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대출과 카드대란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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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대출과 카드대란의 기억

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5-06 00:02:46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경제의 운전대를 잡았다. IMF는 한국 정부에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급격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내수가 위축되자 당시 김대중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신용카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이후 신용카드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카드사들은 회원수를 늘리기 위해 과다 경쟁을 벌였다. 길거리에서 카드모집인이 가입시 현금을 준다며 호객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가입자의 수입이나 변제자력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남발된 신용카드는 결국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이어졌다. 2002년부터 파산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IMF 구제금융 당시 193만명이었던 신용불량자는 2004년 380여만명으로 두 배나 불어났다. 이들 중 3분의 2가 신용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였다. 결국 카드사들은 엄청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고 모기업까지 매각되는 회사도 생겼다.

최근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중 하나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시리즈(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대출) 중 하나인 ‘기본대출’과 관련된 법안이 이르면 이달 중 국회에서 발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설명에 따르면 기본대출은 모든 국민이 소득·자산·신용 등에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공정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핵심은 도덕적 해이가 적은 1000만원 미만의 돈을 이자율 3%대의 저리로 10~20년의 장기로 대출받을 기회를 주도록 한 것이다. 은행 부실위험을 막기 위해 지자체 신용보증재단이 대출을 전액 지급 보장하는 구조다.

이번 법안 추진과 관련해 지적되는 문제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앞서 지난 2월 경기도 산하 기관인 경기신용보증재단이 시중은행들에 ‘신용도에 상관없이 1인당 500~1000만원을 10년간 연 3% 금리로 빌려주는 금융상품 개설을 검토하자’는 공문을 보내자 은행권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판하는 측에선 은행에서 거부한 걸 법으로 만들어서 강행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말도 안된다고 지적한다.

또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 산하기관이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정부기관인 금융위원회를 ‘패싱’하고 은행에 직접 검토를 요구한 것은 월권이라는 비판이다.

여기에 은행 부실위험을 막기 위해 지자체 신용보증재단이 대출을 전액 지급 보장하는 구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실상 부실을 경기도가 부담한다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경기도 재정이 압박을 받으면 결국 중앙정부가 나서서 이를 해결하는 사태도 생길 수 있다.

1000만원 미만의 돈을 빌려주는 것을 도덕적 해이가 적다고 본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카드대란 당시 채무자들이 ‘카드 돌려막기’로 연체이자가 눈더미처럼 불어나지 않았더라면 대부분 2000만원 미만의 채무를 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카드사들이 파산할 위기에 처하자 ‘어차피 망할 회사에 대금결제를 해줄 필요가 있냐’는 도덕적 해이 현상까지 나타났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옛 속담처럼 도덕적 해이는 단지 금액의 많고 적음에 따른 문제가 아니다.

앞서 살펴본 ‘카드대란’은 결국 변제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한테 신용카드를 만들어줘서 일어났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도 천문학적인 규모의 주택 자금 대출을 해주면서 시작됐다. 두 사건 모두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신용 대출을 남발함으로서 생긴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반발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셈범에서 나온 ‘포퓰리즘성’ 정책이 나라의 이익에 도움될 지는 의문이다.

[한원석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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