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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방미 결과에 대한 여론이 분분하고 시큰둥하다. 집권 세력은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침이 마르게 연일 홍보를 한다. 정상 간의 우의와 신뢰가 구축되고, 동맹 관계가 회복됨으로써 한국의 위상이 제고되었다는 평가를 서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백신 관련한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 첨단기술 협력, 42년 만에 미사일 주권 회복 등을 언급한다.
우리 4개 대기업이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부문에 무려 44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Thanks’를 연발하면서 특별한 감사를 표시했을 정도다. 충분한 실탄을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이 정부의 눈치를 보다가 한·미 정상회담의 기회를 이용해 가장 이익이 될 만한 곳으로 투자를 전격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글로벌 가치사슬에 재편되고 있는 과정에서 중국보다 미국 편에 서는 쪽이 중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를 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우리 정부는 뒤가 켕기는지 중국에 전후 상황 설명을 하면서 이해를 구한다. 주권 국가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이럴수록 중국은 우리를 더 업신여긴다.
이런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국민의 시선은 차분할 정도로 냉정하다. 삐걱거리던 트럼프 정권 때와 달리 한·미 관계가 정상적으로 복원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측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코로나 영향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국내 경제와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는 청년들의 측면에서 보면 정부의 이런 자화자찬이 그리 달갑지 않다. 우리 기업이 천문학적인 규모로 투자해 미국의 일자리만을 늘려주는 것에 대해 이들이 후한 점수를 줄 리 만무하다.
우리와 경쟁적인 위치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밖에 나가 있는 기업을 본국으로 되돌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한술 더 떠 팔을 걷어붙이고 첨단기술을 가진 외국 기업을 자국으로 유치하려고 갖은 당근을 제시한다. 우리는 이와 정반대다. 나가 있는 기업이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더라도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3국행을 택하는 것이 다반사다. 안에 있는 기업들도 국내 투자는 애써 외면하고 호시탐탐 밖으로 나가려고 안달이다. 갈수록 국내 산업은 공동화되고, 지역 경제와 일자리 창출은 수렁에 빠지고 있는 것이 당면한 현실이다.
냉정하게 보면 실제로 이번 방미 정상회담으로 우리가 얻은 경제적 성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준 것에 비해 받은 것이 적다는 점에서 그렇다. 앞서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미국에 별로 준 것이 없는 데도 1억회 분의 화이자 백신을 추가로 확보한 결과와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미국의 백신 지원 원칙이 인접국→쿼드3국(일본·호주·인도)→동맹국 순(順)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회담 전부터 우리가 희망했던 백신 스왑은 처음부터 의제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회담 결과 추가로 받은 백신이라곤 한국군 장병 55만명분이다. 이는 북한의 위협에 맞서고 있는 군인들에 대한 백신 접종이 향후 재개될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염두에 두고 지원한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하다.
한국이 아시아 지역의 mRNA 백신 생산 허브가 되는 것과 백신 확보는 별개의 문제다. 또 다른 계약이 필요한 것이다. 생산국이라는 유리한 입지를 활용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백신 확보로 연결하는 추가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이에 관해서는 다소 간의 시차를 두고 엄중한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5년 단임 정권 단기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미래 국가경쟁력 비전과 청사진 실종
미국과 첨단기술과 관련한 글로벌 가치사슬 협력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마저도 정부가 잘 했다고 평가하기 보다는 우리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 등이 글로벌 가치사슬 내에서 영향력을 높게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반(反)기업·시장 정서에 내몰려 섣부른 행동을 하기에 제약 요인이 많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기는커녕 늘어나기만 하는 온갖 규제와 포퓰리즘 남발로 기업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정책이 있다고는 하나 5년마다 손바닥 뒤집듯이 엎어버리니 투자에 대해 확신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현 정권은 경제 논리보다 정치 논리를 먼저 내세우다 보니 기업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고, 설상가상으로 악순환이 거듭된다. 오죽하면 집권당 내부에서까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웠다는 자성론이 나오겠는가. 편 가르기는 자기편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내 편과 남의 편을 모두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국내 연구기관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만 무려 7만2000개의 일자리가 해외로 새어 나갔다. 대기업 정규직만 1만명이나 감소했다.
미래 먹거리에 대한 비전이나 청사진이 뚜렷하지 않고, 아예 실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년 단임 정권이 단기성과에 급급하다 보니 이런 것에 관심을 둘 리가 없다. 모두가 임기응변이고 당장 정치적 계산을 하기에만 바쁘다. 제조업 강국들은 제조업 르네상스를 통한 미래 첨단산업 우위 선점을 국가 정책 어젠다의 1순위에 두고 있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로 기술 자립화에 더해 우월적 선도자로의 도약을 노린다. 미국은 ‘첨단제조 파트너십’으로 제조업 재건과 중국을 저지하는데 진력을 한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을 제조업 강국의 면모일신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일본은 ‘신산업 구조 비전’으로 산업 재편과 제조업의 부활에 범(凡)정부적 대처를 하고 있다. 이들 4대 강국의 순위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오랫동안 유지해 온 글로벌 5대 제조 강국의 자리를 인도에 내주고 6위로 내려앉은 것이 작금의 우리 포지션이다. 인도 말고도 맥시코, 브라질 등 우리 턱밑을 추격하고 있는 국가들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우리 위치가 위태롭다는 방증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가진 역량을 지키거나 위로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기업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환경 하에서 국가경쟁력이 상승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못가에서 숭늉을 찾는 꼴이다. 어렵게 정부가 510조 ‘K-반도체’ 전략을 수용했다고는 하지만 클러스터 용수, 송전 시설 확보 등에만 1년 이상이 허비되는 등 각종 규제의 틀에 갇혀 있다.
인프라, 세제 혜택, R&D 비용 지원 등의 측면에서 경쟁국인 미국이나 중국과 비교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간과 싸우는 기업 처지에서 보면 속이 타들어 간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국회는 연일 정쟁만 일삼고 자기들의 이익 챙기기에 바빠 뒷전으로 밀려 나가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기업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이를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지 않으면 둥지를 떠난다. 방미 성과를 내세우기보다 왜 미국이 그토록 자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고마워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첨단 기술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는 전술을 보란 듯이 세계에 과시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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