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사이클 올라탄 ‘반도체 장비’…국산화율 20%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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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반도체 장비 업체 주문액 4조원 상회…전년 동월 대비 53.1% 증가
세계 반도체 장밋빛 전망…“국내 반도체 장비업계 R&D·협력 속도내야”

오창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6-23 15:14:55

▲ 23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달 북미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전 세계 주문액 총합은 35억8840만달러(약 4조617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달과 비교해 무려 53.1% 증가한 수치다. 사진은 반도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호황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선행 지표 격인 반도체 장비 시장도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등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의 경우 국산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이번 호재를 누리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3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달 북미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전 세계 주문액 총합은 35억8840만달러(약 4조617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달과 비교해 무려 53.1% 증가한 수치다. 직전월인 올 4월과 비교해선 4.7% 늘었다.

특히 올해 들어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주문액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올해 1월 주문액 총합은 지난해 같은달 대비 29.8% 증가한 30억3820만달러(약 3조4511억원)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오름세는 지속됐다. △2월 31억4310만달러 △3월 32억7390만달러 △4월 34억2890만달러 등 주문액은 매달 증가하는 추이를 보였다. 그리고 지난달엔 35억달러선을 상회하며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SEMI는 차량용 반도체를 필두로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이른바 ‘쇼티지(공급 부족)’를 해결하기 위해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증설에 나서면서 반도체 장비 투자 역시 늘어나고 있다고 봤다.

아짓 마노차 SEMI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업계가 잇따라 조치를 취하면서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주문액 역시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실적이 치솟으면서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호황을 점치는 목소리가 덩달아 커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반도체 장비 시장의 동향은 전체 반도체 시장 상황을 예측하는 선행 지표로 꼽힌다. 반도체 장비 업계의 흐름이 5~6개월 후에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업계는 투자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EMI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반도체 장비 투자액 총합은 235억7000만달러(약 26조7849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1%나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해선 21% 늘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한국이 73억1000만달러(약 8조3071억원)로 반도체 장비에 가장 많이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중국 59억6000만달러(약 6조7729억원) △대만 57억1000만달러(약 6조4888억원) 등이었다.

이같은 반도체 장비 업계의 긍정적인 분위기는 향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미 일부 시장조사기관들은 기존에 발표했던 올해 반도체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국제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이달 초 올해 반도체 시장 매출 증가율을 기존 10.9%에서 19.7%로 2배 가까이 확대 조정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도 이달 중순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5% 늘린 24%로 수정했다. 전체 반도체 제품군 33종 가운데 32종이 성장하며 호황이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렇듯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잇따르고 있으나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 장비 업계의 국산화 속도가 더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경우 반도체 장비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48억7000만달러(약 5조5000억원)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반도체 장비의 수입은 최대 수준인 반면 국산화율은 20%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미세공정에 필수적인 노광 및 에칭 장비의 경우 100%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램리서치, ASML, 도쿄일렉트론 등 4개 업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60%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네덜란드 ASML이 만들고 있는 EUV 노광 장비는 확보 유무에 따라 반도체 업체의 기술 경쟁력이 결정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장비로 꼽힌다. ASML는 연간 40대 정도의 EUV 노광 장비를 만들고 있는데 내년 생산량까지 이미 선주문을 받아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노광 분야의 국내 기술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10%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식각·증착 장비에서는 일본 도쿄일렉트론과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가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주성엔지니어링, 원익IPS, 유진테크 등이 증착 장비를 생산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증착 분야에서는 해외 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는 국내 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도쿄일렉트론의 90% 정도에 이른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소재·부품·장비 특별법에 따라 반도체 장비 국산화를 위해 연구개발(R&D) 등에 대대적인 지원을 벌이고 있다. 이에 반도체 장비 국산화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반도체 장비 개발을 위해 반도체 장비 업체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반도체 장비 국산화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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