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건국의 모체 파소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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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신라 건국의 모체 파소여왕

선도산 성모 파소여왕은 북부여왕실 출신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7-15 18:20:25

김부식이 송(宋)에 사신으로 갔다가 우신관(佑神館)에 걸려있는 여성의 화상(畵像)을 보고 관반학사 왕보(王黼)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선도산(仙桃山) 성모(聖母)와 그녀가 낳은 해동의 첫 왕에 관한 이야기이다. 훗날 김부식은 선도산 성모는 알게 되나 해동의 첫 왕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

이에 비해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해동의 첫 왕이 박혁거세이며 박혁거세를 낳은 선도산 성모가 파소(婆蘇)라는 사실을 밝힌다. 또한 파소를 중원왕조 황실의 딸로 기록한다. 특히 박혁거세 후손 가문인 밀양박씨(규정공파) 족보는 아예 파소를 전한(前漢) 10대 황제인 선제(宣帝)의 딸로 설명한다.

북부여 천제 고두막한의 딸, 섭라국 여왕 출신

그런데 ‘태백일사’(이맥 찬술)는 파소의 출신을 전혀 다르게 기술한다. 중원왕조 황실이 아닌 (북)부여 황실의 딸로 소개한다(斯盧始王仙桃山聖母之子也昔有夫餘帝室之女婆蘇). 특히 파소는 지아비 없이 박혁거세를 잉태한 뒤 주변의 의심을 받자 도망해 동옥저에 이르고 또 남쪽으로 내려가 진한6촌과 결합하며 박혁거세가 13세가 되던 기원전 57년 신라를 건국한다.

남당필사본 중에 신라 화랑의 기원과 계보를 정리한 ‘위화진경’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박혁거세의 아버지는 혁서거(奕西居)이다. 천왕(天王) 파소가 천신(天神) 혁서거와 결합해 대일광명(大日光明·혁거세)을 낳는다.

또한 박혁거세의 아버지 혁서거는 ‘유기추모경’(황주량 찬술-남당필사본)에 단서가 나온다. 기원전 24년(추모 14년) 섭라국(涉羅國) 여왕 혁거지(奕居知)가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해 조공한 기록이다(東明十四年丁酉九月涉羅女主奕居知遣使入).

이 기록은 섭라국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섭라국은 환나국(桓那國)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산을 의지하며 큰 물가에 있고 여왕이 세습한다. 또한 여왕은 지혜와 풍채가 빼어난 남자를 폐신(嬖臣)으로 두고 딸을 낳으면 무녀(巫女)로 삼으며 그 중 가장 나이 어린 여성이 여왕을 승계한다. 혁서거는 섭라국 여왕의 폐신 출신이다.

섭라국은 고구려 건국 이전에 존재한 북부여 제후국(열국) 중의 하나로 지금의 요동반도 남쪽에 위치한 모계 중심의 여왕국이다. 파소는 바로 섭라국 여왕 출신이다. 섭라(涉羅)와 서라벌의 서라(徐羅)는 같은 어원이다. 혁거지여왕은 파소여왕의 뒤를 이은 여성이며 박혁거세의 아버지 혁서거의 딸로 추정된다.

섭라국이 북부여 제후국인 점을 감안하면 파소는 중원왕조 황실이 아닌 (북)부여 황실의 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 북부여왕은 5대 천제 고두막한(高豆莫汗)이다. 파소는 바로 고두막한의 딸이다. 다만 ‘삼국유사’가 파소를 중원왕조 황실의 딸로 기록한 이유는 삼국통합 이후 신라사회에 만연한 모화주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삼국유사’는 신라역사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정리된 기록을 차용한다.

파소여왕은 신라 건국의 실질 주체

정리하면 이렇다. 파소는 북부여 천제 고두막한의 딸로 기원전 70년 이전 섭라국 여왕에 봉함을 받고 섭라국을 다스리다 폐신 혁서거와 인연을 맺어 박혁거세를 임신한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파소는 일부 무리를 이끌고 섭라국을 떠나 함경남도 함흥지역의 동옥저로 피신했다가 다시 경기도 북부지역으로 들어온다. 기원전 70년 박혁거세를 출산하며 소벌(도리)이 이끄는 진한6촌과 결합한다. 이어 기원전 57년 어린 박혁거세를 앞세우고 공식적으로 신라를 출범시킨다.

파소는 신라 건국의 모체이자 핵심이다. 특히 신라 건국이 박혁거세 나이 13세에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면 파소는 실질적으로 진한6촌과의 결합을 주도한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백제시조는 비류와 온조이나 실질적으로 백제 건국을 이끈 사람은 어머니 소서노이다. 신라의 파소는 백제의 소서노와 위상이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파소의 존재는 역사 기록에서 대부분 사라진다. 이유는 신라지배층이 건국시조 신화를 박혁거세의 ‘난생(卵生)’으로 재구성하면서 의도적으로 지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파소는 신라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남는다. 여산신(女山神) 신앙을 대표하는 ‘선도산 성모(치술성모)’가 바로 파소이다.

박혁거세 어머니 선도산 성모 파소는 북부여 왕실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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