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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시대에는 우리가 쓰고 있는 가전제품의 기능이 때가 되면 스스로 업데이트 할 것이다.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정재승이 쓴 《열두 발자국》에 나오는 이야기다. 스마트 폰의 여러 기능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업데이트 되듯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물건도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기능들을 발명하고 발전시켜온 인간 정신의 업데이트는? 우리의 정신기능도 이렇게 자동 업데이트 되는 시절은 언제 오는 걸까.
문득, 사람의 정신 기능은 벌써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쉽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 한번만 먹으면 되는 일이다. 어쩌면 세상 사람 누구나 이런 업데이트의 경험과 기억을 삶의 켯속에 견출지처럼 군데군데 끼어놓고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칭찬’이나 ‘무조건적 지지’가 바로 삶의 기능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주고받는 칭찬이나 지지는 분명히 그 직전과 생리적, 심리적으로 다르다.
나에게도 당신처럼 칭찬이나 지지의 마술을 경험한 기억이 있다. 하고 많은 그런 경험 중에 별것도 아닌 그 칭찬의 기억이 왜 이렇게 오래 가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것도 삼십 여년 정도 어린 사람한테 받은 엄지 척! 하는 포즈 한번이었다.
칭찬은 고래처럼 수명도 길다
그 일은 한 수행터에서 일어났다. 열흘 동안 하루 열 시간 정도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자신의 내면만을 바라보기로 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곳은 수행하기 위해 모인 사람 중에서 서너 명이 주방 일을 도맡아서 ‘봉사’를 한다. 그런 패턴이 구조화된 곳이었다. 봉사자들은 남들보다 두 시간 먼저 일어나고 한 시간은 늦게 자면서 십수 명 수행자들의 세끼 식사를 열하루 동안 챙겨야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음식 솜씨보다는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견딜 수 있는 고참 수행자들이 도맡았다.
나도 그 봉사자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수행 기간 열흘 중 닷새 째 되던 날, 주방 한켠에서 네 사람이 단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찌는 듯한 복더위다보니 짜증나는 일이 생길만도 하지만, 끼어들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였다. 오십 대 중반 여자가 쏴보듯이 상대를 쳐다본다. “남기우 씨, 한두 번도 아니고, 죽을 휘젓다 말고 번번이 사라져버리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죽이 눌어붙는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오늘 아침 새까맣게 눌어붙은 거 보셨죠!” 육십 대 초반 여자가 덧붙였다. “차라리 그냥 방에서 쉬든지, 홀에 가서 앉아 있던지 해요! 젊은 사람이어서 우리가 아무리 봐주려고 해도 정말 힘드네요.” 세 여자의 불만 섞인 눈총을 받고 있는 상대는 이십 대 중반쯤 돼보이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희멀건한 낯색을 지닌 사내였다. 그가 말했다. “저한테는 죽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곳에 온 외국인 수행자들 안내해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죽이야 좀 타면 어떻고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세 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서로 눈짓을 교환하다가 그 중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말했다. “주방에서 외국인 통역해주실 분이 필요하긴 해요. 그점, 기우씨가 필요하니까, 좋아요, 앞으로 기우씨는 그 일만 해주세요. 다른 일 안 맡길게요.” 남기우가 말했다. “아닙니다. 처음부터 난 주방 일도 돕기로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죽 만드는 일도 해야겠습니다.” 육십 대 초반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정말, 젊은 사람이 말귀도 꽉 막혔네. 하려면 우리 불안하지 않게 하라는 거예요. 일하다 말고 번번이 말도 없이 사라져서 밥을 망치면 우, 우리는 어떡하란 말이냐고!”
나는 조용히 의자를 당겨서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사실, 나 또한 남기우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서 못에 찔린 듯 화가 솟구친 적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의 역성도 들 상황이 아니지 싶었다. 우선 급한 불은, 이들의 갈등을 풀어내는 일이었다. 명색이 수행터이고 더군다나 주방 봉사를 자청할만큼 나름대로 자기 조절이 잘 되는 분들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 그나마도 그 자리에 끼어들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들이 뽑은 주방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남기우는 탁자 바닥에 시선을 내리깔고 무슨 말이 오든 받아칠 기세로 보였다. 그런 태도가 오히려 잔뜩 수세에 몰린 처지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내가 말했다. “기우 씨가 주방에서 외국인 식사 안내해주는 건 우리로서는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러면서 계속 말을 이어갈 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남기우가 고개를 쳐들었다. 양 눈끝이 날카롭게 찢어진, 전형적인 동양인의 눈이었다. 그 눈에서 반짝 하는 빛이 나오는 듯했다. 그는 씩 웃었다. 그는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튕겨올렸다. 엄지 척!
그때, 그 다섯 사람의 정신 기능은 순간적으로 전환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가 엄지 척! 하는 순간, 나는 의아해하면서 어리버리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여기 와서 제가 처음 듣는 칭찬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 칭찬. 내가 저 친구를 칭찬했던가?
하지만 나는 이미 다른 단계의 심리 속에 잠겨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바로 소리없는 업데이트 상황이었다. 그의 엄지 척! 한판에 다섯 사람의 내면 조건이 돌변한 것이다. 오히려 칭찬은 그가 나에게 백장미 한 다발처럼 안겨준 것 아닌가. 삼십 해나 차이 나는 어린 친구에게 칭찬과 지지를 받자마자 나의 내면에 갑자기 불이 붙고 온도가 올라간 것이다. 그 느낌이 남은 세 사람에게 퍼져가고 있음을 나는 눈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시도 때도 없이 업데이트 되는 스마트폰처럼 남기우가 날린 ‘엄지 척’은 그 상황을 돌변 시켰을 뿐만 아니라 3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업데이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칭찬은 고래처럼 수명도 길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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