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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열쇠 시즌2’···부국부민(富國富民)의 길

천륜 가족애 무한신뢰 과정에 무국 인류애 실현

[대한민국 번영의 지혜<56>]-제4장 제국주의는 없다 : 무국의 질서(2)

필연적 죽음에 죽지 않는 생명가치···경계 키우며 무경계 확장 본성

생명의 존재 필연성 증거하는 가족애···유한·무한 동시에 품은 얽힘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21 00:02:19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 ⓒ스카이데일리
[전편에 이어 ]
 
Q. 국가의 위력이 클수록 국가 간 경계가 높아지지 않고 허물어지는 원리는
    
A. 자연에서 특정 개체성의 힘은 배타성을 의미한다. 국가도 위력이 강할 때 긴장과 갈등을 키우는 배타성이 확장된다. 하지만 개체성이 상호작용할 때 배타성이 이타적 조화로 수렴되는 원리가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극과 극의 대칭적 얽힘에 상관성이, 상호 존재를 가능하게 돕는 상반성이 각각 무국의 조화에 근간이 된다고 했다. 국가 간 배타성이 강할 때 상호 필요로 하는 얽힘의 상관성이 함께 커진다. 또한 상호 다른 모습의 상반성이 서로를 비추는 모습 또한 확장된다. 전자의 상관성은 얽힘의 필요성을 통해 그리고 후자의 상반성은 상대의 거울이 되는 것을 통해 경계를 허문다. 경계가 있으나 경계가 없는 이중성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이 피할 수 없는 죽음 때문에 생명의 가치가 오히려 죽지 않는 이치와 같다. (58쪽 :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죽음은 가장 강력한 생명으로의 동인(動因)이 되는 역진성이 통한다) 울타리가 강하고 높을수록 울타리가 사라지는 이중성은 모순 같지만 모순이 아니다. 자연의 모든 원리가 이 같은 모순을 담지해 모순 그 자체를 원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국가의 위력이 강해야만 국가 간 경계가 허물어진다. 이를 힘의 균형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Q. 경계이자 무경계 시스템이 무국의 질서라는 뜻인가
 
A. 강한 민족국가들이 상호 비슷한 울타리를 칠 때 갈등이 최소화 되고 평화가 깃든다. 반면 힘의 비교우위 차이가 많이 날수록 강한 국가와 약한 국가 모두 배타성을 더 키운다. 강한 국가는 욕심이나 탐욕을 통해 배타성을 키우고 약한 국가는 탐욕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배타성을 키운다. 반면 국가의 위력을 상호 비숫한 위상으로 키운 질서는 마치 벌집의 형상과 유사하다. 벌집은 정교하게 같은 크기에 같은 모양의 육각형들로 구성돼 있다. 개별적인 육각형들의 경계는 분명하지만 벌집 전체가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진짜 경계는 없다. 무국의 조화는 많은 민족국가의 위력이 가족애라는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가족애와 인류애는 마치 하나의 원리 안에서 존재하는 무소부재(無所不在) 에너지라고 했다. 국가의 권위는 하나의 원리를 위한 경계이면서 무경계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원리가 모두 유한성과 무한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과 같다. (661쪽 :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유한자들은 유한해 보이지만 무한의 성질을 동시에 갖췄다) 생명이든 물질이든 원자단위에서 유한·무한의 경계에 있는 전자는 질량이 있어야 가능한 입자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 질량이 없는 파동의 고유성질이 있다고 했다. 입자는 불연속적으로 유한하지만 파동은 연속적으로 무한한 특성을 갖는다. 실제 파동은 빈 공간에서 조차 무한히 얽혀 있다. 거시의 물질조차 물질파로 규명됐다. (661쪽 : 유한자인 생명이 동시에 갖고 있는 물질의 파동성은 만물을 하나로 묶는 무한의 특성을 가졌다) 미시와 거시를 초연결하는 만물의 통일이론이 완벽히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현대물리학의 대세인 초끈은 그 가능성을 열고 있다. 거시의 자연이나 국가도 하나의 벌집처럼 경계와 무경계를 동시에 갖고 있는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다.
 
Q. 가족애가 인류애와 하나처럼 동질성을 갖지 못할 수 있지 않을까
 
A. 가족애는 끊을 수 없는 천륜이다. 가족애가 끊어진다면 인간의 자의적 판단이고 착각일 뿐이다. 인간의 의지로 가족애는 결코 없앨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설사 일시적으로 가족애가 사라진다고 해도 반드시 다시 존재를 드러낸다. 가족애는 자연과 생명의 에너지 역학에서 존재의 필연성을 증거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가족애가 전 인류의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인류애와 상통한다고 했다. 가족애를 통한 인류애를, 인류애를 통한 가족애를 상호 확인하고 무한히 엮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자기유사성의 반복인 프랙탈의 원리는 전체가 하나가 되고 하나가 전체가 되는 ‘일즉다 다즉일’의 원리와 통한다. 가족애와 인류애 또한 극히 작은 단위의 가족애가 인류애가 되고 광대한 인류애가 또한 가족애가 된다. 이는 있음과 없음의 존재 원리와 같기도 하다. (82쪽 : 있음을 보지 않고 없음을 보되 그 없음이 실재하고 있음을 보는 것은 만물의 근원자리가 그 어디라도 있다는 것과 같다) 만물의 어디를 봐도 서로 다른 수많은 개체성 속에 그 만물을 잉태하는 전체의 원리가 내재돼 있다. 프랙탈 구조는 있지만 없고 그리고 없지만 있는 묘한 자기유사성의 반복이다. (660쪽 : 유한과 무한의 원리는 본래 하나다) 데카르트가 창시한 좌표는 존재라고 했다. 무한 속에서 유한을 드러내도록 돕는 것이 좌표다. 인간의 오감에 잡힌 좌표 상 존재와 역학(운동)의 본질은 모두 에너지로 통합된다. (661쪽 : 극과 극의 성질이 유한자의 성질을 규정하지만 그 운동성이 다른 유한자들의 파동성과 얽혀 있다) 에너지 얽힘의 경계는 있으면서 없다. 얽힘의 구조 자체에 경계가 있으면서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무한성이 가능하다. 가족애가 이런 얽힘의 구조다. 인류는 가족애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Q. 가족애를 통한 천륜의 길을 가면 어떤 결과를 보장받을 수 있나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고윤석] ⓒ스카이데일리
 
A. 가족애는 무한히 커질수록 무한히 커지지 않는다. 가족애가 인류애와 상통하기 위해서는 무한히 커지는 개념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가족애는 일종의 단위다. 단위는 기초를 이룬다. 그 단위의 성질이 확장될 때 가족애가 확산된다. 가족애는 인류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신의 방정식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원리를 제공하고 있다. 신의 방정식이자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 이름 붙여진 자연상수 오일러의 수(e) 공식에 이 같은 신비한 원리가 담겼다. 공식에서 허수·지수·삼각함수가 신비하게 한 가족으로 엮이면서 지수(指數) 범위는 허수까지 포함된 복소수(複素數)로 확장됐다. 곱해서 음수가 되는 상상의 수 허수가 창조의 주연 역할을 한다. 실수와 허수의 합으로 이루어진 수인 복소수는 지수의 크기가 거질수록 크기는 지수크기 만큼, 각도는 지수각도 만큼 각각 정밀하게 커진다. 이는 오일러의 수(e)에서 극한값을 가질 때 크기는 마이너스 1(-1), 각도는 180도(π)로 수렴된다. 마이너스 1(-1)과 파이(π)는 좌표상 같은 위치로 만난다. 인류 문명의 지적역사를 바꾼 획기적인 발견이다. 이 개념들의 탄생 배경이 현대문명을 떠받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륜은 이들 원리처럼 보이지 않지만 인류를 떠받친다. 오일러의 공식이 절대 진리로 변할 수 없는 배경에 얽힐 수 없을 것 같은 강력한 얽힘이 있다. 가족애 또한 얽힐 수 없을 듯 하면서 강력히 얽히는 힘이 있다. 마치 물질의 최소 단위 에너지처럼 수의 최소 단위인 소수(素數)들의 규칙과도 유사하다. (615쪽 :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에너지 양자들의 원리처럼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소수들의 성질이 맞닿아 있다면 인간이 창조해 낸 수(數)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간다) 소수의 규칙성과 양자 에너지 역학 간에 기막힌 원리가 통한다. 이는 물리적 한계를 넘는 일이다. 가족애 또한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특성이 있다. 그 정체가 천륜이다. 특정한 가족단위의 혈연을 기초로 하는 가족애는 얽힘을 통해 인류를 품을 수 있다.
 
Q. 강자의 책임·사랑이 가족애·인류애와 맞닿은 개념인가
 
A. 강자가 추구하는 패권·이권형 지배 시스템은 반드시 한계를 만난다. 또한 갈등과 전쟁을 유발해 전 인류를 불운의 나락으로 빠뜨린다. 강자의 패권·이권 추구를 강자의 책임·사랑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가족애를 필요로 한다. 가족이란 천륜의 혈연성은 ‘누구나 나’라는 1인칭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이를 기반으로 한 혈연의 확장성이 강자의 논리인 책임·사랑을 유인한다고 했다. 그래서 집단을 책임지는 사랑의 울타리는 개인 또는 가족으로부터 나온다. (492쪽 : 국가의 보호막은 개인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형성된 만큼 행복과 삶의 가치가 오를수록 강해지는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 결국 무국의 질서 근본은 책임 있는 사랑이다. 가족이 그 출발이며 인류애로 완성을 향해 간다. 무소부재한 사랑의 에너지가 충만 하는 배경에 가족이 네트워크로 엮여 있다. 인류를 지향하는 가족은 그래서 존재와 부존재의 이중성을 갖는다. 있음과 없음을 하나로 하는 사랑은 전체라는 개념과 같다. 무국은 전체를 상징한다. 인위적인 전체주의가 아닌 자유로운 전체성은 사랑의 근본을 이룬다. 동양의 종교나 철학은 물론 서양철학 대부분도 이를 인정한다. 불교의 공즉시색 색즉시공은 그 대표적 상징성을 띤다. 인류애를 가족처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지만 가족애를 인류처럼 동일시하는 노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천의지만 있다면 수많은 방식이 존재한다. 프랙탈이라는 자기유사성을 기초로 할 때 가족 같은 인류사회가 구현된다. 가족애 속에 인류애가 녹아있다는 믿음이 그 출발이다. 공과 색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인류는 가족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무국은 천륜의 길을 무한 신뢰하면 실현되는 책임과 사랑의 질서다.

목차
제1장 신 보수의 가치
 
1-1. 욕망의 장
1-2. 권력의 장
1-3. 경쟁과 차별
1-4. 빈수레 진보
1-5. 이념의 굴레
1-6. 탈 진영의 길
1-7. 신 보수가치
 
제2장 누가 약자인가
 
2-1. 인심과 수심
2-2. 베풂과 이기심
2-3. 강자와 약자
2-4. 강자논리
2-5. 약자논리
2-6. 강자의 비탈
2-7. 약자의 험로
 
제3장 새로운 평등을 말한다
 
3-1. 불평등 샘
3-2. 평등론
3-3. 평행한 삶
3-4. 삶의 사단(四端)
3-5. 책임의 행복
3-6. 신들의 평등
3-7. 인간의 지혜
 
제4장 제국주의는 없다
 
4-1. 열국주의
4-2. 제국과 식민지
4-3. 민족의 꿈
4-4. 제국의 꿈
4-5. 1인 나라
4-6. 초국의 실수
4-7. 무국의 질서
 
제5장 민중은 가공됐다
 
5-1. 국민론
5-2. 민중론
5-3. 지성적 시민
5-4. 오만한 민중
5-5. 인공의 허(虛)
5-6. 신들의 공(功)
5-7. 인간의 꿈
 
제6장 역천의 이념인가
 
6-1. 건곤(乾坤)
6-2. 변증 소용돌이
6-3. 하늘의 영광
6-4. 반야(般若)의 지혜
6-5. 순천&역천
6-6. 현재형 인간
6-7. 미래 사다리
 
제7장 이상사회를 논하다
 
7-1. 제3의 역사
7-2. 사회적 굴레
7-3. 사회의 꿈
7-4. 대동사회
7-5. 커뮤니티 진보
7-6. 이상국가론
7-7. 이상사회론
Q. 선악을 모두 갖고 있는 인류가 천륜을 외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A. 인간의 선악은 분리돼 있지 않고 하나다. 또한 선덕과 악덕의 모습을 동시에 띠면서 선은 물론 악조차 덕을 품고 있다고 했다. 선악을 모두 갖고 있는 인류의 모습은 천륜을 결코 외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천륜을 버리고 등한시 할 때 반드시 비극이 따르고 저주가 내린다. 인류는 이 같은 하늘의 도를 지식이 아닌 지혜로 알고 있기에 천륜을 온전히 버리지 못한다. (102쪽 : 선덕과 악덕이 맞서고 대칭하는 돈이 선덕과 악덕을 합친 온전한 도덕률과 같을 수 있다) 돈의 본질은 화폐가 아니고 부가가치 에너지라고 했다. 에너지 측면에서 돈은 인간의 생명과 동일체라고 했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이 투영된 돈 또한 인간의 모습과 닮았다. 돈은 본래 천륜의 도리를 따른다. 따라서 땀의 대가가 아닌 공돈과 요행·사행 등을 통해 번 돈은 필연적으로 돈의 역습을 불러 빈곤을 더 재촉한다. 인간이 부가가치 일을 통해 성스러운 돈 가치를 높여 가는 상호 이타성은 영원한 숙제라는 것이다. 인류는 그 선택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국의 질서는 덕을 실행하는 모든 인류의 벌집과도 같다. 누구나 벌집을 위해 존재하지만 벌집은 인류를 위한 소중한 안식처다. 벌들의 일은 누가 평가하지 않아도 위대하고 성스럽다.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가는 벌들의 일은 인위적이지 않다. 무국의 질서 또한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싹이 트고 자란다. 하늘의 천륜이자 자연의 섭리를 외면한 생명은 존재할 수 없기에 무국의 질서 또한 인류가 반드시 적극 수용하고 키워 나가야 한다. 이를 선제적으로 하지 않으면 인류는 다가올 공멸의 위험을 피하지 못한다.
 
Q. 무국의 질서가 인위적 힘을 발휘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지 않는지
 
A. 불연속을 지향하면서 완성을 추구하면 완성은 영원히 없다. 이념이 유한성·개체성 등을 중시하면서 완성을 지향한다고 했다. 무국의 질서는 이념이 없다. 옳다 그르다 같은 시시비비를 굳이 따지지 않는다. 인위적인 힘이 굳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무국의 질서가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이뤄지지도 않는다. 인위적 힘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과 노력이 수반돼야 하는 것은 다르다. 인위성은 패권을 지향하지만 노력은 패권을 지양한다. 질서는 인위적 에너지이고 강제성이 미치는 힘이지만 무국의 질서는 그 반대다. 힘이 미치지만 힘이 분산된 힘의 없음이다. 힘이 강한 패권으로 향할수록 완전한 질서가 아닌 불완전한 질서가 만들어지고 패권을 버릴수록 불완전한 질서가 아닌 완전한 질서가 조성된다. (127쪽 : 에너지 가치는 힘이다. 그 힘은 완전과 평형의 반대편에서 움직이는 음양의 불완전에서 오는 패러독스였다) 음양의 결핍 차가 힘의 근본이다. 부조화가 조화를 향해 가는 섭리 속에서 만물의 힘이 탄생했다. 무국의 질서는 부조화 자체를 조화로 간주해 패권형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의 패러독스를 지렛대 삼는다는 것이다. 힘을 강제적으로 키우기보다 얽힘의 질서를 통해 패러독스 스스로 강한 힘이 되도록 하는 것이 긴요하다. 조화는 이런 힘을 의미한다. 패권이 부조화의 연속성·순환성을 탄다면 무국은 존재 자체로 조화이자 부조화를 함께 안고 있는 형상이다. 만물을 탄생시킨 태극의 원리도 이와 같다. 인류가 지향해야 할 궁극의 진리이자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가는 길은 힘의 패러독스에 인간의 힘을 맡기는 일이다. 그 시작이 가족애다.
 
Q. 인류애를 실현할 무국의 질서에 자유시장은 어떤 역할을 하나
 
A. 자유시장은 치열한 배타성 속에서 이타성의 얽힘이 실현되는 격렬한 운동장이다. 자유시장은 일견 무국의 질서에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방해가 도움이 되는 시스템으로 자발적인 진화를 해간다. (667쪽 : 자유시장은 위악추와 진선미라는 극단의 대립 속에 도덕률을 정제하며 서 있는 모습이다) 진위·선악·미추는 모두 하나라고 했다.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상대가 자신을 존재케 하는 상반성·상관성을 동시에 지녔다. 무국의 질서는 모두를 수용한다. 치열한 대립이나 갈등조차 수렴시킨다. 수용은 기계적이지만 수렴은 자연적이다. 자유시장은 기계적 수용을 통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지만 무한 확률 속에 하나로 수렴하는 극한값을 반드시 내놓는다. 그 값이 책임과 사랑이다. 거짓조차 수용해 진실을 수렴하고 악함조차 수용해 선함을 수렴하며 추함조차 수렴해 아름다움을 수렴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가 나선형 변증운동이다. 자유시장의 진화는 책임과 사랑을 향한 전진 운동이다. 무한히 나아가는 지치지 않는 힘은 정반합 내지 작용·반작용의 변증성 산물이다. 정반합은 무한히 많은 것을 무한히 수용하는 운동성이다. 모든 변증운동은 미분 가능은 연속운동이다. (667쪽 : 나선형 변증운동은 절대자의 이타성을 좇으면서 사랑을 기반으로 한 도덕률의 근간을 지속적으로 형성하고자 하는 생명의 의지다) 생명은 변증운동의 원리를 타면서 동시에 이끄는 주체다. 생명의 존엄성을 스스로 키우는 것이 생명인 것이다. 천륜이 생명 속에서 영원히 꿈틀거린다. 가족애가 생명의 존엄성을 이루며 행복의 근원 역할을 해준다. 살아야 하는 매 순간 행복한 이유에 가족애가 자리할 때 인류애가 실현된다. 무국의 질서는 모든 개인의 행복으로 돌아온다. [계속]
 
[스카이데일리 알앤알(R&R, Rich-Research)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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