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방탄소년단 보유국이라구”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스카이 View]-BTS 대통령 특사

“우린 방탄소년단 보유국이라구”

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9-24 00:02:43

이제는 ‘대한민국의 방탄소년단(BTS)’이라고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BTS는 그야말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세계인이 소유한 아티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 총회장에서 개최된 유엔총회에 참여해 연설을 해서 또 한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방탄소년단은 이날 유엔총회 특별행사 ‘지속가능한발전목표(SDG) 모멘트’ 개회 세션에서 청년과 미래세대를 대표하는 연설자로 연단에 올랐다. 2018년, 2020년에 이어 올해로 세 번째 유엔 연설이다. 7명 모두 우리말로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의 마음에 담은 메시지를 전했다. 이들을 지켜보는 한국인의 눈에는 그들이 어느 무대에 섰을 때보다도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세계의 리더들을 앞에 두고 나란히 선 멤버들은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 자격으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짤막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 중에는 특히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세계를 향한 위로의 말들이 포함됐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일종의 애도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세상이 멈춘 줄 알았는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모든 선택은 변화의 시작이다” “(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린 세대가 아니라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웰컴 세대가 되길 바란다” 등 특히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감동과 용기를 주는 말들이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방탄소년단을 청와대로 불러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단’으로 임명했다. 그리고는 이번 유엔총회에 함께 참석하도록 하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해 단상으로 불러냈다.

방탄소년단이 연설을 마치고 나오자 아미나 J 모하메드 유엔 사무부총장은 일어서서 멤버 중 한 사람과 주먹 인사를 하며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모하메드 부총장은 그날 자신의 트위터에 방탄소년단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비롯해 몇 장의 사진을 올리고 “유엔에 다시 온 것을 환영한다”면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동참해줘 고맙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유엔 연설은 전 세계에서 100만명 이상의 팬들이 실시간 방송으로 지켜봤다고 한다. 이쯤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방탄소년단을 특별사절단으로 임명한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납득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그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같은 날 오후 문 대통령과 함께 뉴욕을 방문 중인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실을 방문했는데, 이 자리에 방탄소년단이 동행했다. 물론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로 임명됐다고는 해도 영부인의 미술관 방문에 꼭 그들이 동행했어야 했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1998년 한국실을 개관해 운영하고 있다. 이 날 이곳을 방문한 김정숙 여사는 방탄소년단과 함께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신라의 금동반가사유상, 고려시대의 청자피리, 그리고 현대의 분청사기와 달항아리 등 전시품들을 감상했다. 그런 후엔 미술관 루프가든에서 진행된 한국 공예품 전달식에 참석해 김정숙 여사가 정해조 작가의 전통 공예품 ‘오색광율’을 미술관 측에 전달했다. 여기서 김정숙 여사에 이어 인사말을 전한 방탄소년단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은 “미래문화특사로서 K-컬처를 넓혀나가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날 방탄소년단의 행보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움을 지나 왠지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건 기자만의 느낌일까. 대통령 내외가 “우리는 방탄소년단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자칫하면 그 자랑은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말처럼 과한 느낌을 줄 수가 있다. 그동안 방탄소년단은 누가 임명하지 않아도 민간 외교사절단으로 국위를 선양하고 한국을 K-팝과 K-컬처의 중심으로 우뚝 세워놓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평가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이 소년들은 국가가 나서지 못하는 일에도 용감하게 나서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한·미 친선 비영리재단인 ‘코리아소사이어티’로부터 한·미관계에 공헌한 인물 또는 단체에 주어지는 ‘밴 플리트 상’을 받았을 때, 리더 RM은 수상 소감에서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중국 누리꾼들은 ‘양국의 고난의 역사’라는 부분에서 중국을 모욕했다며 크게 반발하며 보복을 서슴지 않았으나 방탄소년단은 뒤로 물러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 국민이 방탄소년단을 자랑스러워하는 데에는 이런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유엔총회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방문에서 대통령 특사로 동행한 방탄소년단의 인기와 세계적 위상에 대통령 내외가 혹 숟가락을 얹은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위상에 국민이 더욱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