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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통큰 기부로 주목받은 건희 컬렉션
/사립미술관은 개인 것 아닌 사회 것
/보다 전향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
/ 최소 사립학교 수준의 지원이 절실
2021년 최대 문화계 이슈는 아마도 ‘이건희 컬렉션’ 기부 소식이 아닐까.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를 비롯한 국내외 명작들이 2만 점 넘게 국가에 기증되었다. 국보급 혹은 장차 국보급이 될 근대미술 작품들까지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양의 작품이나 유물들을 온 국민들에게 환원한 유족들의 통큰 기부는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위업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에 이 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립미술관인 리움, 간송미술관, 파라다이스시티미술관 등 사립미술관들의 역할을 주목하게 됐다. 국립이나 공립미술관은 공정성이나 여러 작가의 것을 골고루 사줘야 하는 시혜성 정책으로 컬렉션의 한계를 가진다. 이에 비해 사립미술관은 재무적인 문제만 없다면 선택과 집중으로 성격과 취향을 살려 공공미술관이 할 수 없는 방향의 수집을 행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시나 각종 프로그램 운영도 독자적 시스템과 문화콘텐츠를 창출해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사립미술관의 장점이다. 장차 한류의 방점이 될 K아트의 고공행진에 사립미술관, 상업갤러리, 국공립미술관의 공조와 협업은 필수적이다.
자유주의 국가의 경우 교육은 대개 사립학교 비중이 크다. 국가나 지자체가 모든 시설과 인력을 감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설립은 민간에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통제나 감독, 예산지원은 정부로부터 일정하게 받는 준공공기관 즉 공공재가 된다. 현행 사립학교법상 인가가 나게 되면 사실상 개인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정부가 지원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사립학교와 법적 지위가 비슷한 사립미술관이 처한 현실은 어떠한가. 유감스럽게도 몇몇 대기업 미술관 외에는 각종 인가기준을 충족하고도 실제 운영상의 지원이 미약하다 보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팬데믹 상황이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시점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박물관미술관진흥법에 의해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부터 사립 박물관미술관들이 꾸준히 설립되어, 미술관의 경우 국공립이 73관인데 비해 사립은 179관, 대학교미술관 15관까지 거의 200관에 가깝다. 사립미술관은 설립주체별로 보면 기업(법인 및 재단) 주도가 가장 많고, 개인 컬렉터 및 작가 비중도 적지 않다. 앞으로 작가들이 미술관으로 전환할 것을 염두에 두고 건설된 스튜디오 등의 예비미술관까지 감안하면 사립미술관의 수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더러는 변칙 상속이나 증여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하여 인가가 까다롭게 진행된 경우도 많지만, 중요한 것은 현행법에 따라 인가가 나는 순간 학교처럼 개인의 손을 거의 떠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물이나 소장작품 어느 것 하나 설립자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고 해당 감독관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기업이나 유력인사가 설립한 미술관의 경우는 재정이나 후원 등에서 양호하지만 대체로 운영이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개인 미술관들, 특히 작가나 유족들이 설립한 미술관들은 지자체에 기증되어 공공미술관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많다. 개인미술관을 공공미술관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떠맡는 것이며,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아야 하는 문제 때문에 의회 등에서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보면 사립미술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자유로운 문화 창달과 미래 문화재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사립미술관의 역할은 대단히 크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거래 등의 상행위를 금지시키고 있어, 일반 갤러리들이 미술시장 호황을 타고 왕성한 전시활동과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립미술관들은 힘든 침체기를 맞고 있다. 코로다 팬데믹으로 전시활동을 하기 어려운 지경이니 관람자 입장료로 간신히 적자를 메꾸어 온 사립미술관들 입장에서는 더욱 힘겨운 시기임이 분명하다. 특히 비대면 상황이 지속되면서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 등의 디지털 기술을 통한 비대면 전시가 요구되고 있지만 몇몇 기업 미술관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감생심의 노릇이다.
사립미술관에 지원되는 정부예산은 사립학교에 비하면 사실상 거의 없다 해도 무방하다. 더러 프로그램 공모에 따른 지원책이 있기는 하나 운영, 관리, 개보수, 기획, 홍보 등에 쓸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은 거의 없다. 일반 지역 문화재단에서도 미술관 지원은 조그만 규모의 대안공간만큼도 주어지지 않는다. 얼마 전 강화도 소재의 한 미술관은 지자체 문화재단에서 시행하는 지원사업에 응모했다가 탈락했다. 탈락의 사유를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무언가 납득할만한 명료한 사유가 없다.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심사현장에서 ‘부자미술관이 이런 것까지 탐한다’ ‘자기들이 자신 있어서 개관해놓고 이런 데 와서 손 내미냐’는 등의 비아냥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립미술관에 대한 일반만이 아닌 미술인들조차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기업의 경우 실적만 따지는 전문경영인 혹은 노조 어느 누구도 문화사업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재무상태가 좋은 기업에서조차 미술관 지원에는 인색하다.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사실상 간판만 기업 이름을 달았을 뿐 소유는 엄밀히 말해 기업이나 설립자의 것이 아니기에 어느 한도 이상의 투자는 인색할 수밖에 없다. 문화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가 인식한다면, 그리고 누구도 못하는 일을 독지가들이 땅과 건물, 작품까지 내놓고 문화에 뜻을 살리고자 했다면 그 다음의 몫은 그 사회의 것이 아닐까. 개인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미술관, 화려한 건물에 가려 그늘에서 힘겹게 살림을 꾸려가는 수많은 이 땅의 사립미술관이 이 상태로 방치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해가 아닐까. 많은 지원금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사립학교에 이루어지는 것만큼의 지원, 형평성 있는 지원으로 공공화하는 전환이 시급하다. 그것이 결국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환원되는 것을 우리는 지금 생생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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