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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야당 대선 후보 가족 모임의 애국가 열창 모습을 두고 설왕설래다. 국가주의 혹은 전체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비판부터 나라 사랑이 몸에 뱄다는 찬사에 이르기까지 대조적인 평가로 눈길을 끈다.
왜 새삼스럽게 이런 것이 우리 사회에서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지에 대해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최근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국가에 대한 애정보다는 냉소와 질시가 만연하다. 이는 국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특히 정치가 희화화되면서 생겨나고 있는 현상이다. 심지어 상대적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 마치 지옥과 같다는 의미의 ‘헬(hell)조선’이라는 단어가 공공연하게 시중에 회자하고 있을 정도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더 많다 보니 불평과 불만, 분노와 갈등만 쌓여가는 형편이다. 바깥을 살펴보면 잘되는 국가일수록 국민의 생기가 돌고 국가에 대한 애정이 넘쳐난다. 오히려 지나쳐 주변국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역으로 잘 안 되는 국가일수록 국민의 사기가 처져 있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은 실종돼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대표적인 이민 국가다. 그만큼 화합이 어렵고 국가가 총체적인 힘을 발휘하기가 힘든 구조다. 하지만 크고 작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 국가이고, 절대 다수의 미국인들은 그들 스스로 자랑스러워한다.
기본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서 축적된 국가 시스템이 이를 견인하고 있지만, 상징적으로 성조기와 국가(國歌)가 미국을 하나로 만드는 지지대다. 낯선 땅에 상륙한 이민들이 고난 속에서도 꿈을 꿀 수 있게 한다. 언제 어디서든 국기를 보거나 국가를 들으면 숙연해지면서 경의를 표한다. 250만의 재미교포도 예외는 아니다. 교민 행사 시에는 반드시 성조기와 태극기를 게양하고, 미국 국가(American National Anthem)와 애국가를 부른다. 이를 통해 현재 자기가 사는 땅에 대한 고마움과 두고 온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랜다. 그것이 다민족이 함께 사는 미국에서 살아남는 지혜이면서 용기이기도 하다. 이미 이런 행위를 잊고 사는 우리 주재원이나 여행객의 시선에서 보면 오히려 어색하고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최근 중국인들의 거침없는 행동이 주변국들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힘이 강해지다 보니 남을 우습게 본다. 심지어 이웃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소한 일에까지 끼어들어 간섭한다. 중국이 다시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중화(中華)사상이 전면에 부상한다. 미국에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성해지다 보니 가까운 장래에 미국을 능가하는 패권국가가 될 수 있다는 자만심이 넘쳐난다. 특히 현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정권이 이를 적극적으로 부추긴다.
젊은이들의 언행에 거침이 없고 애국심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10〜20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자국의 문화와 상품을 중시하는 이른바 ‘궈차오(國潮)’운동이 거세다. “외국 제품을 쓰는 사람은 매국노, 국산품을 쓰는 사람은 애국자”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소셜미디어에 등장한다. 실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중국인들의 숨겨진 어두운 현실은 심각하다. 내부에서조차 비상식적 애국심에 대해 말은 못 하고 있지만 내재한 불만 누적은 중국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리스크다.
국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국민은 신바람이 나며 애국심은 저절로 생겨나
일본도 과거와 같지 않다. 잃어버린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국민 다수가 실의에 빠져있는 듯하다. 1980년 말까지 일본이 승승장구하던 시절에는 기업이나 개인의 사기가 충전하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현상이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강한 일본으로의 회귀를 바라는 일부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지만, 절대 다수 국민은 차분하게 현실을 인정하면서 분수를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이번 도쿄올림픽 개최에 대한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국가 순위 3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서 성공적 올림픽이라는 평가로 여론이 반전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정권에 대한 불신은 지속되고 있으며,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전반적으로 그리 밝지 않다. 일본 국민의 국가에 대한 기대감도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국력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현 수준이라도 유지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대체적인 바람이다. 제국주의 시절 국가에 의해 강제된 애국심은 경계하면서 전통과 문화를 사수하고 공존의 해법으로 집단적 이익을 사수한다.
우리에게도 한때 애국심이 불타오를 때가 있었다. 비록 그것이 정권에 의해 강요된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기도 했다. 안 되는 것보다 되는 것이 더 많았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결과가 만들어졌다. 해외에 나가 승승장구하는 우리 기업이나 상품이 누비는 현장을 목격하면 가슴이 뿌듯했다. 행여나 태극기를 보거나 애국가라도 들으면 저절로 신바람이 나기도 했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이 코리아 혹은 코리언이라고 인정이라도 해주면 우쭐해 한 적도 많았다. 역으로 지나친 자만과 허세로 구설에 오르거나 핀잔을 받는 해프닝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거꾸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아지면서 국가에 대한 애정이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소홀한 예우나 자국인이 해외에서 위험에 처하고 있는데도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례가 늘면서 국가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또한 중국 혹은 북한이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는 결례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꼴을 보면서 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권위주의 독재 시절이 아닌 현시점에서 애국을 논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논쟁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태극기를 들고 다니거나 애국가를 부르는 사람을 이상하게 몰아붙이는 것이 더 황당하다. 현재도 많은 한국인이 개인 신분이지만 국내외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자세로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때로는 태극 마크를 달기도 하고, 애국가를 울리게도 한다. 든든한 국가가 나를 뒷받쳐 주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들일수록 익히 잘 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자격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스테파니 라바리니가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참가한 것이 영광이고 자랑스러웠다는 말이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지금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삐뚤어진 애국심으로 국가를 호도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위와 인물들이다.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사고로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보통 사람들의 애국심에 찬물을 끼얹는 짓을 퇴출해야 한다. 국가가 제대로 굴러가면 거기에 속한 국민이 신바람이 나며 애국심은 저절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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