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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질서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미·중간의 갈등은 더 심화하고 있고, 가치와 경제적 이익을 매개로 하는 편 가르기가 두드러진다.
위기를 먼저 탈피하려는 국가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백신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희비는 크게 엇갈린다. 백신 확보에도 네 편과 내 편이라는 진영 논리가 작동한다. 한편으론 자유세계의 질서가 크게 요동을 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형 정부의 등장과 빅 브러더(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사회체계)의 출현이 가시화되고 있기도 하다.
방역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고, 감염 경로 차단과 관련한 정보의 독점이 횡행한다. 자연스럽게 큰 정부가 대세가 되면서 이를 빌미로 무소불위의 전횡을 일삼는 권력자들이 여러 군데서 눈에 띈다. 권력의 오남용과 이에 따른 개인의 자유 침해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면서 부작용과 후유증도 심각하다. 백신 접종률이 낮은 국가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징조가 지구촌 곳곳에서 감지된다.
코로나19를 틈타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대표적 지도자가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이들은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통제로 종전의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고 종신 집권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와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도 독재에 가까운 친정 체제를 구축,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들은 공통으로 코로나 대응을 명분으로 국민 감시를 확대하고 견제와 균형 혹은 토론 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크게 훼손시켰다.
가짜 뉴스 배포나 언론 등 비판 세력을 탄압하는 국가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했던 지난해에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도 가택 수색과 연금, 휴대폰을 통한 개인 동선 추적 등 정부가 시민을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도 했다. 격리·고립·폐쇄가 일상화되면서 덜 개방되고 덜 자유로운 국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한 국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 강하게 치고 올라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백신 접종 시작 전인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확진자가 적은 아시아 국가들의 방역이 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한국은 K-방역의 우수성을 내세우면서 대내외 홍보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방역 통제 불능 상태와 의료 시스템 붕괴로 서구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비난이 거칠었다. 정부의 강제적 방역에 대한 서구 시민들의 강한 저항에 비해 아시아 국가들의 시민들은 정부 방침에 비교적 협조적이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아시아의 전통적 가치가 발현되면서 코로나가 아시아의 세기를 앞당길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경제 회복 과정에서도 아시아권이 우위를 보이면서 중국이 미국 경제 규모를 따라잡는 예상 시기가 애초의 2030년보다 2〜3년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백신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정확하게 전세가 역전됐다. 변이 바이러스까지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접종률이 낮은 아시아 국가에서 정부와 국민 간에 불신과 알력이 증가하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낮아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국내·외 비난 갈수록 거세져
중국은 코로나 상황을 시진핑 3기 집권과 연결하면서 반대 목소리를 불식시키는 작업에 속도를 낸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특색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의 색깔을 더 강화하는 붉은 자본주의의 본색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경제 발전을 유보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함으로써 기업과 중산층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기업에 무릎을 꿇리고, 민간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한층 확대되고 있다.
특히 중국 경제의 견인차인 빅테크 기업을 옥죄고 부동산·사교육·의료·게임·배달업 등 전방위적으로 압박이 증가하면서 시장이 크게 동요한다. 외국인들의 ‘차이나 엑소더스’가 늘어나고, 중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서 급속하게 이탈하는 차이나 리스크가 다시 대두된다. 민간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 마오쩌둥 시대의 유물인 모두가 잘살자는 ‘공부론(共富論)’을 들고 나왔지만 인민이 피부로 실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40여년간 자본주의에 길들은 중국 경제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로 인해 제조업 경기가 18개월 만에 최악을 기록하고 소비도 빠르게 둔화되는 등 경제 전반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도 싱가포르를 제외하고는 정국이 매우 혼란스럽다. 백신 접종률도 낮고 변이 바이러스까지 확산하면서 경제적 충격도 일파만파다. 대부분 공장이 셧다운 되면서 경제는 꽁꽁 얼어붙고 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방역 모범국이었던 말레이시아는 방역 실패국으로 반전되면서 총리가 연거푸 교체되는 등 정세가 불안하다. 태국은 잇따른 방역 부정과 비리에다 언론 탄압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방역 후진 국가로 전락했다.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와 이를 과잉 진압하는 정부와의 대치 국면이 계속된다. 미얀마는 최근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세력이 코로나를 체제 안정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폭등하고 있으며, 중국 백신 접종을 강요하는 정부와 이에 저항하는 민간과의 대치가 일촉즉발이다. 필리핀은 중국 백신을 맞은 사람들의 감염이 대폭 증가하면서 반중(反中), 반(反)두테르테 정서가 확대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다른 주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사망자 속출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어 불안한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국가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는 우리도 유사한 점이 많다. 백신 접종률을 높이고 있으나 정부의 강제적 방역 조치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피해가 큰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다. 일부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각종 편법을 찾는 꼼수까지 극성을 부린다. 정부는 이를 달래려고 선심성 재정 지출을 늘리면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다. 국가 빚은 천정부지로 늘어난다. 당장 혜택을 받는다는 사탕발림에 현혹돼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에 귀를 닫는 몰염치와 부도덕이 판을 친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생색내기 반(反)시장·기업 정책들이 연거푸 쏟아진다. 마침내 가짜 뉴스에 의한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것을 빌미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법까지 강행한다. 코로나 상황을 이용해 큰 정부의 위용을 과시하면서 정권 연장을 꾀하겠다는 속셈이 가감 없이 드러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국내는 물론이고 UN이나 국경없는기자회(RSF) 등 해외에서도 연일 제기된다. 주변국들과 무엇이 다른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위험하다.
(※전문가 칼럼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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