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한과 설움을 농축시킨 <파친코>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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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의 세계적 히트에 박수를 보내며

김수영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3-18 09:20:17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최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노벨상 후보까지 점쳐지는 재미교포 이민진의 소설<파친코>의 서두다. 글의 내용을 한마디로 함축하면서 내뱉는 이 말로 우리는 같은 민족으로 동질감과 역사에 내동댕이쳐진 불쌍한 백성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있다.

우리민족이 지도자를 잘못 만나 수난과 희생을 겪은 것은 이 소설의 서두처럼 역사가 민족을 망쳐 놓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이 있다.

1592년 선조25년 임진년 4월30일 왜가 부산 동래 항에 쳐들어오자 선조 임금은 한양의 백성들을 내팽개치고 임진강을 건너 평안도 의주로 피신했다. 또 1637년 병자호란 때는 물밀듯 북쪽에서 밀려오는 청나라의 침략군에 인조는 바다 건너 강화도로 피신하려다 그마저 시간이 부족하여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는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굴욕을 당하던 인조의 처참함.

어디 이것뿐이랴. 역사의 굴레에서 백성들의 수난과 피눈물 나는 고통은 모두가 하늘의 뜻이라며 그 질곡의 세월을 한으로 참아내며 살아가는 민족의 기록은 여기저기 소설과 다큐멘터리에서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

이민진의 <파친코> 역시 4대에 걸친 수난의 역사를 매우 차분하게 관조하며 아름답고 놀라운 서사시로 엮어내는 감동적인 대하소설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 재직 당시, 그가 가장 국민들과 함께 하고 싶은 소설 3개중 하나로 이 작품을 추천했다. <파친코>는 2021년 현재 전 세계 40개 언어로 출판됐고, 2017년 뉴욕타임즈와 영국의 BBC방송 등 수많은 언론에서 “올해의 기장 빛나는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민진은 1970년 함경도 원산 출신의 아버지와 부산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신을 2개의 코리아, 즉 ‘남북의 아이’라고 불렀다는데 일곱 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이민 가 미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영어 이름 대신 어릴 때부터의 한국 이름을 고수한다.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미국에서는 아주 가난했다고 한다. ‘쥐가 나오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다. 빠듯한 집안사정에도 부모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자신의 노력으로 예일대 역사학과에 들어가게 되고, 처음엔 변호사로 그리고 작가로 활동한다.

1989년 예일대 3학년 시절 이민진은 미국인 선교사의 강연으로 재일동포의 존재와 비극적인 역사를 처음 알게 된다.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는 여기에 아주 관심이 많았고,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여러 초안을 쓰지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 2007년 남편이 일본으로 발령이 나서 함께 가게 됐습니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 수십 명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조선인들은 역사의 희생자이지만 개개인의 역사 또한 복잡하고 광활했습니다.” 그는 요즘 책의 인기가 치솟자 여러 언론에 인터뷰로 바쁘다.

삶은 모두에게나 고통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에게는 더욱 가혹했다. 그들은 그저 자식만큼은 자신들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이었지만, 시대는 그들의 평범한 소원을 들어줄 만큼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가난한 집의 막내딸 양진, 부산 영도의 기형아 훈이, 그의 딸 선자, 선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낳은 아들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모자수의 아들인 솔로몬에 이르는 한 집안의 치열한 역사, 뼈아픈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차별받는 이민자들의 투쟁적 삶의 기록, 유배와 차별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고향과 타향, 개인의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인지 질문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 여성은 강인한 어머니이자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편으로는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한 여성의 삶을 안쓰럽게 만드는지도 보여준다.

왕년의 히트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우리민족의 수난을 일재시대의 배경으로 했다면, 이 소설은 토지의 속편이라고 칭해도 좋을 것이다.

이 소설이 히트를 하자 최근 미국 애플 TV방송에서는 <파친코>를 드라마로 제작 중에 있다. 한국배우 이민호가 상인인 한수 역을 맡았고, 김민하가 순자 역, 미국배우 진하와 나오미 역은 재미 일본인 배우 안나 사웨이가 맡았다. 또 영화 ‘미나리’로 세계적인 찬사와 각종 영화제 조연상을 휩쓸며 수상하는 한국의 중견배우 윤여정도 나온다.

최근 한국인 문화 파워가 세계에서 빛나는 성과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파친코>도 그 중심에서 다시 빛나고 있다. 부디 이 소설이 노벨문학상으로 까지 찬란하게 빛나는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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