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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도서 7 : 13>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드디어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한다. 지난해 3월4일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은 지 118일만이다. 예상보다 길어진 잠행, ‘윤석열 X파일’ 괴문서로 억측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대선 출정식을 통해 악재를 떨어내고 대권 주도권을 이어가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29일 오후 1시 서초구 양재동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공식 출마선언을 하면서 당적 등의 거취도 밝힐 것으로 예측된다. 윤 전 검찰총장이 출마 장소를 매헌 기념관으로 택한 것은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만든 대한민국 건국과 자유, 정의, 평화 등 독립운동 정신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정치는 곧 대권 도전이다. 문재인 정권에 맞서다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정권에 회의를 느낀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냈다. 각종 대선 후보 여론 조사에서 1~2위로 각축전을 벌리면서 정치권의 윤 전 총장을 향한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의 공세야 그렇다 해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선출 이후 국민의힘 등 보수 정치권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이 대표는 연일 윤 총장을 겨냥해 “이미 입당했어야 하는데 지금도 늦었다. 속히 입당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라”며 입당을 재촉하고 있다. 또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도 “간보기 제발 그만하고 링에 오르라”고 한다. 하태경 의원도 “안철수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펀치를 날리고 있다.
이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여야의 협공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겠다. 오직 국민이 가리키는 대로 큰 정치를 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며 “내 갈 길만 가고 내 할 일만 하겠다”고 응수했다. 이는 민주당의 비판과 국민의힘의 압박을 ‘협공’으로 치부하고 일단은 국민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 윤 총장이 자신과 가족을 겨냥한 ‘X파일’ 논란에 대해 “거리낄 게 없다”며 “출처 불명의 괴문서로 정치공작을 하지 말고 진실이라면 내용, 근거, 출처를 공개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진실을 가리되 허위사실 유포와 불법사찰에 대해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못 박았다.
X파일 논란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5일 “윤석열의 수많은 사건에 대한 파일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말풍선을 띄우면서 촉발됐다. 이어 국민의힘 김무성 전 의원 보좌진 출신인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의 장성철 소장이 “얼마 전 파일을 입수했는데 이런 의혹을 받는 분이 국민의 선택을 받는 일은 무척 힘들겠다”며 지지철회 의사까지 밝히면서 사태가 확산일로다.
일단 송 대표가 “갖고 있는 파일은 없다”고 한 발을 뺐고 장 소장 역시 소장하고 있는 파일을 파기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장외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하면서 장모와 부인 등을 둘러싼 카더라식의 의혹 공방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진위를 명확히 가리지 않고 아니면 말고 식의 지루한 공방이 계속된다면 정치판에 대한 국민의 혐오만 커질 뿐이다.
프랑스 철학자가 방정식에서 미지수를 표현할 때 알파벳 X를 맨 처음 썼는데, 영어권 국가에서 사회현상을 다루는 데도 X라는 기호가 쓰였다. 특정인물이나 사건을 둘러싼 미확인 첩보와 소문을 담은 X파일이란 조어가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들어 삼성 X파일, 김대업 X파일 등이 이른바 지라시 형태로 유포되면서 우리 사회에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당시 이회창 후보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지만 보상을 받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혹시 김대업식 음습한 공작으로 승리를 훔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무슨 X파일이든, 이를 확보한 측이 떳떳하게 공개해 진위를 투명하게 검증해야 마땅하다.
민주당이 불과 두 달 전 오세훈 당시 야당 후보의 생태탕과 페라가모 구두 의혹을 제기했으나 별 반응이 없던 일도 있었지 않은가. 석연치 않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윤 전 총장 인사청문회 때 야당의 각종 의혹 제기에 대해 문제없다고 감싸던 여당이 윤 전 총장이 현 정권에 맞서자 의혹을 부풀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청과 검찰이 윤 전 총장과 가족들에 대해 동시다발로 수사를 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부상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화 세력의 무능과 내로남불에 대한 국민적 반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로남불의 대명사로 불리는 조국과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한 몫을 톡톡히 해냈다.
지지자들은 공정을 부르짖으며 반칙과 특권을 일삼는 진보 진영으로부터 정의를 수호할 인물로 윤 전 총장을 찍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등 과거 권력뿐만 아니라 서슬퍼런 현재의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칼날을 세우는 그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지만 집권세력이 철저하게 깔아뭉갠 공정과 정의 상식을 바로 세울 인물로 단정 지은 것이다.
그런 윤 전 총장이지만 이 대표의 당선에서 살펴야 할 대목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공정, 정의, 상식이 더 이상 윤 전 총장 혼자 독식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 대표 역시 윤 전 총장과는 다소 결이 다르긴 하지만 공정과 정의를 말했고 국민은 이에 호응한 것이다.
공정과 정의에 목말라 있던 국민이 이제는 이것들을 기본 전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윤 전 총장은 이런 이 대표의 손을 들어 준 민심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이 보수와 진보의 이념 경쟁이 판치는 정치권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국민이 바라고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공정, 상식, 정의가 기본 전제가 된 상황에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 대선 출마를 하지 않은 만큼 절제된 행보를 보이려 노력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자칫 ‘몸조심’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또 이 대표가 윤 전 총장과 각을 세우는 모습이 이어지면 윤 전 총장이 상대적으로 구시대 인물로 비쳐질까 우려된다.
입당을 재촉하는 이 대표를 떠올리며 문득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의 ‘금낭묘계’가 생각난다. 유비가 손권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러 오나라로 갈 때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자 제갈량이 조자룡에게 비단주머니 세 개를 주면서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하나 씩 열어보라고 했다. 조자룡은 금낭의 계책을 잘 이용, 어려움을 무사히 해결하고 돌아왔다.
이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윤 전 총장에게 입당하면 ‘비단주머니 세 개를 드리겠다’고 추파를 던졌다. 허탈한 마음에 웃음이 난다. 금낭묘계는 삼국지 작가가 허구로 만든 이야기라고도 한다. 아무리 제갈량이라지만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꿰뚫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흥미를 돋우는 작가의 글에 불과하다.
만약 지금 시대에 제갈량 같은 책사가 있다면 묘책을 비단 주머니에 넣어주지 않고 핸드폰이나 SNS에 올릴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지식을 쌓고 전달하는 방법이 과거와는 다르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제갈량보다 몇 백배 뛰어난 휴대폰이나 인공지능에서 수시로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비단 주머니 세 개를 주겠다는 이 대표의 말은 자칫 오만함으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누구나 손쉽게 지식을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아는 것이 많다고 지혜를 갖춘 사람은 아니다. 지식은 어떤 내용이나 사물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고 지혜는 사물의 이치와 인간 존재의 목적을 깨닫고 선악을 분별하는 지적 능력이다.
윤 전 총장 입장에서 첫 시험대는 29일께로 예정된 출마 출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정치적 비전이나 각오 등을 밝힌 후에 취재진과 질의응답이 이어질 때, 관련 질문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윤 전 총장이 미래를 여는 발판을 마련한 인물에 머물지, 아니면 미래를 담당할 인물로 받아들여질지는 국민이 주문한 새로운 정치에 대한 비전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달려있다. 윤 전 총장도 정치무대에 오르는 만큼 각종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 하겠느냐.” <마태복음 7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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