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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있어서 지역, 계파 안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특정 지역, 계파 출신들이 권력을 오로지하면 해당 세력은 고인물이 되고 고인물은 반드시 썩고 만다. 나아가 만인의 지지를 얻지 못해 지역맹주로 전락하고 수권정당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지역주의, 계파주의 타파를 통해 고인물을 정화한 인물 중 하나가 명태조 주원장이다. 그는 과거시험을 두 번 치르는 전무후무한 남북방(南北榜) 사건을 일으켜 명나라 300년 대계의 기반을 닦았다.
주원장은 부랑자에서 지존무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간승리의 끝판왕이다. 그는 1328년 안휘성 봉양현의 빈농 가정에서 ‘중팔(重八)’이라는 보잘 것 없는 이름으로 출생했다. 원나라 조정의 폭정, 극심한 기근 등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혹독한 노동에 내몰린 주원장은 부모, 맏형이 잇달아 사망하자 졸지에 오갈 데 없는 고아신세가 됐다.
얼마나 처참한 상황이었냐면 장례 치를 돈조차 없어 거적때기에 가족의 시신을 안치할 정도였다. 이후 황각사라는 절에 들어간 주원장은 탁발승이 돼 천지를 떠돌면서 구걸로 연명했다. 훗날 황제가 된 주원장은 “가랑이가 찢어지게 가난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나”라고 회고했다. 탁발승 시절은 지워질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그는 천자가 되자 삭발한 머리를 연상케 하는 빛 광(光)자의 사용을 엄금하기도 했다.
주원장 인생의 전환점은 홍건적의 난이었다. 붉은 띠를 두른 이들은 반원(反元)의 기치를 내걸고 대륙 곳곳에서 봉기해 몽골족에 대적했다. 홍건적의 한 갈래인 곽자흥 세력의 말단 졸병으로 들어간 주원장은 공훈을 세우면서 승승장구해 군단의 1인자로 급부상했다.
이후 그는 이선장, 호유용, 유기 등 당대의 호걸들까지 수하로 거뒀다. 1363년에는 파양호 대전에서 강력한 군벌이자 라이벌이었던 진우량의 대군을 격파하고 오왕(吳王)에 등극한 뒤 북벌을 감행해 몽골족을 내쫓고 명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가장 큰 위기는 개국 이후 발생했다. 성대하게 열린 첫 과거시험 결과는 주원장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급제생 전원이 회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남방 출신자들로 채워지자 북방 출신 응시생들은 강력 항의했다. 불만은 들불처럼 번져나가 급기야 북방 곳곳에서 반란의 조짐까지 발생했다.
중신들은 시험 결과는 우연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원장은 개국공신인 이선장, 호유용 등 회서파 거두들이 동향 인사만 중용해 조정을 장악하려 한 것으로 간주하고 재시험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북방 출신자들이 대거 급제했으며 주원장은 아예 남방 60％, 북방 40％라는 합격자 지역할당제를 실시해 특정 지역민, 계파가 조정을 오로지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금지했다.
주원장의 쇄신 덕분에 명나라는 일자무식 부랑자가 창업군주라는 한계마저 딛고 고인물이 돼 부패하는 대신 수권의 길을 열 수 있었다. 수백년 뒤 강건성세(康乾盛世)를 연 청나라의 강희제가 치륭당송(治隆唐宋·명태조의 치세가 당나라·송나라보다 낫다)이라 일컬었을 정도로 주원장은 후대 수권세력의 본보기가 됐다.
새 사령탑을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지역 안배를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특정 지역 출신자들의 지도부 독점을 지양함으로써 전 국민 지지를 얻어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할당제를 통해 만인의 민심을 도모해 명나라 300년 대계를 이끈 주원장의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국민의힘의 선택이 주목된다.
[오주한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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