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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열쇠 시즌2’···부국부민(富國富民)의 길

1인 질서 확장기반 인류 공통가치 선의(善意) 공유

[대한민국 번영의 지혜<52>]-제4장 제국주의는 없다 : 1인 나라(2)

배타적 문명의 파국 막은 양심···1인 다극화 보편적 도덕 불문율

선험적 선의 누구나 본유(本有)···초국질서 떠받치는 1인 주춧돌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05 00:02:28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 ⓒ스카이데일리
[전편에 이어]
 
Q. 가장 보편적이라는 양심의 도덕률이 글로벌 문명과 조화하는 방식은
 
A. 인류의 문명은 지식이 쌓은 거탑이다. 경험의 축적이 지식이다. 인류의 경험이 다양하게 쌓일수록 화려한 문명이 꽃을 피우지만 동시에 문명 간 배타성이 커진다. 문명이 이성이라는 의식의 본질에 울타리를 치기 때문이다. 결국 문명의 자양분인 지식은 스스로 장벽을 쌓으면서 동시에 장벽을 허물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배타적 이타성’이 구현된다. (438쪽 : 문명은 경험의 장벽이지만 이성의 거울이다. 수없이 쌓아 올린 경험의 문명 속 본질에 이성이 똬리를 틀면서 존재하고 있다) 문명과 이성은 대칭적이다. 이성은 자신이 실존적으로 실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개연성을 문명이라는 대상의 실존재를 확장하면서 부정하는 변증운동을 해 왔다. 이성의 치열한 생존성이다. 이성의 자존감에 문명의 주춧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문명은 인간 자신을 투영시킨 거울이다. 인류는 문명을 통해 존엄성을 확인해 온 역사를 거칠게 썼을 뿐이다. 인류의 찬란한 문명은 곳곳에서 패권국가가 자랑하는 배타성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길항하는 강력한 보편성이 이성과 한 그릇에 있는 양심이다. 양심은 인류 전체에 가장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초강력 불문율이라고 했다. 문명의 배타적 역사가 양심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일으켰다. 다행히 문명은 양심을 멀리하지 않았고 양심은 문명을 품었다. 경험은 문명과 이성 사이를 오가며 매개 역할을 해 주었다. 이성의 자기역동성은 경험을 매개체로 삼아 한 손에는 양심을, 또 한 손에는 부가가치를 들고 인간의 자존감을 확대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외견상 이성은 나 홀로 자유가 모인 모래알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네트워크로 무한히 엮인 다극화 형상이다. 이성에 반드시 필요한 양심과 부가가치는 상호 길항하면서 여전히 보이지 않게 글로벌 질서를 움직이고 있다.
 
Q. 비양심이 지배하는 글로벌 질서의 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A. 인간에게 양심과 비양심은 함께 녹아 있다. 둘은 분리해서 설명하지 못한다. 유무상생(有無相生)이나 유무합일(有無合一)의 원리처럼 양심 속에 비양심이, 비양심 속에 양심이 각각 꿈틀거린다. 글로벌 질서를 치열한 이권투쟁의 장으로만 보면 비양심이 지배하는 혼돈처럼 보이는 것이 틀리지 않다. 하지만 인간 자신을 부정하는 편협한 단견이다. 온갖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글로벌 질서의 축에는 비양심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이권이 배타성을 갖지만 타자와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면 책임·사랑을 실현하는 양심 속에 이권이 자리한다. 전쟁조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최대의 이권 싸움이기에 양심 에너지가 강열하다. 이권에 잠재된 양심과 비양심은 모든 대칭의 원리처럼 앞뒤가 하나로 붙어 있는 동전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권의 표식인 돈이 선악을 공유한다고 했다. 양심·비양심을 품은 돈이 글로벌 질서자의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다. 돈은 인간과 상호작용하면서 양심과 비양심을 오가기 때문이다. (456쪽 : 전혀 다를 것 같은 현자와 사탄의 공통점은 공히 돈이 갖고 있는 미학을 외면하거나 모른다는데 있다) 현자는 돈의 추함을 모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잘 안다. 동시에 현자는 돈이 갖고 있는 미학의 본성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현자는 돈의 추함을 알기에 탐진치(貪瞋癡)의 본성을 잠재우는 방식으로 진선미(眞善美)의 본성이 드러나도록 한다. 양심의 진선미와 비양심의 탐진치는 시소를 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양심을 잠재우면 양심은 저절로 나타난다. 양심은 비양심을 반추하면서 현실로 구현된다. 사탄은 추함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만 아니라 허상으로 포장하기를 잘한다. 사탄의 비양심이 지배하는 것 같은 글로벌 질서는 허상이다. 비양심은 질서를 형성하지 못한다. 인류의 질서 축은 1인의 의식이 전체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치는 양심을 기반으로 한다.
 
Q. 양심적 수단이라는 돈이 국제질서에서 갈등의 주요 원인인 것 같은데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고윤석] ⓒ스카이데일리
 
A. 돈은 수동적 흐름을 타는 것 같지만 돈 스스로 주관적 흐름을 이끈다. 돈은 중간자이면서 주관자 역할을 동시에 하지만 인류 전체가 소망하는 소유의 욕심 때문에 거의 주관적 인격을 갖고 움직인다. 인간의 의식이 돈에 심어져 움직인다는 것이다. 비양심이 깃든 돈에는 중간자 역할이 전부다. 그 돈은 인류와 어울리지 못한 채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거나 부가가치 효율이 낮다. 반면 양심이 스민 돈에는 주관적 신념이 강하게 깃든다. 돈은 인간의 인격이 스며든 인격체처럼 움직이며 스스로 부가가치를 순환시킨다. 초국의 질서에서 이 같은 돈이 어떻게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인류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돈은 신성에 버금가는 순수 절대이성까지 포괄하는 능력을 지녔다. 인류가 역사 이래 선호해 온 순수 절대이성은 인간 자신의 실존을 확인할 수 있는 지름길인 선의의 실천이다. 이는 양심이 살아 꿈틀거리는 네트워크에서 확인된다. 문명과 한 덩어리인 돈이 추한 듯 보이지만 진리의 최고봉에 서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 인간의 실존은 없다. (454쪽 : 돈은 얼마든지 진리의 최정점에 설 수 있고 서 왔지만 돈을 비판하고 증오하며 미워만 하는 사람들에 의해 잘못 옹립됐다) 돈의 글로벌 질서가 비양심을 대변하는 것으로 오인되면 인간은 스스로 실존을 부정하게 된다. 게으르고 무능력하며 태만한 개인들의 한풀이 속에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진다. 돈을 비양심의 질서로 단정하거나 몰아세우면 악의 유혹에 빠져 있거나 악과 동거하는 중임을 자각해야 한다.
 
Q. 선의가 충만한 초국적 질서가 1인 나라의 의미와 갖는 연관성은 무엇인지
 
A. 자연상수인 오일러의 수(e) 공식을 보면 허수와 지수 그리고 삼각함수가 한 가족으로 엮인다. 오일러 공식이 신의 방정식이자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 이름 붙여진 배경에는 지수의 범위를 허수가 포함된 복소수까지 확장한데 있다. 허수는 곱해서 음수가 되는 수다. 지수조차 곱해서 음수가 되는 식의 발견은 인류의 지적 역사를 근본부터 바꾼 창조에 가깝다. 오일러 스스로도 ‘창조주의 언어’라고 했을 정도다. 오일러가 발견한 진리는 선의이고 그 선의는 풍요로운 인류 문명에 기여했다. 1인의 의지가 초국의 선의에 기여하는 것도 이와 유사하게 벌어진다. 역사는 이런 창조주의 기적을 다뤄 왔다. 그 역사가 대부분 종교를 관통해 왔지만 선의가 초국의 질서에 관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절대자, 예언자, 구원자 등으로 불려 온 1인의 선의는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인류에 미쳐 왔다. 수십억명이 선의의 질서를 따른다. 수천년 간 선의가 지배해 온 의식의 교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인류는 선의를 완성하는 순간까지 선의를 버리지 않는 무한 잠재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다. (616쪽 : 파이(π)와 오일러의 수(e)처럼 반복되지 않기에 무한의 끝을 모르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상수가 되면 규칙과 비규칙의 대칭성이 하나로 풀린다. 두 초월수는 그렇게 초월한 수의 영역에서 상수다) 허수를 포함한 복소수 체계와 초월수들의 역할이 창조의 비밀을 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허수와 초월수에 담긴 진리가 마치 인류가 품은 궁극의 선의와 잘 비교된다. 선의를 무한히 품고 있는 의식이 인류에게는 초국의 진리로 잠재돼 있다. 인류 공존공영이라는 절대 버릴 수 없는 의식이 자연계의 법(法)에 살아 있다. 그리고 인류 저마다의 개인은 절대적 선의를 놓지 않고 항상 파동처럼 꿈틀거린다. 1인의 법이 자연의 법과 맥이 통한다. 선의를 가교로 하면 통하지 않는 법이 없다. 현실의 냉혹함이 대칭적으로 따르지만 그 냉혹함조차 선의를 더 강력히 비추는 역할을 한다. (464쪽 : 법과 순리는 냉혹하면서도 따듯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
 
Q. 냉혹한 현실에서 선의만 충만하도록 하는 희망이 종교적이지 않나
 
A. 원운동과 파동성이 서로 통하는 원리가 삼각함수로 확인된다고 했다. 60분법은 360도를 원으로 하는 각도를 표시하는 기법이다. 호도법은 호의 길이를 통해 부채꼴의 각도를 알아낸다. 60분법과 호도법은 똑같은 각의 크기를 다루고 있지만 단위가 다를 뿐만 아니라 기본 식도 다르면서 호환된다. 1도는 π/180 라디안, 1라디안은 180/π 도를 각각 나타낸다. 이처럼 60분법과 호도법의 호환성이 원과 파동을 한 가족으로 엮는다. 실제로 만물의 원리는 일정한 주기를 공통분모로 한 순환과 파동이다. 인류의 질서도 순환과 파동을 동시에 갖는 역사라고 했다. 인간에게는 선악이 대표적인 순환성·파동성 움직임을 나타낸다. 인류가 갈구해 온 선의도 결국 순환과 파동을 벗어나지 못한다. 선의는 수많은 철학사와 종교사를 통해 드러났다. 특히 선의를 담은 철학의 형태는 무한히 다양하고 많았다. 이 같은 다름의 선의는 형태만 달랐을 뿐 본질이 같다. 종교의 선의도 마찬가지다. 종교적으로 추구하는 선의를 누구도 거짓이라고 하지 않는다. 종교 간 전쟁이 있다고 해도 선의 자체만은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선의의 기하학은 누구나 무수히 그릴 수 있지만 본질이 변하지 않는 선의는 전 인류에게 소통이 된다. 소통의 방식은 순환과 파동이다. 자연의 원리인 선의를 버리거나 사장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 배타적 문명이 간간히 선의를 흔들어 갈등을 빚어 오기는 했지만 문명의 본질이 선의라는 점을 잘 살펴야 한다. (476쪽 : 네트워크 산물인 현상계 문명은 그 주체인 인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창조시키고 있다) 인류에게 충만한 선의는 철학과 종교뿐만 아니라 문명에도 깊이 잠재돼 있다.

목차
제1장 신 보수의 가치
 
1-1. 욕망의 장
1-2. 권력의 장
1-3. 경쟁과 차별
1-4. 빈수레 진보
1-5. 이념의 굴레
1-6. 탈 진영의 길
1-7. 신 보수가치
 
제2장 누가 약자인가
 
2-1. 인심과 수심
2-2. 베풂과 이기심
2-3. 강자와 약자
2-4. 강자논리
2-5. 약자논리
2-6. 강자의 비탈
2-7. 약자의 험로
 
제3장 새로운 평등을 말한다
 
3-1. 불평등 샘
3-2. 평등론
3-3. 평행한 삶
3-4. 삶의 사단(四端)
3-5. 책임의 행복
3-6. 신들의 평등
3-7. 인간의 지혜
 
제4장 제국주의는 없다
 
4-1. 열국주의
4-2. 제국과 식민지
4-3. 민족의 꿈
4-4. 제국의 꿈
4-5. 1인 나라
4-6. 초국의 실수
4-7. 무국의 질서
 
제5장 민중은 가공됐다
 
5-1. 국민론
5-2. 민중론
5-3. 지성적 시민
5-4. 오만한 민중
5-5. 인공의 허(虛)
5-6. 신들의 공(功)
5-7. 인간의 꿈
 
제6장 역천의 이념인가
 
6-1. 건곤(乾坤)
6-2. 변증 소용돌이
6-3. 하늘의 영광
6-4. 반야(般若)의 지혜
6-5. 순천&역천
6-6. 현재형 인간
6-7. 미래 사다리
 
제7장 이상사회를 논하다
 
7-1. 제3의 역사
7-2. 사회적 굴레
7-3. 사회의 꿈
7-4. 대동사회
7-5. 커뮤니티 진보
7-6. 이상국가론
7-7. 이상사회론
Q. 선의가 가득한 초국의 질서에서 1인 나라는 어떤 역할을 한다는 의미인가
 
A. 선의는 의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신성이 분유(分有)된 본성이 선의다. 선험적으로 본유(本有)한 선의를 이성이 실천하고자 할 때 선의의 존재를 느낀다. 선의는 문명과 한 배를 타면서 악의와 대칭을 이뤘다. 하지만 선의의 본성은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강해졌다. 배타적 이타성을 갖고 있는 문명은 인간 상호 간의 풍요를 상징한다고 했다. 문명이 악의를 드러낸다고 해도 풍요라는 선의가 발현된다. 풍요를 지향하는 선의 속에 철학적·종교적 선의가 동일하게 관통하고 있다. 문명이 고도화 될수록 육체보다 정신에 의존하는 비중이 급격히 상승 중이기도 하다. 문명을 통해 정신 속에 내재된 선의를 글로벌 질서로 투영시킬 조건이 무르익고 있다. 네트워크의 무한 다극화에 선의가 우선되면 누구나 1인 나라의 꿈을 실현시키는 주체가 된다. 1인은 선의를 실천하는 세포단위이지만 다극화 네트워크에서는 전체를 상징한다. 1인이 가진 선험성이 중요한 이유다. 인간의 지성(知性)은 천성지성(天性知性)이면서 실천지성(實踐知性)을 함의한다. 그래서 1인의 선의가 중시되는 초국의 질서에 선의가 가득해진다. 저마다 타고난 천성을 지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선의의 완성도를 높혀가기 때문이다. (112쪽 : 사회지성의 나와 하늘의 본천지성이 곧 하나다) 누구든 지적 성취는 지성을 지향하고 있다. 고의든 아니든 지성을 향해 가는 본성이 있다. 따라서 단순한 앎의 축적만으로 지성을 안다고 하기 어렵다. 집단지성인 사회지성까지 포괄해 저마다의 선의가 실천으로 옮겨질 때 초국의 질서가 만들어진다. 1인 지성의 위력은 위대한 전파력과 흡인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518쪽 : 앎의 속성이 강력한 것이기는 하지만 실천의 도덕을 먼저 요구하기에 앎 이전의 선험성이 있다) 초국의 네트워크는 지성의 실천력에 달렸다.
 
Q. 정글과 같은 무력의 질서가 초국의 질서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변수는 없을까
 
A. 정글은 생사가 오가는 치열한 생존환경이다. 하지만 정글의 동물들은 정글을 떠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안식처로 삼으며 종족을 번식시킨다고 했다. 불안과 희망의 공존이 정글의 실체다. 정글의 이중성이 갖는 의미가 초국의 의미에 깃들었다. 정글과 초국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정글은 나쁘고 초국은 좋은 것으로만 인식된다. 하지만 초국의 이타적 얽힘은 정글의 배타적 얽힘과 상통한다. 얽힘을 분모로 하는 정글과 초국은 얽힘이 커질수록 하나로 수렴한다. 배타적 얽힘과 이타적 얽힘이 임계선상으로 확장돼 갈 때 얽힘의 본성이 갖고 있는 선의로 수렴된다. (559쪽 : 정글 속에서 동물이 먹이사슬을 절감하고 그것을 두려움과 용기로 교차하며 생존해 나가는 것은 질서다) 정글의 동물들이 두려움과 용기를 동시에 갖는 것은 정글에 살기 위한 조건이라고 했다. 이를 거부해 정글 밖으로 나가면 생존조건은 더욱 척박해진다. 두려움과 용기를 체화하며 살아야 하는 동물의 운명은 배타적 얽힘이지만 생명을 찬미하는 이타적 조건이 된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생명을 찬미하는 조건에 자존감을 더해야 한다. 자존감은 이타적 얽힘의 조건 속에 반드시 있다. 인류가 이타적 얽힘의 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동물의 정글 조건과 연장선상에 있다. 인간과 동물의 생존조건은 본질적으로 같다. (560쪽 : 본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불가능한 제약이 창조의 에너지로 변하도록 해준다) 인류는 각 개인이 본질적 삶의 조건을 인지할 때 무한 창조력을 네트워크에 심을 수 있다. 누구든 1인 나라를 실현할 본성을 갖고 있다.
 
Q. 다극화 된 초국의 공존공영 시스템이 영원한 질서라고 믿을 근거는
 
A. 인류는 나선형 순환을 통해 문명의 발전을 일궈 왔다. 변증의 논리인 나선형 순환은 인과율이기도 하다. 인과율은 작용·반작용의 물리법칙이 작동하는 생명계에서 피하기 어려운 힘의 상호작용이다. 힘은 영원히 일정하지 않다. 다극화 된 초국의 공존공영 시스템도 영원한 질서라고 하지 못한다. 근(近) 미래의 시스템을 진지하게 성찰할 때 가장 효율적인 네트워크 형태가 초국으로 그려질 뿐이다. 인류 공존공영의 질서는 본래 하나인 생명과 에너지가 ‘불완전한 하나됨’의 반복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581쪽 : 생명(물질)과 에너지(힘)는 하나다) 인간은 ‘물질의 개체성’을 갖지만 인간의 매순간 삶인 가속운동은 ‘힘의 연결성’이다. 개체성의 연결성이 상호작용이다. 이 같은 상호작용은 인류가 살아가야 할 풍요의 본질이다. 초국의 네트워크 기반인 민족국가 간 상호주에 기반한 이익과 안전의 도모는 필연적인 수순이라는 점이다. 다만 힘의 원리상 필연성은 다른 필연성에 의해 대체된다. 또한 인간은 이름을 갖지만 인간의 삶은 이름을 갖지 않는 원리도 마찬가지다. (585쪽 : 유명(有名)은 물질, 무명(無名)은 힘의 성격을 갖는다. 힘에 의한 물질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 없다) 당연하게 보이는 유명의 질서를 무명의 눈으로 보면 당연하지 않다. 1인 나라의 정체는 1인의 개체성과 연결성을 하나로 엮는 인류의 희망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희망은 좌절을 몰고 오며 좌절은 희망을 다시 품게 한다. 이 과정에서 초국의 질서가 인류의 공존공영을 담보하지만 영원하다는 보장은 없다. [계속]
 
[스카이데일리 알앤알(R&R, Rich-Research)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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