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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아들로 레슬링에 흠뻑 빠져
/첫 금메달로 체육강국 밑거름 다져
/하루 16시간 혹독한 지옥훈련 소화
/국민성원 보답코자 말년 봉사 투신
지금부터 45년 전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온 국민의 사랑을 심장에 담아 세계의 가장 높은 벽에 도전한 한국인이 있었다. 그는 경제부터 스포츠까지 약소국 대한민국의 선수였으나 강인한 도전정신으로 무장돼 있었다. 23세의 청년은 첫 금메달리스트로 대한민국 올림픽의 역사를 장식했다.
그의 도전정신은 체육연금제도와 한국체육대학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결국 그의 금메달은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그의 첫 금메달을 시발로 대한민국이 이제까지 동하계 올림픽에서 거둬들인 금메달은 무려 102개에 이른다. 대한민국이 스포츠 강국의 반열에 오르는데 밑거름이 된 셈이다.
그의 스토리는 감동적인 한편의 서사시로 기록될 정도다. 그만큼 레슬러 양정모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세워준 은인이자 감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힘셌던 모범생
양정모는 6‧25전쟁이 막바지이던 1953년 2월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이는 ‘거북이’라는 별명이 달렸을 만큼 과묵했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생이었다. 힘이 셌기에 스포츠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레 스포츠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방앗간을 운영한 덕에 경제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컸던 그의 놀이터는 부산의 용두산공원이었다.
근처에 한일체육관이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기합소리에 어린 소년은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키가 작았기에 레슬링이 먼나라 이야기로 여겨졌다. “레슬링은 체급별 경기여서 덩치가 큰 선수만 하는 게 아니다. 잘 하면 국위선양도 할 수 있고 대학에도 갈수 있다”는 선배들의 말에 혹했다.
호기심으로 친구들과 함께 레슬링을 시작했지만 끝까지 남은 건 양정모뿐이었다. 레슬링에 재미를 느꼈으며, 자연스레 선배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덕에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1971년 부산 동아대에 입학한 그는 평생의 스승인 오정룡을 만나 기술에 파워가 더해짐으로써 국내에서는 무적이 되었다. 1970~1979년 9년 동안 한국 레슬링 페더급 자유형을 석권했다.
하루 16시간씩 지옥 훈련
올림픽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양정모는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해 준비체조와 함께 400m 러닝으로 몸을 풀고 크로스컨트리 1km 1회 왕복, 400m 1회 왕복, 500m 3회, 300m 3회, 100m 2회를 최대 스피드로, 허들과 팔굽혀펴기 30분, 밧줄타기 3회로 오전 훈련을 소화했다. 오후 3시30분부터 오후 훈련에 돌입해서는 옆굴리기 반복 연습 1시간, 태클 반복 연습 1시간, 스파링 훈련을 한 뒤 야간훈련을 90분씩 소화했다. 이러한 운동만으로 하루에 2.7kg을 감량해 태릉에서의 훈련이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입증했다. 게다가 10명 정도가 한 선수를 집중 공격해서 맥박이 220이상 올라가는 교체공격 훈련도 수시로 실시했다. 하루 24시간 중 혹독한 훈련으로 16시간을 채웠다.
1m62의 체구가 작은 양정모는 체력이 뛰어난 반면 스피드가 느려 유격훈련보다 더 혹독한 특별훈련을 받아야 했다. 1주일에 두 차례씩 15kg짜리 모래 재킷을 입고 인근 불암산까지 8km를 왕복했고, 한밤중 불시에 기상해 산중이나 얼어붙은 중랑천 위에 서는 정신력 훈련도 거듭했다. 인간 한계를 테스트하고 고통을 주는 훈련의 반복이 있었기에 올림픽 금메달을 일굴 수 있었다. 세계 최고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고 땀은 정직하다는 진리를 보여준 것이다. 혈기왕성했던 양정모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훈련을 때려치우고 달아나고픈 심정이 들었으나 참고 또 참았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북한은 금메달을 따 종합 순위에서 우리를 앞섰다. 당시 박정희 정권 차원에서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는 북한을 반드시 이기겠다고 별렀다. 당시 남북한은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도 서로에게는 결코 질 수 없다는 경쟁이 치열했다.
대한민국 1호 금메달에 환호
몬트리올 올림픽 종반전에 접어들었지만 노메달로 침통해 있던 한국 선수단에 환호를 선물한 것은 양정모였다.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 결승리그에서 양정모는 몽고의 오이도프를 꺾고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1976년 8월1일 일요일 아침, 캐나다에서 날아든 금메달 소식은 국민들의 타는 목을 적셔줄 단비처럼 반가웠다. 대한민국은 환호와 기쁨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 결국 한국은 금 1개, 은 1개, 동메달 4개로 북한(금1, 은 개)을 제칠 수 있었다.
서방국가들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는 바람에 양정모는 더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었고, 결국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조폐공사 레슬링팀 감독으로 재직하다 팀이 해체되면서 야인으로 돌아갔다.
양정모에게 봉사는 제2의 삶이었다. 레슬링이 그의 천직이었다면 봉사하는 삶은 두 번째 책임과도 같았다. 그의 삶은 꽃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삶에는 영광과 환희의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 그 자리를 오랜 시간 지키기까지 무수히 많은 지옥훈련을 했고, 무수히 많은 것들을 극복했으며 무수한 고통을 감내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영광과 환희의 순간을 언제나 국민과 함께하며 지금에 이르렀기에 그는 국민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다. 베푸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고 있다는 그가 봉사에 집중하는 이유는 국민과의 의리 때문이다. 국민에게 받은 사랑을 훗날 꼭 돌려줘야한다고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은퇴 후엔 봉사에서 금메달 캐려
2003년 7월 레슬링계를 완전히 떠나 역대 동계와 하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한국 올림픽 챔피언 클럽’ 초대 회장에 추대된 양정모는 소년소녀 가장과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하고 있는 청소년 등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따뜻한 마음으로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인간 양정모의 힘이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 달려간다는 그는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을 깼고, 사회에서는 봉사활동으로 또다른 금메달을 캐고 있다.
어느새 머리에는 백발의 서리가 내렸고, 체중도 불어났다. 몬트리올에서 올림픽의 첫 번째 금메달을 딴 지 무려 45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가 지도자 생활을 접은 지도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날렵하고 강인한 현역 레슬러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봉사는 이제 그의 삶의 전부다. 물론 그 뿌리에는 레슬링이 있다. 강연료든 초상권료 등 어디서든 돈을 받으면 무조건 레슬링에 50%를 기부하곤 한다. 지금껏 사는 게 레슬링 덕분이니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 개막이 40일도 채 남지 않았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열리는 이 대회에서 태극 전사들이 얼마나 많은 금메달을 건져 올릴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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