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주 
/대학에서 물리학 전공한 프로골퍼
/비거리 늘리려 다양한 노력과 실험
/몸집 불리고 아이언들 길이 똑같게
/PGA투어 비거리 부문 부동의 1위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Far & Sure’(멀리 그리고 정확히)를 꿈꾼다. 이는 모든 골퍼들의 영원한 로망이며 화두인 셈이다.
멀리 치려다 보면 정확성을 잃기 마련이며, 또 정확성에 치우치다 보면 멀리치기가 쉽지가 않다. 어느 한쪽을 추구하다 보면 다른 한쪽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둘 다를 만족시키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극히 드물다. 한쪽으로 쏠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선 그때그때 중도를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멀리’와 ‘정확히’를 양립시키려는 골퍼들의 열망은 그야말로 욕심일 뿐이다. 극히 드물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경우도 있지만 어쩌다가 행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부분 주말 골퍼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체형이나 기질에 따라 ‘정확도보다는 멀리’(Far than Sure) 또는 ‘멀리보다는 정확도’(Sure than Far)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장타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몇 번 실수하더라도 한 방을 노리고 한번 제대로 맞추면 되기 때문에 ‘정확도 보다는 멀리’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처음 골프를 익히는 비기너들은 대체로 ‘정확도보다 멀리’에 해당될 듯싶다.
‘필드 위의 물리학자’로 화제
브라이슨 디섐보의 장타 도전은 늘 화제를 모은다. 그는 ‘필드위의 물리학자’ ‘필드의 구도자’라고 불린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디섐보는 골프의 영원한 숙제인 ‘장타와 방향성’ 가운데 장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주인공이다. 다른 골퍼들은 스윙의 개조를 통해 멀리 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디섐보는 그들과 달랐기에 그의 별난 행동들은 늘 화제가 되고 있다. 장타를 치기 위한 디섐보의 도전과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그는 전 세계 최고 골프 선수들의 경연장인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최장타로 꼽히고 있다. 2019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였다. 그때에는 드라이버 샷 거리가 PGA투어에서 34위(302.5야드)에 페어웨이 안착율은 65.02%였다. 그러나 2020년 평균 드라이버 샷 거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볼 스피드를 지난 시즌 시속 282km에서 2020시즌에는 시속 305km까지 끌어올렸다.
장타자 1위(320.8야드)로 2019년에 비해 무려 평균 20야드 정도가 늘어난 셈이다. 비거리 20야드는 적지 않은 길이다. 비거리가 늘어난 만큼 페어웨이 적중률은 현저하게 떨어져 135위로 곤두박질쳤다. 올해에도 드라이버 비거리 부문에서 역시 1위를 달리고 있다.
비거리 늘리려 끝없는 도전
디샘보는 골프를 위해서라면 최선의 길을 찾는 노력과 시도를 결코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2016년 4월 프로로 전향한 그는 이듬해 7월 PGA투어 존디어 클래식에서 처음 우승을 차지했다. 아마추어 시절 기본기를 단단히 다진 것은 물론이었다. 아마추어 시절 캘리포니아주 주니어 챔피언을 차지했다.
프로에 데뷔한 뒤 화제가 된 것은 그의 아이언 클럽이었다. 그는 모든 아이언의 길이를 7번 아이언의 길이에 맞춰 다 똑같게 만들어 갖고 다녔고, 단지 로프트 각도로 거리에 차별성을 뒀다. 3번부터 웨지까지 10개 아이언의 길이가 37.5인치, 무게 280g으로 똑같다. 길이가 똑같으니 치기가 쉽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물리학도다운 기발한 발상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괴짜 골퍼’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삼다
2020년 전 세계적으로 창궐한 코로나19는 디섐보에게 일대 전기가 되는 대사건이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PGA는 약 3개월 중단된 바 있다.
이 기간에 디섐보는 “방향에 큰 무리 없이 일단 멀리 친다면 상대적으로 다음 샷이 쉬워져 홀에 더 가까이 붙일 수 있다”는 생각에 따라 1m85에 86kg이던 자신의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식이요법과 강도 높은 운동을 병행하는 이른 바 ‘벌크 업’이었다. 디샘보는 단백질 가루로 식단 조절을 하면서 몸을 크게 불렸다. 체중이 3개월 동안 약 20㎏ 이상 증가했다. 근육 활성화 기술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아침 식사로 계란 4개와 베이컨 5장, 토스트 등과 단백질 음료 6잔씩, 저녁에는 스테이크와 감자를 섭취하는 등 하루 평균 무려 1만칼로리의 음식을 섭취했다.
체중과 비거리의 상관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거리를 늘리기 위해선 스윙 스피드를 높여야 하고, 스윙 스피드를 높이려면 체중을 늘려야 한다는 게 그의 이론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벌크업을 시도했다.
투어가 재개되자 디섐보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돼있었다. 몰라보게 몸집이 불어 ‘헐크’라는 별명이 또 붙었다. 그 결과 투어에서 괴물 장타자로 거듭났다. ‘벌크 업’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무작정 몸집을 늘린 게 아니었다. ‘고급 신경근육 훈련 생리학’(ADVANCED NEUROMUSCULAR EXERCISE PHYSIOLOGY)이란 책을 수차례 정독했다. 이 책을 늘 끼고 다닐 정도였다. 이 전문서적은 몸의 움직임에 따라 근육과 신경조직의 움직임, 피의 흐름, 물질대사 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피로가 쌓이면 몸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다.
끝없는 실험과 도전 정신
2020년 7월 열린 PGA투어 로켓 모기지 클래식 4라운드에서는 577야드짜리 파5 홀에서 8번 아이언으로 2온 시키는 가공할 샷을 보여주며 23언더파의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자신의 벌크업 작전이 대성공임을 입증한 것이다. 4라운드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는 무려 360야드였다. 그는 지난해 9월 어렵기로 악명 높은 윙드 풋 골프코스에서 남들보다 드라이버 샷 비거리를 30야드 이상 멀리 보내는 괴력을 앞세워 유일한 언더파 스코어(6언더파)를 내며 제120회 US오픈 골프선수권대회를 제패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거리를 더 내기 위해 한 달가량 투어에 나서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또 다른 실험에 착수했다. 이번에는 드라이버 샤프트 길이로 승부를 볼 요량이었다. 골프 규칙이 허용하는 클럽 길이의 최대치는 48인치(1m22)다. 보다 큰 원심력을 얻어 장타를 보내기 위해 48인치 드라이버로 연습을 했다. 실험 결과 샤프트 길이가 1인치 늘어나면 비거리가 약 10야드 증가한다고 한다.
‘3차 거리혁명’의 주인공 되다
그러나 PGA투어에서 8승을 거둔 디섐보가 48인치 드라이버로 인간이 상상하지 못했던 드라이버 샷 비거리를 날리는 장면은 보지 못할 것 같다. 비거리 증대를 골프의 매력과 순수성, 미래를 위협하는 ‘해로운 장애물’로 인식하고 있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 R&A가 클럽 길이를 46인치 이내로 제한하는 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4월의 마스터스 대회 때부터 적용될 듯싶다.
골프의 거리 혁명은 첫 번째로 공과 드라이버 등 장비의 발전, 두 번째로 과학을 활용한 스윙의 효율화로 이뤄낸 결과지만 디섐보는 ‘3차 거리 혁명’을 주도하는 선수가 됐다. 다른 선수와 현격히 차이가 나는 디섐보의 필드 지배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뜻하지 않게 벽에 부딪힌 디섐보가 비거리 증대를 위해 어떠한 도전과 모험을 할지 궁금할 뿐이다. 그의 실험정신을 열렬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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