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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거늘
/스가의 외면 과거 韓 잘못 반복
/부작용 있지만 접종하면 이득인
/코로나 백신 같은 게 한·일 관계
영국 런던에서 열렸던 주요 7개국(G7) 회의에서 일본은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했다. 그런데 그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그리고 일본 정부가 최근에 한 외교행위 중 최악의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일본에만 불리하고, 그런 식으로 하면 일본만 욕을 먹는 ‘하수 중 하수’ 행위였기 때문이다. 왜 하수일까. 창피하긴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일을 돌이켜 보면 조금 이해가 된다.
6년 전인 2015년 4월 미국 뉴스위크는 이렇게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굴욕적인 양보까지 하며 종군위안부 문제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합의하라는 압력을 세계로부터 받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다. 그동안 박 대통령 자신이 일본과 대화를 완강히 거부해왔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다. 한·일 갈등은 결코 서방에 도움이 못 되며 서방은 한·일 정상회담을 원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국제적 압력이 정상회담을 반대해온 박 대통령에게 쏟아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6월 미국을 방문하는데 그때도 미국으로부터 한·일 관계를 개선하라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한·일 정상회담은 미국이 한국에게 기대하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도 “박 대통령이 일본과 정상회담을 계속 거부한다면 일본의 역사 왜곡이 아니라 한국의 똥고집이 동북아 안정에 문제가 된다는 식의 세계 여론이 확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제관계의 흐름을 알던 일본
일본과 정상회담을 거부한 것이 왜 우리에게 불이익이 됐을까. 좀 더 살펴보자.
굴욕적이던 미국 방문 3년 전인 2012년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은 문재인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이 된다. 일본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대승을 거두고 정권에 복귀했다. 그러자 악화일로의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오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아지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한국 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군위안부) 조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일본과 관계 개선은 없다”고 천명했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거부했고, 세계를 향해선 일본의 종군위안부 만행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런데 우리 측 조치는 일본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미국 등 세계 주요국도 ‘역사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세계가 바라던 것은 동북아 안정이었고, 한·일 밀월이었다. 일본의 역사 반성에 큰 관심은 없었다. 결국 ‘대화 거부’는 한국의 국제적 지위만 추락시키는 하수로 결론났다. 역사관이나 윤리가 중요하긴 하지만, 국제사회는 그렇게 굴러간다.
한·미·일 정상회담에도 불구
불행히도 당시에는 중국 문제마저 동시에 일어난다. 2014년 중국의 동남아 진출은 큰 문제로 부각됐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태평양 지역 주요 동맹국인 한·일과 손잡고 이 문제에 대처하려 한다. 그런데 한·일 양국은 역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런 갈등이 아시아와 미국 안보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한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지만, 그 후로도 박 전 대통령의 강고한 대일 자세는 풀리지 않았다.
그때 일본이 취한 전략은 “일본은 한국에 항상 문을 열고 있다”는 국제여론전이었다. 아베 당시 총리는 “나는 대화하려는데 저쪽이 거부한다”는 홍보전술을 썼다. 마침 당시는 우리 정부가 중국 접근을 강화하던 시기라, 국제사회는 문제의 핵심이 ‘고집스럽고 친중적인 박 전 대통령에 있다’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떠밀린 박 전 대통령은 마침내 2015년 10월 아베와 첫 정상회담을 연다.
일본은 미국을 비롯해 국제관계가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한·일관계 악화는 일본 때문이 아니다”라는 여론전에 진력했던 것이다.
과거의 한국 실수를 반복
박 전 대통령의 국제관계 무지로 빚어진 실수를 보고도 배운 게 없었던지, 9년 후 이번엔 스가 일본 총리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9년 전 한국이 했던 것처럼 “일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치를 한국이 마련하지 않는 한 관계 개선은 없다”고 나온 것이다. 한창 문재인 대통령을 신나게 비판하던 일본 입장에선 엄청난 자책골을 먹은 셈이다.
일본의 대화 거부는 2018년 우리 법원에서 징용자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나오면서 시작됐고,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때 클라이맥스에 오른다. 일본은 정상회담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그런 사실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까지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하러 왔지만 스가 총리는 가벼운 인사 이상의 대화는 거부했다”고 자랑스럽게 공표한다. 이어 “바베큐 파티 때도 문 대통령이 스가 총리에게 다가왔지만 그때도 기꺼이 인사를 나눈 것은 아니다”라고 떠벌인다. 정상회담 불발이 누구 때문인지 세계에 널리널리 알린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 엄청난 패착이었다.
런던 G7회의 최대 목표는 중국 위협에 대한 서방선진국 단결이었는데, 일본은 한국과 단결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G7회의의 개최 의의마저 망각한 치명적인 실수였다. 대화한다는 것이 결코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데도, 한·일은 번갈아 가며 하수를 두고 있다.
하수끼리의 대결
역사문제에 큰 관심이 없는 국가라면 한·일 정상회담이 안 열리는 이유를 이제는 일본에서 찾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G7회의에서 스가 총리에게 두 번씩 다가간 문 대통령은 전략적으로 승리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하수들 싸움을 놓고 어느 나라가 이겼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하수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일 양국은 잘 지내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부작용은 있지만 맞으면 이득이 훨씬 큰 코로나 백신 같은 관계다. 가까이 지내면 얻을 게 많은 반면, 이사는 죽어도 못 가는 사이다. 스가 총리가 실수했던 것처럼 우리가 일본을 향해 다시 죽창가를 드높이 부르면 세계가 이해 못한다.
우리의 거인들 김영삼‧김대중
우리 역사의 거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일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역사는 결코 지워지지 않으며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하지만 미래로 나아가는데 역사가 방해가 돼선 안 된다. 하물며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을 선동하는 도구로 역사를 이용해선 안 된다.”
또 다른 역사의 거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일본 방문 때 일본 기자한테 난감한 질문을 받았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기자회견장에는 순간 긴장이 감돌았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대답으로 자신이 왜 ‘정치 9단’이라 불리는 지 유감없이 보여줬다.
“한·일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두 거인은 역사에서 못 배우면 반드시 진다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한·일관계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 도쿄올림픽이 열릴 것 같다. 우리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보낸다고 하는데, 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도 정상회담이 불발로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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