화에서 보지 못한 독특한 장면이라 임권택 감독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장승업의 자유분방한 미술가의 세계를 엿볼 수 있으며 화가들의 생리와 취향, 그리고 인생을 느낄 수 있었다.

화가의 자유로운 예술가적 영혼은 정해진 규칙과 틀에 얽매여 사는 것을 거부한다. 자신의 영혼과 육신 속에 스며있고 잠재해 있는 이미지와 영감을 화폭에 쓸어 남김없이 담아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면서 거기에 생의 모든 것을 걸고 사는 것이 화가이다.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인 폴 고갱이 은행원으로서 평범하고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나이 40대 중반에 남태평양으로 간 것도 그림을 통한 일상에서의 일탈과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취화선의 장승업 또한 다소 과장된 것이 있을지라도 자유분방하고 나그네 같은 삶, 집시들처럼 떠돌이 생을 살아가는 행복감이 지고지순한 작품을 뿜어내는 것이리라.

영화를 보면서 조선시대 화가의 한 사람이 이승에서 아름답게 살다 간 운명을 보여 주는데, 예술을 하는 인간의 심리를 너무도 아름답게 표현한 것에 필자는 매력을 느끼고 동질감을 가졌다.

내 주위의 화가들도 역시 장승업 못지않은 자유분방한 생을 살아가는 화가들이 많다. 아침에 느긋하게 잠에서 깨어나 화실에 나와 담배연기 속에 화폭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감을 표현할 위대한 작품을 구상한다.

하지만 귓속에 아내의 돈타령과 바가지 소리가 쟁쟁하고, 인사동 화랑에 그림이 걸려 있지 못하고, 작품을 판매할 방법과 기회가 없으니 다시 작품 제작을 포기하면서 세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코로나로 온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고 거리의 점포마다 임대간판이 붙어 있는 이 난세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고 찌들어진 생활과 암울한 하루하루가 괴로워 다시 깡소주에 몽롱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화가들이 너무도 많다.

돈과 무관하게 시대를 초월하며 오로지 예술만 생각하면서 작품만 그리면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고통과 질곡의 시간이 어서 지나가고 이 나라의 미술계가 눈부시게 꽃피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김수영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