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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1호 교육 공약인 ‘고교학점제’가 당초 계획보다 2년이나 앞당겨 시행되는 가운데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학생의 선택권 존중 및 배움의 질 향상 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오히려 교육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교육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약이행률에 집착하지 말고 실효성 등을 따져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해 중2부터 적용…“대입·학점 엄청난 혼란 불가피”
문 대통령의 1호 교육공약인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정부는 고교학점제를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맞는 교육을 들을 수 있고 졸업이 본질적인 학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교사의 경우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성장과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고 배움의 질을 보장하는 진정한 교수·학습 전문가로 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학교도 타 학교·지역 사회 등으로 확대된 학습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2019년 총 136개교(직업계 112교·일반고 24교)에 학점제를 도입했으며 지난해 마이스터고에 우선 도입했다. 내년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대상으로 학점제를 부분 도입하고 2025년에는 전면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기대와 달리 일선 교육현장에선 고교학점제 도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당초 계획과 다르게 2023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적용하려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적용을 위한 단계적 이행계획’을 통해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23년부터 고교학점제를 단계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2023년 고교 1학년부터 수업량의 기준인 단위가 ‘학점’으로 전환된다. 고등학교 3년간 총 이수학점이 기존 204단위에서 192학점으로 바뀌고 2023년부터 3년간 총 수업시간이 기존 2890시간에서 2720시간으로 170시간 줄어든다. 다만 고교학점제의 핵심인 ‘미이수’ 제도는 2025년부터 적용된다. 이 제도는 학업성취율이 40%가 되지 않고 출석률이 3분의 2가 되지 않는 학생에게 해당 과목을 한 번 더 듣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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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이호연] ⓒ스카이데일리 |
모든 선택과목에 대한 성취평가제(절대평가) 적용도 2025년부터 적용된다. 2023~2024년에는 지금처럼 진로선택과목에만 절대평가를 적용하고 주요 과목에는 현행 상대평가 방식으로 내신 성적을 산출한다.
대입 제도도 당분간 유지된다. 현재 중1~2학년은 현행 대입제도 그대로 치르고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대입제도 개편은 2028학년도 입시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대입 4년 예고제’에 따라 2024년 2월까지 발표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앞으로 3년의 준비 기간이 있으므로 차분하게 준비하면 학점제를 둘러싼 우려들도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췄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단계적 적용이라는 단서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전면 도입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또 교원들의 역량, 학교 시설 등이 3년이라는 시간 안에 갖춰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학교 1, 2학년 학생 및 학부모는 ‘패닉’ 상태다. 고교학점제에 적용은 받지만 새로운 입시제도는 적용받지 못한다. 즉 고등학교 수업은 학점제로 받고 입시는 정시비중 40%인 현행 체제를 따라야 하는 모순이 생겨나는 셈이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정영선(여) 씨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매우 많이 놀랐다”며 “교육정책은 아이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발표하면 학부모는 물론 아이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고교학점제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울 것인데 입시는 또 현행대로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며 “우리 아이가 실험대상이 된 것 같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교육격차·인성교육 우려…“공약 이행 욕심에 부작용 생각 안해”
교육계 및 전문가들은 고교학점제 조기 도입으로 인해 교육격차가 더욱 벌어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교사 수가 부족한 시골의 경우 다양한 과목을 개설해 교육을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시설 역시 열악해 미래 교육을 지향하는 고교학점제와 괴리가 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현행 입시제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고교학점제가 조기에 도입될 경우 입시를 위한 과목에 집중도가 높아질 것이고 사교육 등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날 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의무교육기관은 기초교육과 더불어 인성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반이라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공부 이외에 얻는 부분을 학습하는데 이 같은 교육이 사라질 위기라는 지적이다.
지방의 한 사립고등학교 교사는 “3년이라는 시간이 길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며 “현재 수업 준비와 학교 업무를 병행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새로운 과목을 준비하라고 한다면 선생님들은 죽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바뀌지 않은 입시제도와 진로 교육을 강조하는 학점제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며 “입시를 위한 과목에 학생들이 몰릴 것은 당연하고 학점제로 인한 부족한 공부는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중, 고등학교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기초 교육과 더불어 인성교육을 시키는 기관이다”며 “진로 교육에 중점을 둬 학생들의 자율을 강조한다면 인성교육, 사회성 교육 등의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게 될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교원단체들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은 “철저히 준비되지 않은 고교학점제는 오히려 교육이 질을 떨어뜨리고 불평등만 초래할 수 있다”며 “다양한 교과목을 가르칠 정규 교원 확충 방안과 도·농 학생 교육 격차 해소 방안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제기된 문제들을 해소할 계획 없이 밀어붙이기를 하고 있다”며 “성취평가제 전면 확대 및 대입 제도 개편 방안 제시, 다과목 지도 교사의 수업 시수 감축, 중·소도시 및 농산어촌 지역 특별 지원 방안 등을 먼저 제시해 달라“고 촉구했다.
교육현장에서는 임기 말을 맞이한 문재인정부가 공약 이행률 관리를 위해 고교학점제를 조기에 도입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선생님들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고교학점제가 적용될지 몰랐다”며 “선생님들 사이에서 공약이행률 관리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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