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로 빛바랜 LG디스플레이 호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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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7-13 00:02:45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안전경영’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업 이미지 실추는 물론 국가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한순간의 사고로 존폐의 기로에 놓인 기업이 적지 않다보니 안전경영에 대한 기업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안전사고 우려가 큰 업종에선 아예 안전을 기업경영 제1원칙으로까지 삼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다수 기업에선 안전경영을 위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고 있다.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회사를 이끄는 수장의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챙기기 위해 기업은 상당한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노후화된 설비와 환경을 개선하고 전사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된다. 안전경영은 결국 CEO가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실천하는지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LG디스플레이에선 사업장 내 안전사고가 되풀이되면서 안전경영 실천 의지에 대한 의문 부호가 달리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화학물질 사고가 4건이나 잇따라 발생하면서 관리부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배관 및 밸브와 관련해 유해 화학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반복됐다는 점에서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도 피하기 힘들어졌다.

부실한 안전관리 인식은 최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내놓은 ‘재해조사 의견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올해 1월 발생한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유해 화학물질 ‘수산화 테트라메틸 암모늄(TMAH)’ 누출 사고는 당연히 해야 할 안전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고 당시 작업자의 응급조치 및 대피가 이뤄지지 않았고, 사전 잠금 조치에서 누락된 밸브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유해 화학물질 차단이 30분가량 지연됐다. 화학물질 누출로 당장 대피해도 모자랄 판에 LG디스플레이 담당자는 하청업체 직원에게 비닐봉지를 가져다줬다. 어떤 물질인지도 몰랐던 하청업체 직원은 TMAH 공급밸브가 닫힐 때까지 얇은 비닐봉지 하나만으로 유해 화학물질을 막고 있어야 했다.

당시 작업자 2명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는 등 6명이 부상을 입었고, 이 중 배관공 직원 1명은 두 달 가까이 치료를 받다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 TMAH는 인체에 치명적인 화학물질이다. 부식성이 있어 심각한 화상을 입힐 수 있다. 피부 흡수를 통해 호흡부전으로 이어지는 신경 독성을 유발시킨다. 아직 해독제도 개발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안전사고가 수차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과 5월 경북 구미공장에서 두 차례에 걸쳐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심지어 1월 발생한 파주공장 화학물질 누출 사고의 경우 불과 6개월 전에도 같은 장소 같은 유형의 사고가 있었다. 지난해와 올해 초 4차례에 걸친 사고로 부상을 입은 작업자만 9명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LG디스플레이가 과연 안전경영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조차 의구심이 든다. 화학물질관리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내고 개선명령을 받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매번 화학물질 누출로 인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LG디스플레이는 재발 방지를 위해 안전관리 기준 및 임직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한다고 밝혔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반복되는 화학물질 누출 안전사고로 하청업체 직원이 목숨을 잃는 사이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역대급 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분기까지만 해도 3620억원 적자였던 LG디스플레이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5230억원을 기록하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LG디스플레이의 올해 영업이익은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OLED TV 수요가 급증한 게 실적 개선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그간 초대형 OLED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OLED 패널 생산시설에 조단위 투자를 진행해온 게 주효했다. 다만 이러한 실적 개선의 이면엔 하청업체 직원들의 목숨을 등한시 한 안전사고가 그림자처럼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빛이 바랬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화학사고는 적게는 직원과 기업의 피해에 그치지만 크게는 국민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관리 기준을 강화하겠다던 LG디스플레이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근본적인 안전사고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지난 3월 안전환경사고 근절을 위해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EO)’ 직급을 신설한 것도 뒷말이 무성하다. 중대재해법 처벌을 피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면피성 대책 아니냐는 우려가 그것이다. 아무리 신설된 직급이 CEO급 권한을 갖는다 해도 안전경영이 자리잡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CEO의 실천의지라는 이유에서다. LG디스플레이는 직원 목숨을 앗아간 화학물질 누출사고 당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강력하고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개선조치를 실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예방 조치가 CSEO 직급 신설로 그쳐선 안 된다.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