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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여성 근로자들이 사상 초유의 집단 삭발식에 나섰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로부터 홈플러스를 지키고자 머리카락을 자르게 됐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자산유동화 등을 이유로 홈플러스 매장을 폐점·매각하고 있다. 이에 홈플러스 마트노조는 MBK파트너스를 ‘부동산 투기꾼’이라고 칭하면서 MBK파트너스의 부동산 매각 등으로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내몰렸다고 주장했다.
이번 집단 삭발식은 이제훈 신임 홈플러스 대표이사(사장) 취임 후 단 3일만에 진행됐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노조를 향한 이 사장의 ‘화해 제스처’가 허사로 돌아갔다는 평가다. 홈플러스 측은 노조의 주장과 달리 직원들의 고용안정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강조했다. 또 노조가 회사의 위기나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은 뒷전으로 미루고 무리한 퍼포먼스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홈플러스 여성근로자 집단삭발 강행…“홈플러스 지키겠다는 절박한 마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 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홈플러스 노조)는 13일 서울 종로구 D타워 MBK파트너스 본사 앞에서 홈플러스 여성근로자 집단삭발식 및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집단삭발식엔 정민정 마트노조 위원장, 주재현 홈플러스지부위원장 등 11명이 참여해 머리를 잘랐다.
삭발식에 앞서 홈플러스 노조는 “20년 넘게 국민들의 장바구니를 책임진 국내 유통 2위 기업 홈플러스가 투기자본 MBK에 의해 산산조각나고 있다”며 “20년 넘게 일해온 일터인 홈플러스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태어나서 처음 머리를 깎는다”고 삭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2015년 홈플러스 인수 이후 MBK가 팔아치운 홈플러스 부동산만 무려 3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 경영진들은 지난해부터 안산점, 둔산점, 탄방점 등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홈플러스 역사가 시작된 ‘1호점’ 대구점도 매각대상에 포함됐다. 잇따른 폐점매각 소식에 홈플러스 노사갈등은 심화됐다.
홈플러스 노조는 사측이 전국 매출 상위권 매장만 골라 매각에 나서고 있으며 이 같은 폐점매각으로 대량실업 및 지역경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사측의 매각행위 등으로 지난 6년간 9000여명의 직원들이 홈플러스를 떠났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 노조는 “2만 직원이 피땀흘려 지켜온 홈플러스가 MBK에 의해 산산조각나고 있다”며 “오늘 자른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겠지만 산산조각난 홈플러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홈플러스를 지키는 싸움에 모든 것을 다 걸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날 삭발식을 기점으로 고용안정이 보장될 때까지 끝장투쟁에 돌입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날 집단삭발식에는 홈플러스 여성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10여명의 근로자가 참여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삭발식이 진행된 가운데 몇몇 참가자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근로자들의 머리는 수분 만에 모두 잘려져 나갔다. 애써 미소를 지었던 근로자도 머리가 잘려나가는 중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삭발식을 지켜보면 이들도 눈물을 흘렸다. 일부는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 내 울기도 했다.
삭발식이 진행되던 중 노조는 “지난 세월 몸 성한 곳 없이 일하면서 홈플러스를 키웠고, 지켜왔다”며 “서울 시민 여러분들도 우리들의 투쟁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잘못한 게 있다면 열심히 일한 죄”…시험대 오른 이제훈 신임사장 리더십
삭발식이 마무리된 후 집단삭발식 참가자 결의발언을 통해 정민정 위원장은 “10살, 7살 두 아들에게 ‘엄마가 머리를 빡빡 깎아야 할 것 같아’고 이야기 했다”며 “엄마가 왜 머리를 깎아야 하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나쁜 사람들이 있는데 항의하기 위해, 그리고 혼내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이어 “두 아이가 울었지만 울고있는 아이들을 달래며 ‘엄마가 이모들이랑 힘 합쳐서 나쁜 사람들 곡 혼내주겠다’고 약속하고 나왔다”며 “어린 아이들의 엄마인 여성 근로자들이 왜 거리에서 삭발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 했는가”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위원장은 그러면서 “우리는 홈플러스를 위해 묵묵히 일만 했다”며 “지금 이 거리에서 스스로의 머리카락을 내어놓고 있는 우리가 잘못한 게 있다면 열심히 일만 한 죄다”고 밝혔다.
삭발식에 나선 다른 참가자는 “양쪽 무릎연골이 다 닳아 없어져 수술을 2번이나 했고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지만 홈플러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고 생각한다”며 “회사는 우리에게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주는 대로 받으라고 한다. 더는 쓸모가 없다며 내팽겨지기도 했다”면서 심정을 전달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제발 삭발만은 안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삭발을 결심했다”며 “지난 18년 동안 최저임금 받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면서 팔다리가 부서지도록 일한 대가가 폐점이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이번 삭발식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홈플러스 신임 대표가 취임한 지 단 3일만에 여성근로자 삭발식이라는 ‘사건’이 발생한 점 등에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노사 관계가 나쁘다고 해도 보통 회사 신임 대표가 취임하면 일종의 ‘허니문 기간’을 두며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며 조율하곤 한다”며 “경영진과 노조간 상견례도 진행하지 않은 상황서 여성근로자 삭발이라는 파격적인 행위를 한 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고 말했다.
앞서 홈플러스엔 이제훈 사장이 신임 대표로 취임했다. 이 사장은 출근 첫날인 10일 자신의 집무실을 놔두고 ‘홈플러스 스페셜 목동점’를 방문해 업무에 돌입했다. 홈플러스 신임 대표가 취임 첫날 자신의 집무실을 놔두고 현장을 먼저 찾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 안팎은 이 사장의 행보를 두고 홈플러스 노사갈등 해소 의지가 일부 담겨있을 것이란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파격행보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집단삭발식에 나서며 이 사장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 사장은 지난 30여년 동안 리테일, 소비재 분야에 몸담으며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리테일, 소비재 부문 CEO 경력만해도 10년이 넘는다. 이렇다보니 코로나19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홈플러스의 반등을 이끌 인물로 기대를 모았다.
다만 이 사장은 지난 세월 중 노사 합의안을 도출해 낸 경험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앞서 몸담았던 바이더웨이, KFC코리아, 카버코리아 등 회사엔 노조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홈플러스 노사갈등이 점차 심화되는 상황서 이 사장의 리더십이 다소 흔들릴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번 노조의 집단 삭발식과 관련해 홈플러스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일부 점포의 자산유동화가 진행 중에 있지만 ‘운명공동체로서 임직원 모두가 함께 가겠다’는 회사의 고용보장 정책은 변함이 없다고 수십차례 강조했다”며 “자산유동화가 진행 중인 점포는 직원들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면담 등 절차를 진행하며 영업 종료 후에도 직원들을 인근 사업장으로 전환 배치해 불편함 없이 근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 지난 2월 자산유동화가 완료된 대전탄방점 직원 전원의 경우 100% 전환 배치돼 근무 중이다”고 덧붙였다.
이어 “상황이 이러함에도 노조는 오히려 직원들에게 고용불안을 부추기고 있으며 선을 넘는 쟁의행위로 정작 직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임단협은 뒷전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홈플러스와 노동조합간 2020년 임단협이 아직도 타결되지 못해 직원들은 아직도 2019년 임금을 받고 있다. 임단협과 관련 없는 노조의 일방적 퍼포먼스 때문에 2만2000여 직원들만 속을 끓이고 있는 셈이다”고도 강조했다.
홈플러스 2020년 임단협은 현재진행형이다. 임금 인상률을 두고 입장 차를 조금씩 좁혀가던 노사 관계는 최근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노조는 최근 열린 임단협 모두 발언에서 임단협과 관련된 내용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노조위원장 간접강제이행금 50만원을 모두 100원짜리 동전 5000개로 바꿔와 내동댕이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시선을 끌었던 바 있다. 사측이 노조의 일부 쟁의행위 방식이 영업방해에 행위에 해당한다며 법원에 가처분 금지 신청을 하자 법원이 “(쇼핑 방해 등) 위반행위 1회당 50만원씩을 홈플러스에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 한 것으로 해석됐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날 열린 ‘여성노동자 집단삭발’ 퍼포먼스는 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700여명이 넘게 발생한 시점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집회로 경찰에서도 집회의 위험성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를 했음에도 강행됐다”며 “특히 젠더이슈가 민감한 시점에 여성노동자 집단삭발 퍼포먼스는 시선을 끌기 위한 의도적인 퍼포먼스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강주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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