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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개최 여부 불투명
/IOC와 조직위, 서로 ‘폭탄 돌리기’
/죽음을 각오하고 출전하라는 IOC
/선수단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해야
1964년 제18회 도쿄 여름 올림픽은 ‘여름’이라는 단어가 무색했다. 가을의 한 가운데인 10월 10일에 개막했다. 화려함의 극치인 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 최종주자는 사카이 요시노리라는 19세 청년이었다. 그는 당시 와세다대학 1학년생으로 육상 중장거리 선수였다. 외국 언론들은 그를 ‘히로시마 베이비’, ‘원폭 소년(atomic boy)’으로 불렀다. 사카이는 원자폭탄이 투하되던 당일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카이를 성화 최종주자로 내세운 일본의 의도는 분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 전쟁의 참화를 딛고 올림픽 개최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인 점은 일본이 꿈꿨던 올림픽 개최국의 모습은 ‘다시 일어선 패전국’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1964 도쿄올림픽 일본의 도약기
이날 개막식은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일어난 나라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기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64년 올림픽은 최초로 컬러 TV 영상을 송출한 대회인 동시에 최초로 북미와 유럽 시청자들에게 위성을 통한 생중계를 제공한 대회로, 수많은 사람들이 올림픽의 장관을 즐길 수 있었다. 아름답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개막식은 황홀한 순간들로 가득찼다. 2시간가량 진행된 개막식은 다섯 대의 제트기가 스타디움 상공을 날며 오륜을 그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원래 일본은 올림픽을 통해 일본 제국의 위용을 자랑하고 싶었다. 아시아와 태평양의 광대한 지역을 호령하는 이른바 ‘대일본 제국’ 말이다. 그래서 유치했던 게 1940년 제12회 도쿄 여름 올림픽이었다. 이 대회는 그 어디에서도 열리지 못했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서구 세계가 반발했다. 일본은 결국 국제 여론에 밀려 개최권을 반납하는 처지가 됐다.
1940년 올림픽 개최권은 핀란드의 헬싱키에 넘어갔다. 하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올림픽은 결국 열리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된 1916년 제6회 여름 올림픽에 이어 두 번째 취소였다. 1916년 올림픽을 유치한 건 독일의 베를린이었다. 전쟁으로 취소된 두 번의 올림픽 원래 유치국은 공교롭게도 모두 전범국이었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이후 일본은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다. 도쿄가 2020년 제32회 여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2013년 9월 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였다. 일본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피해를 딛고 일어선 모습, 즉 재건과 부흥이었다.
1년 연기에도 여전히 불투명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창궐한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2020년 7월 24일 개막 예정이던 대회가 1년 연기됐다. 새로운 개막일인 7월 23일까지는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대회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 일본 내 상황도 여의치 않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줄어들 줄 모른다. 개최 반대 또는 재연기 여론도 비등하다. 개최 자체를 우려하거나 불참을 선언하는 선수들 목소리도 이어진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꺾이지 않는 일본 내 코로나19 감염 확산세로 개최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도쿄 올림픽 후원사로 유력지인 아사히신문이 오죽했으면 사설을 통해 올림픽 취소를 결단하라고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게 촉구했을까. 일본 내에 비등한 올림픽 개최 반대 여론을 반영한 주장이었다. 지구촌 스포츠 축제의 운명은 이렇듯 안개 속에 갇혀 있다.
일본 정부와 IOC 모두 개최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지만 자칫 세계 각국의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희망 고문’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일본 정부와 IOC가 올림픽 개최를 강행하려는 이러한 배경에는 엄청난 규모의 중계권료 등 돈과 얽힌 문제가 상당 부분 걸려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바닥난 지지율을 역전시켜보겠다는 일본 내 정치적인 속내도 고려된 듯하다.
안전한 경기 운영이 최우선
그러나 어떤 경우의 수가 됐든 올림픽 개최 혹은 취소 결정은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경기 운영이 최우선 고려사항이 되어야 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림픽이 예정대로 열린다는 것을 전제로 4월 D-100일에 정인화 부산시 체육회장을 도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장으로 선정, 발표했다. 태극 전사들은 진천 선수촌에서 훈련에 여념이 없다.
일본 정부와 IOC는 한 목소리로 개최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내심 서로 눈치를 보며 ‘대회 취소 발표’라는 폭탄을 돌리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려는 IOC는 대회로 인해 코로나19에 걸리면 ‘본인 책임’이라는 서약을 요구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도쿄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단이 대회 기간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경우에도 주최자인 IOC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면책된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받겠다는 것이다.
특히 동의서는 이례적으로 선수가 중태나 사망에 이를 가능성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올림픽의 주인공인 선수들에게 자기 책임 하에 최악의 경우 죽음을 각오하고 출전하라는 얘기다. 메달 획득과 세계 기록을 향한 도전, 국위 선양도 좋지만 유사시에 아무런 보상이나 지원도 받지 못할 치명적 위험을 감수하고 참가하라면 흔쾌히 동의할 선수가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올림픽 개최 여부의 열쇠는 일본 정부나 IOC에 있지 않고, 올림픽 중계권을 가진 미국의 NBC 방송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NBC는 올림픽 중계권료로 IOC에 수 조원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IOC의 재정은 바로 올림픽 중계권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OC가 올림픽을 강행하려고 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엄청나게 상업화한 올림픽이라는 판만 벌이게 되면 엄청난 자금이 들어오는데 IOC가 굳이 이를 막을 이유가 있겠는가.
쿠베르탱의 올림픽 이념 되새겨야
IOC도 더 이상 눈앞의 이익만 따지지 말고 전 세계 선수단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하는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스포츠를 통한 인류 평화에 이바지 하겠다며 120여년 전 근대 올림픽을 창설한 피에르 쿠베르탱의 이념을 되새겼으면 한다.
일본이 올림픽 유치전 당시 내건 슬로건은 ‘내일을 발견하자(Discover Tomorrow)’였다. 대회를 유치한 뒤 정한 공식 슬로건은 ‘감동으로 하나가 된다(United by Emotion)’이다. 내일이 보이기는 하는가. 또 감동으로 하나가 될 수는 있을까. 도쿄 올림픽 역사는 왜 이리도 잔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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