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자 없고 피해자만 양산하는 유통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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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7-27 00:02:51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며 대형마트를 월 2회 강제로 휴업하도록 한 유통산업발전법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됐다. 안타깝게도 10년 동안 골목상권 상황이 나아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소비자 권익은 낮아졌고,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발전은커녕 후퇴하기 바빴다.

통계청의 소매업태별 판매액 지수를 살펴보면 2019년 대형마트의 매출과 시장점유율은 강제휴업 규제를 도입한 2012년보다 각각 4.9%p, 2.6%p 감소했다. 같은 기간 소상공인의 매출과 시장점유율도 각각 6.1%p, 11.4%p 줄었다. 골목상권 진입을 막는 유통규제가 오히려 유통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초래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이라는 법안의 이름이 무색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유통규제가 설계부터 잘못됐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해서 골목상권이 활성화될 거라고 보는 전제부터 잘못됐다. 소비자들은 대형마트가 문을 닫았다고 전통시장으로 가지 않는다. 다른 날 장을 보거나 아니면 온라인 쇼핑으로 대체한다. 가뜩이나 코로나 시국이 닥치면서 유통시장의 패권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매장 정리를 예고한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대량 실직으로 인한 지역 경제 위기를 토로하고 있다. 일례로 롯데가 당초 계획대로 200개 매장을 정리하면 직원 수 만명이 고용위기를 겪게 된다.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회사 측에서 고용승계를 약속한다 해도 오프라인 유통기업의 매출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만큼 일자리 감소는 정해진 수순이다.

하물며 유통규제가 소비자 편익을 저해한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취지 자체가 유통 대기업을 규제해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보호하겠다는 목표였던 만큼 소비자 선택권 제약은 피할 수 없었다. 골목상권 보호라는 입법 취지도 살리지 못한 채 효율성도 없는 반시장적인 규제로 피해자는 많지만 정작 수혜자는 없다. 누굴 위한 규제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상황이 이런한 데도 국회에선 대형마트에 이어 복합쇼핑몰도 월 2회 강제휴업 하도록 하는 유통규제를 논의하고 있다. 입법 취지는 똑같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다. 이미 유통규제의 무용성이 드러난 마당에 똑같은 규제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소비자 편익은 무시한 채 정치논리를 우선하다 보니 ‘보여주기식’ 규제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생존권 위협을 호소하는 골목상권 자영업자들은 유통규제보단 오히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과 인상된 전기·수도요금 등 공공요금 부담 등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이 이달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골목상권 경기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백신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및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35.2%로 가장 많았고, 최저임금 인상 자제 등 인건비 부담 완화와 공공요금 부담 완화가 각각 23.7%, 16.5%였다.

결국 오프라인 유통업계를 겨냥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의 결과물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소비자들의 온라인 소비 편중 현상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나 정치권에선 여전히 대형 유통업체를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적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만 보고 있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게 유통규제의 목적이지만 진정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 지속 성장했을 때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살린답시고 영업을 못하도록 강제하진 않을 지 벌써부터 우려된다. 대형마트를 규제했을 때 전통시장이 살아났다면 모르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복합쇼핑몰을 규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기대한 효과보다 부작용만 양산할 우려가 크다.

대형 유통업체가 지역 상권 발달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은 만큼 오프라인 유통업 위기를 계기로 구시대적 유통업 규제를 뜯어고쳐야 한다. 한 쪽을 죽여서 살리는 게 아니라 골목상권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소상공인에 대한 사업 컨설팅을 지원하거나 금융지원 등을 통한 아이디어 창업을 독려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에도 규제가 아니라 골목상권과의 상생을 도모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정책적 지원을 해주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