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박물관, 돈의문박물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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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의 도시인문학

살아있는 박물관, 돈의문박물관마을

유영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6-23 11:05:04

/마을 배우와 전시·체험 프로그램 진행, 근현대사 재연

/길 걷다 들어서면 시간여행 온 듯 골목과 주민 만나

/‘리빙 뮤지엄’의 예로써 다른 생활사박물관과 차별화

/재건축·재개발로 사라지는 역사문화자원 보존-활용

/기억할 매개체를 남기고 계속 마주할 생명력을 잇길

“안녕하세요. 돈의문박물관마을 골목대장, 초등학교 5학년 이새문입니다. 오늘 저와 함께 마을을 둘러보실까요.”

주황색 바구니에 과자를 한아름 안고 있는 청년이 마을안내소 앞에서 사람들을 모은다. ‘플레이 도슨트’라고 불리는 마을 투어는 6080시대 마을 주민으로 가장한 배우들이 친근하고 재미있는 콘셉트를 가지고 방문객들에게 마을을 소개하는 시간이다. 부캐(일상생활과 다른 또다른 자아, 부캐릭터의 준말)가 유행하며 역할극에 낯설지 않은 요즘, 도시공간을 탐험하는 신선한 연출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실내에 구성된 박물관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민속촌과 같은 테마형 마을도 아니라는 점에서 독특한 형태를 지닌다. 길을 걷다 들어서면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한 골목이 늘어서 있고 때로는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주민을 자칭하는 사람들도 마주한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살아있는 근현대 역사를 만나보는 장소인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우리가 지금껏 생각했던 박물관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돈의문은 지금은 사라진 한양의 서쪽 대문이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돈의문 안쪽 일대인 새문안 동네의 역사를 바탕으로, 1900년대 중반 주거와 상업 목적으로 사용된 건축물을 활용하여 조성되었다. 본래 돈의문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이 2014년 종로구에 해당 부지를 기부채납함에 따라 당초 근린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었으나, 역사문화적 중요성이 강조되어 박물관마을로 변경되었다. 돈의문역사관, 근대 개항기 공간, 6080 레트로 공간을 테마로 한 마을 전시관과 체험교육관, 이외 서울도시건축센터, 이용객 편의시설 등으로 구성된다. 2017년 9월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에 맞추어 1차 임시사용이 승인되었으며, 2020년 6월 2단계 준공에 이르렀다. 기존의 도시 조직을 일부 활용하여 역사문화자산에 집중한 문화형 도시재생의 사례로써, 전면 철거 후 신축하는 기존 재개발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평가된다.

서울시는 기존 도시적 맥락을 보전·활용하는 도시 재생의 전략으로서 조성 단계에서 ‘살아있는 박물관 마을’을 비전으로 삼았다. 2019년부터 본격적인 운영단계에 접어들며 ‘근현대 100년, 기억의 보관소’를 기본 콘셉트로 전시 구성과 도슨트, 축제 등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특히 2021년 돈의문박물관마을 운영계획에서는 살아있는 박물관을 지향한다는 점을 서울생활사박물관 등 타 문화시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 언급하고 있다.

▲음식점이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새문안마을 일대의 역사를 담은 돈의문역사관을 조성했다. [사진=필자 제공]

살아있는 박물관이 무엇일까.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밤마다 전시품들이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며 우리를 놀라게 하는 광경이 떠오른다. 하지만 살아있는 박물관은 실제 박물관 유형으로 존재한다. 글자 그대로 리빙뮤지엄(Living Museum)은 1970년대 박물관의 전시품들이 도시공간이라는 맥락에서 분리되어 생명력을 잃은 채 전시된다는 비판의 대안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은 전시관 안에 굳어진 역사가 아니라 현재 시점에 관객인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요소로서 역사를 재연하고 해석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역사문화자산의 활용 측면에서 살아있는 박물관(living museum)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특히 리빙 히스토리언이라는 매개 인물을 둠으로써 관객이 더욱 역사적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근현대 역사를 배경으로 박물관마을의 전시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특히 마을 배우를 통해 돈의문 마을 일대의 근현대 역사를 재연하고 전달하고자 한다는 면에서 리빙 뮤지엄의 예시로 볼 수 있다.

▲새문이와 함께하는 돈의문박물관마을 투어 모습. 퀴즈를 맞히면 옛 문방구에서 만났던 추억의 과자를 경품으로 받을 수 있고, 모든 질문의 답은 초등학교 5학년 새문이의 관점에서 돌아온다. [사진=필자 제공]

물론 리빙뮤지엄은 역사를 재연한다는 면에서 태생적으로 진정성에 대한 이슈를 품는다. 재연을 하는 주체, 즉 박물관마을의 조성과 운영자가 해석하여 재연하는 과정과 이를 체험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역사는 두 번 해석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빙뮤지엄을 기회로 바라보는 학자들은 살아있는 박물관은 우리에게 역사적 장소가 아닌 역사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환기의 장소라고 말한다. 진정성에 대한 이슈 너머 박물관의 유리장 밖에서 바라만 보는 역사가 아니라 실제 만지고 느끼고 대화 가능한 역사의 상황과 마주하는 면을 강조한다.

박물관학자 도미니크 폴로는 “박물관이 인간에게 ‘시대감각’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로서 시대를 감각하기 위해 전시품은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사회적 성찰을 위한 인식과 해석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살고 있는 세대가 기억하는 도시의 공간들이 하나둘 재개발·재건축을 이유로 사라지는 가운데, 기억할 수 있는 매개체를 선택적으로 남기고, 계속해서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는 생명력을 잇는 방안이 함께 모색되어야 하겠다. 이러한 배경에서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추구한 ‘살아있음’은 지속해서 사람들이 방문하고 체험할 수 있는 ‘동시대의’라는 의미로 바라볼 수 있다. 리빙 뮤지엄으로서 근현대 역사문화자산의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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