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천년수도 경주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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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박혁거세의 건국지는 경기 북부지역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7-07 17:59:26

경주는 신라 천년역사의 중심지이다. 고구려는 홀승골성→위나암성→환도성→평양성→환도성→평양(한반도)으로, 백제는 위례성→웅진성→사비성으로 수도를 옮기며 역사의 부침을 겪는다. 그러나 신라는 오로지 경주 한 곳만을 고수한다.

물론 한때 수도 이전을 검토한 적은 있다. 삼국통합(통일) 직후인 신문왕(31대) 때로 달구벌(경북 대구) 천도를 추진하려다 경주 귀족의 반발로 무산된다. 그럼에도 신라가 천년역사를 일구면서 수도 이동을 하지 않았다는 자체는 가히 기네스북에 등재될 만하다.

서라벌은 경기 북부지역에 출발

우리는 경주를 신라의 초기 도읍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있다. 이병도는 박혁거세의 초기 신라 위치를 한강유역으로 비정했다. 근거는 ‘북사’ 신라전 기록이다. ‘신라는 본래 진한의 종족이다. 그 땅은 고구려 동남쪽에 있는데, 한(漢)대의 낙랑이다(新羅者其先本辰韓種也地在高麗東南居漢時樂浪地).’ 낙랑은 중원왕조 진(秦)·한(漢) 유민의 한반도 망명지인 평안남도 일대를 가리킨다. 이 기록은 신라가 한반도 낙랑지역 주변에 존재한 사실을 부연한다. 같은 연장선에서 천관우는 한강 중류지역을, 김성호는 황해도 남부지역을 각각 신라의 건국지로 이해한다.

기원전 57년 경기 북부지역에서 건국된 박혁거세의 신라(서라벌)는 변한, 낙랑 등을 만난다. 변한은 ‘卞(성씨 변)’자를 쓰는 ‘변한(卞韓)’을 말한다. 한강유역의 초기변한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최치원이 ‘변한(卞韓)은 백제다(卞韓百濟也)’라고 설명한 바로 그 변한이다. 이들 초기변한은 기원전 39년 박혁거세의 공격을 받아 한강유역을 신라에 내주고 점차적으로 남하해 경상남도 남해안 일대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다. 이것이 후기변한인 ‘弁(고깔 변)’자를 쓰는 ‘변한(弁韓)’이다.

낙랑은 진한낙랑을 말한다. 평안남도 낙랑지역에서 분리된 진(秦)의 유민집단인 진한(秦韓)이다. 이들은 경기 중북부지역을 장악하고 세력을 확장하며 한강유역의 박혁거세를 남쪽으로 밀어낸다. 그러나 박혁거세가 빠져나간 한강유역은 뒤늦게 건국한 백제의 온조집단이 차지한다. 하남위례성(경기 광주·하남) 일대이다. 그러나 온조의 초기백제 역시 진한낙랑으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다. 당시 진한낙랑은 초기 신라와 백제보다 월등히 힘이 강하다.

경북 내륙지방으로 방향을 튼 서라벌

진한낙랑에 밀린 박혁거세의 신라는 한강유역을 포기하고 점차로 남하한다. 이후 신라는 남해왕(2대), 유리왕(3대) 등을 거치며 충북 남부지역까지 밀려 내려온다.

이때 신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 발생한다. 신라 나로왕(4대-‘삼국사기’ 석탈해)은 한반도 서남부지방의 가장 강력한 세력집단인 충남지역의 마한을 만난다. 서기 61년 마한장수 맹소(孟召)가 복암성(충북 영동)을 신라에 바치며 망명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신라와 백제는 처음으로 만난다. 당시 백제 다루왕(2대)은 마한의 요구에 따라 한강유역에서 낭자곡성(충북 청주)까지 직접 내려와 나로왕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망명사건의 원만한 해결을 시도한다. 그러나 나로왕은 면담을 거절하고 두 나라는 와산성(충북 보은), 구양성(충북 옥천) 등에서 격하게 싸운다.

이 사건의 여파로 신라의 남하행로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다. 신라는 곡창지대인 서남부지방이 아닌 추풍령을 넘어 산악지대인 동남부지방으로 방향을 튼다. 당시 신라는 마한을 대적할 엄두도 못 낸다. 이후 신라는 경북 내륙지역으로 진출하며 대가야(경북 고령)를 만나며 경북 상주지역까지 지배영역을 확대한다.

경주 입성에 성공한 파사왕

그렇다면 경주는 언제부터 신라의 수도가 되었을까? 5대 파사왕 때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파사왕은 서기 94년(파사왕 15년) 경주 알천(북천)에서 군대를 사열한다. ‘삼국사기’가 기록한 최초의 군대사열이다. 이는 파사왕이 경주지역 세력집단을 병합한 사실을 설명한다. 군대사열은 신라가 경주의 새 주인이 된 사실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정치행사이다. 이어 파사왕은 101년(파사왕 22년) 처음으로 경주 월성에 성을 쌓고 거주한다. 신라 월성 궁궐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다.

당시 경주세력집단은 석탈해의 사로국이다. 파사왕의 신라는 석탈해의 사로국을 병합한다. 그래서 신라왕력은 석씨 시조 석탈해를 4대왕으로 편입한다. 이때 경주지명은 서라벌이 되고 신라 국호는 사로가 된다.

경주는 박혁거세의 초기 도읍지가 아니다. 박혁거세의 초기신라가 한반도에 뿌리 내리기 위해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마지막으로 찾은 안식처(Shelter)이다.

경주는 천년역사의 원천지

경주는 스펀지이며 용광로이다. 수많은 외부세력이 경주로 몰려든다. 박씨 왕조는 건국 초기 진한인·낙랑인·말갈인·예인 등을, 석씨 왕조는 왜인과 가라인을, 그리고 마지막 김씨 왕조는 흉노와 선비족 출신을 받아들인다. 경주는 이들 외부세력을 배척하지 않고 모두 흡수한다. 그래서 경주는 스펀지다. 또한 경주는 이들 외부세력의 서로 다른 이질적 문화를 모두 융합한다. 경주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몰아넣고 계속해서 담금질하여 신라만의 독특한 문화로 탈바꿈시킨다.

경주는 다민족 공동체의 산실이며 신라 천년역사를 만들어낸 힘의 원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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