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주 
/PGA 투어무대 도전장에 주위서 반신반의
/8승 거두자 “신을 감동시켰다” 호평 받아
/재단 만들어 재능 꿈나무들 지속적 후원
/‘최경주 대회’ 앞두고 노장대회 깜짝 우승
한국 남자 골프의 미국 무대 진출에 물꼬를 튼 것은 '섬소년' 최경주였다. 최경주 이전에 한국인으로서 세계 최고의 무대인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도전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1년에 약 50개 대회가 열리는 PGA투어에 마음대로 출전할 수 있는 풀시드를 따낸 것도 물론 최경주가 처음이었다. 최경주는 한국남자 프로골프의 선구자였다.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최경주는 어릴 때 각종 운동에 소질을 보여 초등학교 시절 축구와 역도 선수로 뛴 적이 있다. 완도 수산고 1학년 때 체육교사의 권유로 골프채를 처음 잡았고 재능을 보여 이후 서울로 전학, 본격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은 최경주는 1993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테스트를 단번에 통과해 직업 선수가 되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레슨 받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최경주에게 유일한 스승은 골프 관련 비디오와 책이었다. 레슨비가 없었던 최경주는 연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먹고 자면서 독학으로 골프를 익혔다. 손님이 없는 늦은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실력을 차곡차곡 쌓았다. 헝그리정신이 몸에 배게 된 이유다.
국내무대 제패 후 일본무대 진출
최경주는 1996년, 1997년 2년 연속 국내 상금랭킹 1위에 오른 뒤 시장이 더 큰 일본으로 진출했다. 1999년 일본프로골프투어에서 2승을 올린 뒤 ‘꿈의 무대’라는 미국 PGA투어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대부분은 반신반의했다. “일본에서 우승하더니 간이 부었다”는 선후배들의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PGA투어는 한국인 누구도 도전해보지 못할 정도로 벽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었다. 나이 또한 적지 않았다.
최경주는 그해 일본투어(JGTO) 상금랭킹 9위를 차지했지만 PGA 투어 퀄리파잉(Q스쿨) 토너먼트 최종전에 직행하는 행운을 잡았다. 일본투어 상금랭킹 상위 3명에게 Q스쿨 1,2차 예선을 면제해주는 혜택이 있었는데 다행히 상위권 일본인 선수들이 미국 진출을 포기하는 바람에 그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6일 동안 무려 108홀을 강행해야 하는 Q스쿨 최종전에서 공동 35위로 턱걸이하며 꿈에 그리던 미국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대로 녹록치 않았다. 2000년 1월 소니오픈에 참가했지만 결과는 컷 오프였다. 에어 캐나다 챔피언십에서는 톱10(공동8위)도 경험했지만 그해 상금액 30만5745달러(랭킹 134위)로는 2001년 시즌 출전권을 얻을 수 없었다.
별명 ‘탱크’답게 좌절 않고 재도전
그렇지만 뚝심의 최경주는 그의 별명 ‘한국형 탱크’답게 좌절하지 않고 밀고 나갔다. ‘부와 명예’가 걸린 PGA투어 우승이라는 간절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드권을 잃어 두 번 다시 가기 싫다는 ‘지옥 같은 레이스’라는 Q스쿨을 또 거쳐야만 했다. 2001년 어느 정도 영어도 되고 2년차의 여유를 찾은 최경주는 29개 대회에 참가해 19개 대회에서 상금을 받았고 톱10에 다섯 차례나 들었다. 2000년과는 전혀 다른 일취월장 행보였다. 80만326달러로 상금랭킹 65위. 2002년 출전권이 자동 확보된 이후 단 한 차례도 시드권을 잃은 적이 없었다. 최경주는 한국인으로서 애국심과 자긍심이 매우 강해 경기 때마다 캐디백과 신발에 태극기를 붙이고 다녔다. 태극기를 지켜보면 행동거지도 조심하게 되고 힘을 얻게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002 한일월드컵 분위기에 휩싸여있던 2002년 5월 6일 최경주가 미국 PGA투어 컴팩클래식에서, 그것도 총상금 450만 달러의 A급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은 경이적인 일이었다. 100여년이 넘는 골프 역사상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PGA 투어 대회를 제패한 쾌거였다. 최경주의 우승은 동양인으로는 세 번째 PGA 무대 정복이었다. 그 여세를 몰아 그해 9월 열린 PGA 투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도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승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최경주는 2005년 그린스브로 크라이슬러 클래식, 2006년 크라이슬러 챔피언십, 2007년 메모리얼 토너먼트, AT&T 내셔널, 2008년 하와이 소니오픈, 2011년 ‘제5의 메이저’라고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등 무려 8승을 거뒀다. 동양인으로서 최다 우승이다. 여자 골프에 박세리가 있었다면 남자 골프에는 ‘탱크’ 최경주가 버티고 있었던 셈이다. 최경주의 쾌거 이후 PGA무대에 진출한 한국 선수는 양용은, 배상문, 노승열, 임성재 등 무려 10여명에 이른다.
세계 남자 골프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저 미국의 골프대회에서 한번 우승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PGA투어는 다른 모든 투어에서 검증된 가장 우수한 선수들만 참가하는 꿈의 무대다. PGA 투어는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와는 차원이 다르다. PGA투어 우승 상금은 LPGA의 그것보다 평균 4∼5배나 많다. 그렇기에 PGA투어 1승은 LPGA 투어 5승에 버금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대회 평균 총상금이 450만달러(약 5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경쟁이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다.
물리적 한계를 땀과 노력으로 극복
미국에는 재능 있는 골프선수들로 넘쳐나지만 최경주는 자신의 물리적 한계를 땀과 노력으로 극복해냈다. 최경주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다. “신이 타이거 우즈를 선택했다면 최경주는 신을 감동시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최경주가 고향인 완도의 거친 바다 모래에서 익힌 벙커 샷은 예술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골프황제’ 우즈도 부러워하고 가르쳐달라고 할 정도였다. 최경주는 1m72의 탄탄한 체구에 역도로 단련된 강한 하체 힘과 어깨 근육을 바탕으로 서양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간결하고도 힘 있는 스윙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 정상을 차지한 이후 우승소식을 전하지 못했지만 높은 벽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300회 이상 컷 통과’ 선수에게 주는 조건부 시드로 PGA투어에도 출전했다.
그러나 만50세를 넘긴 최경주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의 페블비치에서 50세 이상 선수들이 출전하는 PGA 챔피언스투어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우승 소식을 전했다. PGA 챔피언스투어에서 우승한 것도 물론 처음이다. 더구나 자신이 주관하는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을 앞두고 모처럼 우승소식을 전해 의미가 각별하다. 우승상금도 3억3000만원이나 된다. PGA 챔피언스투어에는 과거 PGA무대를 호령했던 베른하트르 랑거, 알렉스 체카(이상 독일), 필 미켈슨, 프레드 커플스(이상 미국)등이 버티고 있어 우승이 만만치가 않다.
도움의 손길 되갚기 위해 재단 설립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다.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선물하고 싶다”던 최경주는 2007년 11월 최경주재단을 설립해 골프뿐 아니라 국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꿈을 펼치고 있는 꿈나무들을 위해 지속적인 후원해오고 있다. 꿈나무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물론 외부의 후원도 받는다. 골프 꿈나무뿐 아니라 재능 있는 아이들이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도록 대학 등록금과 학습비를 지원하고 있다. 2012년 10월 KPGA 투어 ‘최경주 CJ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상금 전액을 최경주재단에 기부한 바 있다.
30일 경기도 여주에서 열리는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 최경주가 출전한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대회다. 금의환향한 뒤 출전하는 국내대회여서 더욱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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