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와 보험업법 개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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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와 보험업법 개정 논란

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4-22 00:02:50

‘철혈 재상’으로 불린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는 수백년 동안 분열돼있던 독일의 통일을 이룬 명재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 왕국의 재상 겸 외무대신으로 취임한지 불과 10년 만에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와의 7주 전쟁에 승리한데 이어 프랑스를 물리치면서 독일 제2제국 성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비스마르크는 전통적 군주제를 옹호하는 보수주의 정치가이면서 수십명의 소작농을 거느린 대지주이기도 했다. 그는 내치에서도 보수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독일제국 성립이후 남부독일의 가톨릭교도를 억압하기 위한 문화투쟁을 벌였고 ‘사회주의자 진압법’을 제정해 사회주의를 억압하기도 했다. 한편 독일의 자본주의 발전과 식민지 획득을 장려해 아프리카에 독일 식민지를 만드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런데 비스마르크가 세계최초로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1883년 의료보험, 1884년 산업재해보험, 1889년 연금보험 등을 최초로 실시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4대 보험 중 3개가 비스마르크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보수의 화신’인 그는 왜 이러한 제도를 만들었을까.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노동계층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점차 사회주의 세력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영향으로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이른바 ‘제1인터내셔널’이 출범하게 되고 이어 1867년에는 ‘공산주의의 아버지’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1권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비스마르크가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한 이유는 노동자들이 체제에 불만을 갖지 않도록 해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세력의 투쟁의지를 꺾어 기존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국회에서 보험협회가 보험소비자의 민원처리 및 분쟁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금감원의 인력이 제한적이어서 매년 민원 처리기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보험사를 못 믿어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는데 민원이 많다는 이유로 이를 민원발생의 원인인 보험사의 이익단체인 보험협회에 넘겨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험협회에 민원을 넘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대해 법안을 발의한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보험사로부터 보험협회 운영비를 징수한다는 이유로 이익단체라고 하는데 금감원도 금융사가 부담하는 감독분담금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며 “금감원이 민원처리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법안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금감원은 금융위원회로부터 예산을 통제받는 기관이어서 보험협회와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보험협회 정관에 ‘회원의 공동이익증진’이라는 내용으로 이익단체임을 명시하고 있어 ‘자율규제기관’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사모펀드 사태의 충격으로 인해 비교적 덜 조명받고 있지만 보험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팽배한 상태다. 2019년 전체 금융민원의 62%를 보험 관련 민원이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상품의 불완전판매가 없도록 해 민원 건수와 처리기한을 줄이도록 노력하기는커녕 보험협회로 민원업무를 넘기는 것은 보험소비자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다 자칫하면 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믿음과 보험의 안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발맞춰 불완전 판매를 근절시킴과 동시에 민원처리 속도를 높이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시 비스마르크로 돌아가 본다. 비스마르크로 대변되는 당시 유럽 보수세력의 사회주의 견제는 러시아 혁명과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의 공산화로 인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복지제도는 이후 독일이 복지국가로 도약하는 기틀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정치권과 금감원, 보험업계는 체제 유지를 위해서 사회안전망을 만든 ‘철혈 재상’의 지혜를 곱씹어 봐야 한다.

[한원석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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