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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세계 12위권으로 밀려났던 한국 경제 규모가 작년 다시 10위권으로 재진입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강국들의 순위가 뒷순위로 처지면서 한국이 다시 올라선 것이다.
2005년 처음으로 10위권 내에 진입한 이후 14년간 11〜15위권 밖에서 계속 맴돌았다. 주목할만한 것은 팬데믹이 선진국과 후진국 경제의 순위를 일시적으로 재역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당분간 이런 추세가 지속되겠지만 상황 반전이 되면 언제든지 10위권 주변 국가들의 순위가 바뀔 수 있다. 세계 5대 제조업 강국을 보더라도 한국은 줄곧 상위권이다. 우리 앞에 있는 나라는 미국, 독일, 일본, 중국뿐이다. 문제는 중국과의 격차가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우리 뒤에도 프랑스, 영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등을 비롯해 최근에는 대만까지 복병으로 등장해 우리의 위치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판이다. 세계 10대 수출국을 보면 한국은 계속 6〜7위에 있다가 지난해 네덜란드를 제치고 5위로 치고 올라왔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수출 감소율이 낮았던 것이 원인이다.
GDP 규모 10위·제조업 강국 5위·수출 강국 6위 등 한국의 외견적 위상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단군 이래 우리가 이 정도로 국가적 자존심이 고양된 적이 없다. 부존자원이 전혀 없고 내수시장도 턱없이 부족한 여건에서 만들어낸 쾌거다. 과거도 그랬지만 지금도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우수한 인적자원과 불굴의 도전정신이다. 지구촌을 둘러보더라도 자원이 풍부하거나 인구가 많은 국가는 노력을 소홀히 하거나 국가의 경쟁력이 약화하더라도 현상 유지는 한다.
반면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부침이 심하다.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후진적 정치 행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쟁력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은 기업이나 개인 등 민간의 창의력과 역동성이 죽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절박감이 긍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결과다. 좁은 시야에서 탈피해 일찍이 세계 시장을 무대로 움직이면서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요한 고리를 꿰차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글로벌 지위에 새로운 위협과 기회가 엄중하게 다가오고 있다. 팬데믹과 미·중 경쟁과 같은 대외적인 요인에다 정치권이 불을 지핀 추가 성장동력 확보와 관련한 대내적인 요인이 겹친다. 이른바 ‘대전환’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흐름을 잘 타면 재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일순간 추락의 길로 나가떨어질 수 있는 분위기다. 안타깝게도 내부에서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마치 선진국이라도 된 것처럼 가진 파이를 나누지 못해 안달이다.
재정이 화수분도 아니고 벌써 곳간 바닥이 보이는 데 이에 연연하지 않는다. 국민을 현혹하고, 한편으론 이에 연연하려는 무리를 더 키운다. 기업은 물론이고 노동을 하려는 의욕을 저하시킨다. 세계의 제조업 경쟁이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을 핵심으로 한 신(新)제조업 경쟁으로 불씨가 옮겨가는 중이다. 기존 제조업이 디지털 기술 혹은 서비스업과 접목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속출하고 있다. 기존 제조업의 우위가 미래 제조업에서도 반드시 우위에 선다는 보장이 없다.
미래 실종된 부질 없는 정치 놀음으로 글로벌 경제 강국 위상이 위기에 크게 노출
기술의 융합과 기업 간의 합종연횡, 이에 더해 미·중 간의 편 가르기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로 생겨나고 있는 신(新)시장을 쟁취하기 위한 각축전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원천기술이 요구되고 있지만, 이 부문에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열세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남의 것을 따라하기에 급급해 기술의 축적에서 뒤지고 있는 것이 뼈아픈 현실이다. ‘우월적 선도자(First Mover)’로 변신하지 않으면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제조업 강국이라는 이미지가 사상누각의 늪에 빠지는 것은 삽시간이다. 글로벌 제조 강국들은 환골탈태를 위해 이미 수년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국가적인 프로그램이나 구체적 전략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어차피 정권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이 엎어버리니 계획 자체가 무용지물이다. 정부와 민간이 물과 기름같이 따로 논다. 정치권은 아예 눈과 귀를 닫고 있는 듯하다. 정치가 파행을 거듭하다 보니 미래 먹거리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지 오래다. 국민도 정치의 포로가 돼 국가의 장래에 대해 걱정만 하고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고 있다.
연일 국가 미래와는 거리가 먼 정치적 이슈만 판을 친다. 시장의 기능은 외면한 채 손만 대면 상처가 덧나는 부동산 해법이 난무한다. 중장기적인 대책은 없고, 서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선심성 단기 처방 내놓기에 급급하다. 대권 주자들은 주머니 쌈짓돈 쓰듯이 세금 퍼주기 경쟁으로 혈안이다. 선별적 복지보다는 보편적 복지에 방점을 찍는다. 정치나 정부가 포퓰리즘 타성에 젖어 상식과 이성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집권 세력의 횡포에 야권의 대응도 꼴불견이다. 대안을 내지는 못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만 거듭한다. 국가가 처한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과 이에 대비하는 정권 탈환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진지한 고민이 없고, 이를 만들어낼 만한 전문가 집단이 보이지 않는다. 포퓰리즘 남발 세력에 맞서는 디테일이 절대적으로 부재하다. 그러다 보니 퍼주기 경쟁에 말려들어 뒷북만 친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좌표 설정과 이를 통해 국민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이라는 청사진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나 야 다 같이 초록은 동색이다.
향후 10년을 위한 대전환의 서막이 이미 시작되었다. 기업은 살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정신을 차린 국가들은 위험은 최소화하면서 기회를 잡기 위해 내부를 추스른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도전이 거세다. 중국의 고립화는 진행 중이고, 글로벌 신(新)질서에 순응하기 위해 포지션 변경을 서두른다. 인도와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과의 거리 두기를 하면서 자신들의 덩치를 키우고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미국의 접근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으면서 반대급부를 노린다.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의 중심축에서 중국을 대신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삼는다. 여기서 혼쭐을 놓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자산마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자칫 신(新)제조업의 하도급 국가로 전락하거나 일자리마저 외국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경우의 수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래 먹거리의 국내 둥지는 규제와 간섭으로 막히고 있고, 경쟁자들은 한국 기업을 모셔가려고 갖은 당근을 꺼내 들며 흔든다. 부질없는 정치 놀음에 피땀으로 이룩한 글로벌 경제 강국의 위상이 커다란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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