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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2-3>
누가 뭐라 해도 현재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586세대임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586세대는 단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를 독식하며 공고한 지위를 점유해왔다. 특히 정치에서 586은 1987년 민주항쟁을 거치며 이념적으로 주도권을 쥐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 제도권으로 진출하면서 재야의 저항세력에서 엄연한 주류의 일원으로 탈바꿈을 했다.
문재인 정부는 ‘586운동권 청와대’라고 말해도 손색없을 만큼 586권력의 최정점이었다. 그런 586이 주류로 편입된 이후 20여년간 한국사회가 달라진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저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훈장을 달고 이제껏 우려먹은 건 아닐까.
결국 이 같은 의문점이 풀리게 된 것이 바로 ‘조국 사태’였다. 숨겨졌던 586 진보 귀족의 민낯과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지난 4·7재보궐선거는 사실상 586의 시효가 끝나가고 있음을 입증한 결과였다.
재보선 직후 미미한 저항이긴 하지만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전용기 등 5명의 초선 의원들이 입장문을 발표했다. 머리를 치켜들고 선임자들에게 대든 것도 아니다. 기껏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분열했다”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감히 ‘절대자’ 조국 을 입에 올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초선 5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여지면서 꼬리를 내리는 등 조기 진압 당했다. 이들 초선 의원들은 3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조차 기념사진을 찍었을 뿐 죄인을 자처하며 백기투항을 스스로 인증해버렸다.
이런 와중에 엉뚱한 곳에서 불통이 튀었다. 국민의힘이었다. 국민의힘 역시 세대 개념의 586만 있을 뿐이었다. 친박 패권주의가 남아 있으나 그들의 구심력 역시 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보수분열의 마지막 아이콘이라 불리는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로 되면서 세상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다.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낀 대중, 특히 2030 ‘MZ세대’는 원내 경험이 없는 36세 정치인의 돌직구에 열광하고 있다. 그는 “공정과 경쟁이 보수의 핵심가치”라고 선언했다. 평범한 언술인 것 같지만 조국의 불공정에 포박된 현 정권을 정조준 한 승부수였다. 대중은 기존의 정치문법을 거부하고 겁없이 덤비는 이준석에게서 강렬한 유대감과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도부까지 확 달라졌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조수진, 배현진, 김재원, 정미경이 최고위원에, 김용태 광명을 당협위원장이 청년 몫 최고위원으로 뽑혔다. 6인 가운데 여성이 3명인데 이중 두명은 초선이다. 이 역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놀라운 변화다. 국민과 당원들이 이준석 대표 체제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핵당한 폐가(廢家)에서 다원적 유럽좌파 정당의 면모가 ‘만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큰일 했다.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변화하는 조짐”이라고 축하의 말을 했다. 이 축하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준석과 윤석열에게 ‘공정’ 이라는 신형무기를 쥐어준 조국의 불공정과 위선을 옹호하고 덮으려한 데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
4·7 재보선 참패 이후 30대 초선 5인과 송영길 대표의 반성, 사과를 조롱한 강성 찬문(문파)의 민심 역주행도 반드시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조국의 시간’이 계속되고 문 대통령이 감싸기를 한다면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
30대 청년 당 대표로서 승리의 기쁨은 짧고 책임의 무게는 남다를 것이다. 그는 ‘공정 경쟁’ 외엔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스스로 ‘변화에 대한 거친 생각들’ 이라고 표현했듯, 공직후보자 자격 시험이나 연설대전을 통한 대변인단의 공개 선발 같은 기술적 변화를 넘어 근원적 혁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준석이 한 시대를 거머쥐려면 백팩에 공유자전거 따릉이로 출근하는 스타일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함이 많다. 치열함으로 허전한 정치적 실체를 채워줘야 한다.
이준석의 능력주의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다. 명심할 것은 대중이 이번에 선택한 것은 이준석이 아니라 ‘이준석 현상’일 뿐이다. 대중의 열광은 그의 극단적 능력주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냉소, 여성, 청년, 호남 할당제 폐지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분노와 심판을 누군가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가 끓었던 결과이기도 하다. 이걸 혼동하면 이준석도 실패하고 보수야당도 혁신의 기회, 정권 재탈환의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다.
36세 청년 이준석, 102석의 제1 야당 대표에 대해 내린 평가는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30대 0선’인 이준석 후보가 제1야당 대표로 당선된 것은 ‘특정 지역당’ 또는 ‘꼰대당’이라 불리는 국민의힘의 체질을 확 바꿔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하라는 중도보수층의 간절한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주도하거나 거대한 당 조직을 운영해 본 적이 없는 이 대표의 경험 부족을 우려하기도 했다. 언론의 평가와 지적대로 국민의힘은 새 지도부의 구성과 함께 이제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 것이 맞다. 따라서 당의 얼굴을 30대 청년으로 바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청년당원들의 활동공간을 넓히고 중도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전국정당’다운 체질로 바꿔야하는 어려운 과제가 놓여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 대표가 국민들의 마음속에 심어주어야 할 것은 믿음이다. 그 믿음은 그가 당선된 날 한 약속의 이행이다. 4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아주 달콤한 말로 국민들에게 굳게 약속한 바가 있었다. 그것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들은 배신감이 들 때마다 이 말을 외웠다.
이 대표는 국민에게 “쇄신과 개혁”을 약속했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이 대표의 ‘시대정신’이 됐다. 그래서 꼭 지켜야 한다.
유력 야권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영입도 매우 큰 과제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입당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여전히 ‘전략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8월말까지’라는 시한을 정해 국민의힘 당내 경선 일정은 기다리지 않고 추진한다는 ‘경선버스 정시출발론’은 필자의 사견으로는 유연한 방안이 아닌 것 같다.
당의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시기는 11월까지이므로 시간을 두고 숨고르기를 하면서 영입하는 자세가 옳지 않은가 생각된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최재형 감사원장 등 야권 대선 후보군인 당 밖의 인사들과의 접촉점도 늘리면서 대선경선을 흥행시키는 방법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서 당내 모든 대권주자들의 판을 키워주고 역량을 홍보하며 이해관계가 얽힌 경선관리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정한 대선 관리야말로 이 대표의 최대 책무이다.
‘이준석 현상’은 분열과 적대를 청산하고 통합의 광장으로 달려오라는 시대정신과 만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정글의 법칙’을 숭배하면서 정당한 비판에 귀를 닫는다면 ‘이준석 현상’은 소멸되고 정권교체는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이준석 현상으로 국민의힘 지지율이 최근 30%대로 상승했지만 당내엔 10%대 대선 주자가 단 한명도 없다는 게 현실이다. 후보 단일화 등 야권 통합과 연대의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내야 하는 것 또한 이준석의 몫이다.
실수, 실언이 과오로 이어지지 않도록 성찰하고 소통해야 한다. 국민의힘의 운명은 이제 이준석에 달렸다. 지금 ‘내로남불’의 대명사로 불러지는 민주당은 뒤쫓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젠 여야 간 누가 더 많이 제대로 변하느냐의 경쟁이 시작됐다. 일단은 한국 정치의 변화를 위해선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 생각된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들도 그 후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전도서 1 : 10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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