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재계문화 경종 울린 구지은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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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30대 당대표 이준석-장자승계 원칙타파 구지은
‘이변의 주인공’ 수식어 같지만 다음 스텝은 제각각
경영권 장악과 재도약 첫 걸음은 ‘구명진 능력검증’

김신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6-14 00:02:03

지난주 우리나라 정치권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올만한 굵직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헌정사상 첫 30대 당대표의 등장이다. 그것도 일개 군소정당이 아닌 국회 102석을 차지한 제1야당 당대표다. 그동안 50대 조차 청년으로 여겨질 정도로 정치권의 고령화가 보편화 된 점을 감안했을 때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0대 당대표가 등장한 지 불과 수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정치권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 당대표 경선 이전부터 이미 ‘돌풍’이라 불릴 정도로 일반 대중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고 당원 투표로 진행된 경선조차 같은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각 정당들은 세대교체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을 인정한 듯 발 빠른 대처에 나서고 있다. 그 모습에는 자칫 ‘꼰대 정당’ 이미지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경계감이 서려있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재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존의 보편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른 파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장자승계 원칙이 보편화 돼 있는 재계에서 막내딸이 후계자로 지목된 장남을 밀어내고 경영권을 거머쥔 사건이다. 재계 등에 따르면 구지은 대표와 구미현 씨, 구명진 대표 등 아워홈 세 자매는 약 59%에 달하는 지분율을 앞세워 장남인 구본성 부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시켰다. 아워홈의 새로운 대표이사는 자매 중 가장 막내인 구지은 대표가 선임됐다.

구 부회장의 해임 사유로는 △이사보수한도 사용초과 및 증액 논란 △정기주총 개최 관련 법, 정관 무시 논란 △보복운전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선고 등이 지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서도 지난 3일 법원이 보복운전으로 차량을 파손한 혐의에 대해 구 부회장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세 자매의 ‘반란’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얼핏 보며 후계자들 간에 경영권 다툼 정도로 비춰질 법 하지만 이번 사건은 유독 흥미로운 이유는 따로 있다. 승자와 패자가 과거와 180도 바뀌었음에도 주변의 반응이 ‘한결같다’는 점이다. 앞서 구 부회장이 아워홈 경영 일선에서 한창 활약하던 구 대표를 제치고 후계자로 지목됐을 때만 해도 ‘크게 이상할 것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해당 기업이 바로 범LG家 기업인 아워홈이기 때문이다. 유교적 가풍을 중요하게 여기는 범LG家의 경우 철저한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구 부회장의 등장 역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약 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구 부회장이 불미스럽게 퇴진하며 승자와 패자가 엇갈렸지만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유교적 가풍의 범LG家 기업에서 이변에 가까운 일이 발생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세 자매가 절대적 지분율을 앞세워 이사회를 장악했다곤 하나 아워홈 내부에선 작은 잡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여론 또한 단순히 구 대표가 취임했다는 쪽에 관심이 쏠렸을 뿐 장자승계 원칙이 사라진 파격적 사안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단 5년 만에 승자와 패자가 엇갈렸음에도 반응이 한결같다는 것은 결국 주변의 인식 또한 철저하게 바뀌었다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미다. 과거엔 어떨지 모르나 지금은 무조건 장자가 아닌 명분과 능력을 중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다. 구 대표가 한창 경영 일선에서 활약 중인 상황에서 경영과 무관함에도 구 부회장이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차지한 일이 현 시점에 벌어졌다면 반응은 분명 과거와 다를 것이다. 주변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들끓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바뀐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안 받고는 철저하게 본인 하기에 달렸다. 이미 정치권 돌풍의 핵인 이준석 대표는 본인만의 철학을 앞세워 일찌감치 준비해 놓은 스텝을 밟고 있다. 한발 앞서 이변의 주인공이 된 구 대표 역시 그래야 한다. 자신의 색깔을 앞세워 아워홈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구 부회장에 대한 악화된 여론이 잠시 구 대표의 손을 들어줬을 뿐 아직까진 의심의 시선이 적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하루 빨리 잠재된 위협을 해소하고 아워홈 도약에 매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시작은 임시로 앉혀 놓은 구명진 캘리스코 대표의 경영능력 검증이 돼야 할 것이다.

김신 s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