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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예방 백신 공급 차질로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지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언제 풀릴지 모르는 거리두기 확대로 갈수록 한숨은 깊어간다.
이 와중에 백신 공급 약속 불이행에 대해 항의를 하기 위해 한국정부대표단이 모더나사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가지 않은 것보다는 나았겠지만 냉정하게 보면 ‘빈손 귀국’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 같다. 적확한 공급 시기와 물량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를 그대로 인용하면 모더나가 이미 확보한 물량보다 더 많은 공급량을 9월 중에 공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공급 일정을 통보해 주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어디를 봐도 명확한 구석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또다시 립서비스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 한국이 모더나의 공급 우선 대상에서 뒷순위에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공급 여건이 나아지면 물량이 공급될 수도 있겠지만 델타와 같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고 보면 예정된 물량이 조기에 들어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모더나 백신 확보를 위해 대통령까지 나선 것이 지난해 연말이다. 모더나의 코로나 백신 2000만명(4000만 도스)분을 확보했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시기는 올 5월부터 ‘가능한 한 빨리 공급하게 돼 있다’는 것이 계약의 골자다. 하지만 현재까지 들어온 물량은 고작 6.1%(245만5000도스)에 불과하다. 8월 공급 예정 물량도 애초 850만 도스보다 훨씬 적은 절반 정도만 들어올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모더나가 계약을 위반했다는 내용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우리 정부 인사들이 협상과 계약에 이르는 과정에서 치밀하지 못하고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만 여실히 노출하고 있어 화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한다. 오죽하면 ‘굴욕 계약’이라는 말까지 시중에 공공연하게 돌아다니겠나. 백신을 조기에 확보해야 한다는 조급성과 강박 관념에서 이러한 계약이라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결과는 치명적이다. 백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초강수의 거리두기가 지속돼야 하고, 국민의 고통은 그만큼 더 커진다.
일반적으로 서구 사회의 거래는 계약으로 이루어진다. 계약서 상에 언급된 내용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장래에 책임질 수 없는 사항은 절대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계약 당사자들끼리 분쟁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확보한다. 협상의 요령이고 기술이다. 이번 모더나사와의 계약 내용을 보면 우리가 항변할 것이 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오히려 계약서에 언급한 대로 최대한 물량을 신속하게 공급해달라고 애걸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때마다 모더나가 공급해 주는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실정이다.
모더나 측은 물량 공급에 대한 확신이 없으므로 월별·분기별 상세한 공급 물량을 제시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이를 ‘비밀 협약’이라고 하면서 내용 공개를 일축했다. 그러나 모더나나 아스트라제네카가 미국·유럽연합(EU)과 체결한 공급 계약서에는 월별 공급량이 정확하게 적시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정부가 국민을 기만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매일 아침 방역 당국자들이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고 나와 코로나 정세에 대해 브리핑하는 것을 봐주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날 정도다.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시대적이고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지난 8월 7일 영국 옥스퍼드대학 통계 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 국가 중 백신 접종률(2차까지 완료)에서 한국이 꼴찌다. 회원국 중 백신 접종 시작도 가장 늦었고, 1차 접종 완료율도 40.7%로 하위권인 34위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방역의 최우선은 백신 접종률을 높이라는 지적이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
정부는 이를 도외시하고 K-방역의 환상에 함몰돼 물리적 방역을 밀어붙였다. 그 후유증이 너무 심각하다. 지친 국민은 강제적 거리두기를 마지못해 따르고 있지만, 불만 수위가 극으로 치닫는다. 내수는 꽁꽁 얼어붙고 경제적 약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방역 현장의 공무원은 누적된 피로와 처우 미비로 사표가 속출한다. 터널의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바깥 세상을 보면 백신 접종률이 높은 선진국은 더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에 연연하지 않는 분위기다. 변이 바이러스가 속출하고 있어도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 패러다임 시프트를 진행 중이다. 오직 백신 접종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되 치명률을 낮추는 데 정부의 역할을 집중시킨다. 일부 배부른 국가들은 3차 접종인 ‘부스터샷’을 벌써 시작하고 있기도 하다. 확진자가 우리보다 훨씬 많지만 모임 금지는 하지 않는다.
반면 백신 접종률이 낮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은 거리두기와 같은 정부 통제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코로나를 핑계로 안면인식 추적까지 하는 ‘21세기 빅 브러더(정보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 혹은 사회체계)’까지 등장하고 있을 정도다. 큰 정부로 권력을 강화하고, 민주주의의 가치가 후퇴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간섭이 많아지고, 재정적자를 고려하지 않고 정부 지출을 마구 늘리는 포퓰리즘이 성행한다. 코로나로 인해 생겨난 또 하나의 뉴노멀이다.
결국 백신 확보에도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코로나 디바이드(Corona Divide)’가 현실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코로나 이후 경제회복 과정에서도 뚜렷하게 명암이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만 하더라도 올해에 선진국보다는 신흥국의 경제회복 속도가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수정 발표한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선진국 경제는 수직상승하고, 신흥국은 상대적으로 정체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백신이 갈라놓은 경제 성적표 역전이다. 한편 소비 여력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선진국 소비자는 초과 저축이 있지만, 신흥국 소비자는 저축이 감소한 것으로 알려져 경기 회복 동력에도 격차가 존재한다.
백신 개발이 되기만 하면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될 것이라는 희망이 도리어 고문이 되는 정황이다. 가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 간의 ‘불균형 회복(Divergent Recoveries)’ 혹은 ‘K자형 성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왜 백신 확보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지는 매우 분명하다. 노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맡기기에는 상황이 엄중하다. 민간 대기업을 참여시키고, 백신 스와프 실현을 위해 현지 대사관이나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조직도 풀가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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