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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 콘월에서 종료된 G7(선진 7개국) 정상회의가 4개국이 추가된 G7+4(한국·호주·인도·남아공) 형태로 개최되었다. 회의 의장국이었던 영국이 개막 직전 회의의 성격을 두고 ‘D(Democracy, 민주주의)11’로 규정하기도 했다. 기존 7개국 간의 이견도 있어 이런 형식의 회의가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미국 홀로 중국의 패권 도전을 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노출되고 있어 힘의 결집을 위해 필요에 따라 유사한 회합은 수시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한국이 이 회의에 초청된 것과 관련해 우리의 국력 신장에 대한 외부의 긍정적 평가라고 언급하면서 한층 고무된 인상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그럴 만하다. 그렇지만 현 집권 세력의 공로로 치켜세우는 듯한 분위기에 대해서는 여론이 분분하고 씁쓰레하기까지 하다. 이에 대해 구태여 꼬집어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측면에서 우리에 대한 외부의 인식이 인색하지 않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더불어 이에 걸맞은 국가의 위상을 지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책임감도 통감하게 된다.
지난 60여년간 바닥에서 시작해 이 정도 수준으로 국가의 위상을 올려놓은 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모를 수많은 국민이 흘린 피와 땀의 결정체다. 긍정하든 부정하든 간에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한국이 이미 선진국 대접을 받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직 부족하고 미흡한 것이 많기는 하지만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중량감에 대해 남들이 그렇게 후하게 쳐주고 있다. 당장에는 기분이 좋기는 하겠지만 이에 대한 부담감도 적지 않다. 더 많은 견제와 압력 그리고 시샘이 우리 앞에 닥칠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잘하면 이런 기류에서 상승 분위기를 탈 수 있지만, 잘못하면 하강 추세로 반전되는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도사리고 있다. 현재와 같이 우리 내부가 분열되어 서로 물고 물리는 분탕질만을 거듭하면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우리가 축적해 놓은 것보다 앞으로 이를 지키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놓여 있는 과제가 더 산적하고 험난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세계는 거대한 전환을 위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용트림을 시작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로의 재편과 지구촌 현안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 탈(脫)탄소 움직임이 가시적이다. 국가의 로드맵을 다시 짜고,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국익 우선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동반 파트너를 물색하고, 경쟁 대상자를 걸러내는 점입가경의 가치사슬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기존 선진국은 물론이고 가장 위협적인 경쟁국인 중국도 이 대열에 합류해 피치를 올리고 있는 판이다. 남의 뒤꽁무니만 따라가기만 하던 과거의 방식을 고집해서는 먹을 것을 챙길 수 없다는 강박감이 이들의 행보를 재촉한다. 우리는 어떤가? 시늉은 내고 있지만 알맹이가 없다. 비전이나 청사진, 실행 계획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원전 대신 친환경 클린에너지 비율을 높인다고 태양광과 풍력에 열을 올리더니 온갖 폐해 속출로 주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멀쩡한 산을 다 파헤쳐 놓고, 해양 환경 훼손과 소음 공해로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촌극이 속출되고 있다.
10·30·50·100년 국가 비전이나 청사진 전무, 국가는 표류하고 미래 세대는 좌절해
현 정부 들어서 지난 4년 이상 집요할 정도로 미래보다 과거에 집착했다. 과거를 파헤쳐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파이를 추가하는 것보다는 갉아먹기에만 혈안이 되었다. 그 결과 내부는 두 동강으로 갈라지고, 외부 세계와의 경쟁에서 갈수록 뒤로 밀려나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국가는 물론이고 기업이나 가계의 빚은 눈덩이처럼 늘어나 모두가 미래보다 우선 배만 불리면 된다는 도덕적 해이와 무사안일이 기승을 부린다. 이런 상황이 5년 이상 더 지속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완전히 퇴장당하는 수모를 당할 국면에 처할 수도 있다. 이런 중에 내부에서 미세하나마 위기감이 자생적으로 싹트고 있다는 점이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제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기수를 미래로 재빠르게 돌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다. 안타깝게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정치 지형의 변화와 리더십이 턱없이 부족하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하고, 국민이 깨어나서 바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우리에겐 외부의 위협과 도전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12척의 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핵심 어젠다를 미래지향적으로 선회해야 한다. 눈만 뜨면 정치 관련 불편한 가십이 회자하는 것에 대해 국민은 신물이 날 정도다. 당연히 국가적 현안은 뒷전에 밀리거나 아예 실종된 지 오래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최고통치자의 철학과 선견지명이 매우 중요하다. 권력 집중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전환의 시기에는 강력하면서도 세상을 꿰뚫는 촌철살인의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 주변에는 한쪽에 치우지 않고 균형 감각을 가진 합리적 참모들이 대거 포진되어야 한다. 진영의 이익이 아닌 국익의 관점에서 국가 역량 진단과 분석을 통해 미래 좌표를 재설계해야 한다. 매 5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처럼 뒤집지 못하도록 10년, 30년, 50년, 100년을 내다보는 디테일이 요구된다. 미래 세대들이 좌절하지 않고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 하며, 노력한 만큼 공정한 결과가 보장되어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포퓰리즘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부정과 비리, 불법·편법·탈법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젠더, 세대, 지역, 빈부, 사용자와 노동자, 이념으로 나누어진 첨예한 갈등을 수습하고 봉합할 수 있는 사회적 결단이 시급하다. 이것이 미래로 방향을 바꾸는 첫걸음이다. 미룰 수 없는 큰 화해와 용서가 필요하다. 더 나은 미래와 국가를 위해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공감대와 함께 합리적 다수가 더 많아져야 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탄소 제로 30년 전쟁, 미래 산업으로의 산업구조 재편, 글로벌 가치사슬 내에서의 외부 경쟁자들과 유리한 고지 선점 등 시간을 다투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또한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 절벽, 지방 소멸, 기업 혹은 인재의 해외 유출, 대책 없는 보편적 복지정치 실험, 시장의 기능을 무시하고 표류하는 부동산 정치 등 널려진 현안이 실로 첩첩산중이다. 모두가 절대 가볍지 않고 무거운 이슈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손을 놓고 방치하고 있지나 않은지 묻고 싶다. 다른 나라들은 이에 대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 우리라고 못 할 것이 없다. 그런데 전환의 실마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혼쭐을 놓고 아까운 세월만 허송하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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