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릉 
전주 
/지난 500년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대표적인 희생양
/동아시아 세력교체 때 항상 ‘약한 고리’로 공격받아
/한국은 대륙에 위치해 다른 지역보다 외부압력 큰 곳
/외교와 안보 문제에서 남다른 감수성은 기본 소양
/과정 일희일비 말고 결과 중시하며 인내심 발휘해야
대만의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다. 미중(美中) 패권 대결에서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이 새삼 주목 받고 있고, 경제적 측면에서 대만의 반도체 생산 능력이 힘을 더하고 있다. 대만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이다. 지리적 이점이 절묘하다. 중국 해안을 따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길목의 한 가운데에 버티고 있다. 미중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을수록 안보 면에서 반드시 확보해야 할 자리가 바로 대만이다.
이런 지정학적 장점은 달리 말하면 대만이 그만큼 위험한 곳이라는 뜻도 된다. 중국의 대만 침공은 시간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202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창설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인데 그 이전에 대만을 공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만약 현실화할 경우 미국은 대만을 도우러 참전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 일본 유럽으로 편이 갈려 팽팽히 맞설 것이다. 우리도 어떤 형태로는 휩쓸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동아시아 정세를 말할 때 사람들이 주로 관심을 갖는 것은 강대국들의 역학 관계다. 하지만 우리는 시선을 180도 바꿔볼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들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일이다. 한국, 대만, 오키나와가 대표적으로 여기에 속한다. 우리에겐 이 방향이 미래의 활로를 모색하는데 중요할 수 있다. 세 나라는 지난 500년 동안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세력 변동 과정에서 희생양으로 전락했던 공통점이 있다.
16세기 유럽 각국들이 ‘대항해 시대’를 맞아 아시아로 몰려오기 시작했을 때 대만과 오키나와는 서양 무역선들이 이동하는 바다의 길목에 있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주로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였지만 중간 기착지로서 대만과 오키나와가 긴요했다. 네덜란드는 1624년 무력으로 대만을 점령한다. 정작 중국은 대만에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다.
같은 시기 일본은 포르투갈 등 서양 세력과 일찍 접촉하며 당시 ‘게임 체인저’였던 총포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해양세력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구세력’ 중국과 ‘신세력’ 일본의 충돌이 1592년 한국을 무대로 벌어진 임진왜란이다. 한국은 이때부터 강대국들의 ‘경유지’로서 이전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패권 경쟁에 휘말린다.
일본이 한국 다음으로 노린 지역이 오키나와였다. 1609년 오키나와를 침공해 사실상의 속국으로 삼는다. 오키나와는 중국과의 교역도 절실했기 때문에 ‘양다리를 걸치는’ 이른바 양속(兩屬) 체제를 유지했다. 중국으로부터 외교 사절이 찾아오는 날에는 오키나와 관리들이 황급히 중국식 복장으로 갈아입고, 오키나와에 와 있던 일본인들을 눈에 띄지 않게 외곽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이때 중국 대륙에선 명나라가 쇠퇴하고 청나라가 부상한다. 청나라는 한국을 침략해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대만에는 명나라 부흥을 노리던 정성공(鄭成功)이라는 인물이 바다를 건너와 네덜란드 세력을 내쫓고 1662년 최초의 중국인 정권을 세웠다. 한 시스템 안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연쇄 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19세기 후반은 일본이 동아시아의 절대 강자가 된 시기다. 또 한 번의 세력 변동이 이뤄지면서 오키나와는 1879년 일본에 병합됐고 대만은 1894년 청일전쟁의 전리품으로 일본 식민지가 됐다. 한국이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 지배에 들어간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바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일본이 2차 세계대전으로 패망하면서 동아시아의 맹주가 갑자기 사라져 힘의 공백 상태가 초래된다. 그 결과 또 다시 대만, 오키나와, 한국이 격변 속에 내몰렸다.
대만은 일본 식민지에서 중국 영토로 바뀌었으나 중국 공산당의 대륙 평정으로 국민당 정권의 피난처가 됐다. 오키나와는 미국으로 넘어갔다가 미국과 중국의 수교 직후인 1972년 일본에 반환된다. 한국은 남북 분단이 됐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민초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대만에서는 1947년 원주민 2만8000명이 학살당하는 2.28 사건이 있었다. 오키나와 주민 13만명은 미국과 일본의 최후 결전에 총알받이가 됐다. 한국의 6.25전쟁에서 희생자는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
이번 미·중 대결은 16세기 서양의 동아시아 진출 이후 이뤄진 여러 번의 세력 재편 가운데 6번째에 해당한다. 17세기 명청(明淸) 교체기, 19세기 서양 제국주의의 동양 진출, 20세기 중반 2차 세계대전, 20세기 후반의 냉전 체제 이후 나타난 근본적 변화다. 더구나 이번에는 지역 판도가 아닌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격돌하는 더 큰 싸움이다.
그 전선(戰線)은 중국 동해안의 바닷길 위에 형성된 게 특징이다. 중국에는 석유와 원자재를 수입하고 생산품을 수출하는 생명선이다. 이곳이 막히면 중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는다. 반면 미국은 여기를 장악해야 중국의 급소를 노릴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대만·오키나와·한국이 나란히 띠를 형성하듯 놓여 있다. 오키나와는 현재 일본에 속해 있지만 정체성은 뚜렷하게 구별된다. 주일(駐日) 미군기지 등을 둘러싼 내부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국이 다른 점이 있다면 섬이 아니라 대륙의 일부라는 것과, 그로 인해 외부 압력이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비상사태가 터졌을 때 어느 지역보다도 큰 피해와 충격이 불가피하다. 과거 역사는 똑같은 형태로는 반복되지 않는다지만 한국이 동아시아 정세에서 ‘약한 고리’라는 사실과, 강대국들이 쉽게 넘보는 대상이라는 점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국민들은 싫든 좋든 외교와 안보 문제에 남다른 감수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살벌한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본 소양 같은 것이다. 외교 안보에서는 어떻게든 국익을 극대화하는 게 최대 목표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감정에 치우치고 자존심을 앞세우는 건 금물이다. 일이 처리되는 과정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그 결과를 중시하면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시 쉽게 흔들리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일반 국민들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현 정권처럼 집권층이 한술 더 뜨는 건 치명적이다. 대만의 오늘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1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