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신라 왕력에서 빠진 나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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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초기신라 왕력에서 빠진 나로왕

나로왕은 역사기록의 희생양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9-01 09:44:39

석탈해는 신라 석씨왕조의 시조이며 또한 신라 4대왕이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보면 석탈해왕 기록은 이중(二重) 구조다. 왜와 접촉하는 석탈해와, 백제와 싸우는 석탈해로 명확히 구분된다. 특히 『삼국사기』는 석탈해의 출생년도를 둘로 나눈다. 왜와 접촉하는 석탈해는 서기전(B.C) 5년에 태어났고, 백제와 싸우는 석탈해는 서기전 19년에 태어났다.

석탈해 기록의 이중 구조

진짜 석탈해는 누구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왜와 접촉하는 석탈해이다. 석탈해는 경주에서 왜인출신 호공집단과 연합해 사로국을 창업한다. 이 해는 57년으로 석탈해의 나이 62세이다. 금관가라(경남 김해) 정착을 시도하다 김수로왕에게 패해 어쩔 수 없이 경주로 밀려들어 온 석탈해는 경주 한복판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다. 이때 석탈해가 만날 수 있는 세력은 왜뿐이다.

백제와 싸운 석탈해는 또 누구일까. 서라벌 왕이다. 박혁거세의 손자로 쿠데타(용의 출현)를 일으켜 2대 남해왕-3대 유리왕으로 이어지는 백제출신 계보를 중단시키고 다시금 박씨 왕통을 회복한 인물이다.

경기 북부지역에서 건국된 박혁거세의 서라벌이 남하를 계속해 충북 남부지역에 당도했을 때 서라벌왕은 마한의 복암성(충북 영동) 성주 맹소의 신라 망명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백제와 만난다. 백제 2대 다루왕은 마한왕의 요구에 따라 친히 한강유역(하남 위례성)에서 낭자곡성(충북 청주)까지 내려와 서라벌왕과의 면담을 요구한다. 당시 서라벌은 경주가 아닌 청주 근처에 위치했다. 그러나 서라벌왕은 면담을 거절하고 서라벌과 백제는 와산성(충북 보은), 구산성(충북 옥천) 등에서 장장 14년에 걸쳐 치열하게 싸웠다.

왕력에서 빠진 나로왕

서라벌왕은 누구일까? 뒤를 이은 5대 파사왕의 혈통계보에 단서가 나온다. 『삼국사기』를 보면 파사왕은 ‘유리왕의 둘째아들 혹은 유리왕의 동생 나로(奈老)의 아들[儒理王第二子也或云儒理弟柰老之子也]’로 되어있다. 『삼국사기』는 두 가지 계보 가능성을 모두 열어 놓으나 이마저도 설정 자체가 오류이다. 파사왕은 유리왕의 아들이 될 수가 없다. 유리왕이 백제계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시습이 찬술한 『부도지』<징심록추기>는 파사왕을 ‘박혁거세 손자의 둘째아들’로 설명한다. ‘혁거세왕의 증손(曾孫)에 형제가 있었다. 첫째아들이 둘째아들의 신성(神聖)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즉 그 둘째아들이 파사왕이다[赫居世王曾孫始有兄弟時人曰第一不及於第二之神聖云則其第二者卽婆娑王].’ 둘째아들은 같으나 백제계인 유리왕의 둘째아들이 아니라 박혁거세 손자의 둘째아들이다. 파사왕은 박혁거세의 증손자이다. 다만 『삼국사기』가 파사왕을 유리왕의 아들로 설정한 이유는 왕통을 단일계보로 일원화한 장치이다.

이제 남은 것은 ‘나로(奈老)’라는 이름뿐이다. 나로가 바로 백제 다루왕과 격하게 싸운 파사왕의 아버지이며 <징심록추기>가 말한 박혁거세의 손자이다. 충북 남부지역에 위치한 서라벌의 나로왕이다.

역사기록의 완벽한 희생양

나로왕이 신라 왕력에서 빠진 이유는 전적으로 석탈해 때문이다. 나로왕의 아들 파사왕은 서기 94년(파사왕 15년) 경주의 석탈해 사로국을 병합한다. 기원전 57년 경기 북부지역에서 박혁거세에 의해 건국된 서라벌(신라)은 150여년의 기나긴 대장정을 끝내고 비로소 경주에 안착하며 ‘경주시대’를 개막한다. 석탈해는 바로 천년수도 경주를 신라에 제공한 인물이다. 또한 자신의 직계로 9대 벌휴왕부터 17대 흘해왕까지 13대 미추왕(김씨)을 제외한 7명의 왕을 배출한다.

이처럼 석탈해는 건국시조 박혁거세 못지않게 신라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당연히 신라사회로부터 대접을 받아야 하며 역사기록으로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석탈해는 시조에 합당한 신화를 가지며 또한 왕력에 포함된다.

다만 같은 시기 활동한 나로왕은 석탈해가 신라 왕력에 편입되면서 자신의 치세를 모두 석탈해에게 내준다. 그래서 기록은 존재하나 왕력에서 빠지는 불운한 왕이 되고 만다.

나로왕은 완벽한 역사기록의 희생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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