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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보다 앞서 경험한 서구 국가들을 보면 오랜 시간에 걸쳐 부단하게 정상적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사투를 벌여왔다. 선량한 시민과 탐욕적인 지배 계급 간의 원초적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전자가 안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노선을 찾아가지만, 후자는 내부 진통으로 과거에 족쇄가 묶여 공전(空轉)을 거듭한다. 이의 부작용을 해소코자 일부 개발도상국은 정상 국가로 가는 시간을 단축한다는 명분으로 개발 독재가 횡행하기도 한다. 일관성과 지속 성장을 기치로 내걸지만 선한 독재와 악한 독재로 나뉘어 결과는 긍정과 부정으로 양분된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빌미로 등장한 사회주의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혼돈과 붕괴의 과정을 거치면서 체제를 수정하거나 포기한다. 궁여지책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 대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과감성을 보인다. 궁극적으로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경제적으로는 산업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국가,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공통적 지향점을 가진다.
우리도 이런 지구촌 국가들의 흥망성쇠와 유사하지만 매우 독특한 일면을 갖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 통치와 해방,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치면서 국가 존속을 위한 산업화와 민주화가 대두되고, 이의 우선순위를 놓고서 치열한 내부 갈등과 시련을 경험한다. 다수 후진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개발 독재 권력이 주도하는 산업화에 방점이 찍히면서 민주화가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이에 대한 찬반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 경제가 현재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 되는 초석이 되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6월 국민 항쟁으로 쟁취한 1987년 직선제 개헌 헌법으로 산업화 중심의 국가 발전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민주화가 더는 미룰 수 없는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을 한다. 산업화의 그늘에서 민주화의 목청을 높인 인사들이 대거 주류 세력으로 국가의 전면에 포진한다. 소위 말하는 두 트랙이다. 단임 정부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대의 민주주의라는 형식적 모양새가 갖추어져 있기는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공존한다. 산업화 세력은 아직도 미완성 국가이고, 경제적 성취도 결코 견고하지 못하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이 쌓은 공든 탑이 허물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고 기꺼이 동참하기를 원한다. 젊은 층에 꼰대라는 비난을 받고 있고, 민주화 세력으로부터는 적폐 혹은 청산 대상으로 몰리고 있으면서도 크게 동요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산업화 세력의 그늘에 가려 을(乙)의 위치에 있던 민주화 세력이 1987년 이후 점점 갑(甲)으로 변신한다. 민주화가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에 이들의 가시적 출현은 더 나은 국가로의 발전을 위한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국민적 믿음이 크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확하게 빗나갔다. 정치는 여전히 답보 상태고 역주행한다. 그들이 도리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면서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국민을 편 가르고, 이권이 있는 곳에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익을 독식한다. 여야가 따로 없고, 큰 틀에서 보면 한통속이나 다름이 없다.
정치·경제 생태계가 환골탈태해야 제2의 도약 가능 기대
흔히들 산업화 세력은 보수, 민주화 세력은 진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무늬만 보수고 진보이지 진정한 가치가 눈에 띄지 않는다. 팔색조처럼 변신하면서 치부를 숨기고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른바 초록이 동색이다.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주군(主君)을 만들고 거기에 기생해 편법과 탈법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한다. 변해야 한다고 누구든 쉽게 이야기한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통치 시스템을 개조해야 한다고 떠들지만, 본질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본질은 사람이 변해야 하고, 교체돼야 한다. 근본이 바뀌지 않으면 어떠한 대책도 구실이나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다음 대권을 잡겠다고 나온 주자들의 면면을 보면 국민적 기대엔 크게 미흡하다.
특히 그들 주변에 모여드는 패거리들을 보면 다음 5년이 어떻게 될지가 대충 짐작이 간다. 정권이 교체되든 혹은 재창출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어떠한 권력에 의해 어떠한 국가로 거듭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두리에서 벗어나서 선진화로의 도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산업화 혹은 민주화 세력을 대신할 수 있는 신진 세력으로의 신속한 교체가 필연적이다. 지금까지의 산업화는 2등이 되기 위해 앞에 있는 추격자를 따라잡는 전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 면에서 절반의 성공은 달성했다.
하지만 우리 뒤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새로운 추격자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더는 유효한 전략이 아니다. 처음부터 1등이 되는 전략으로 변경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점점 더 없어지는 추세다. 한편 평생 편 가르기를 통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기회를 선점하려는 삐뚤어진 민주화 세력들을 우리 주변에서 퇴출해야 한다. 이들이 정치 현장에 남아 있으면 정치 선진화는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정치가 변하려면 기본적으로 권력이 특권 의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권력자가 주변 정리에 철저하지 않으면 정치 발전은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선진 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실기(失機)를 하고 있다. 낡은 틀을 단번에 깰 수 있는 대안(代案)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절반의 산업화나 민주화는 어느 국가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자랑거리가 아니다. 다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은 모든 국가에 공평하지 않다. 국민이 미지근하고,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에 관대하면 국면 전환이 이뤄질 수 없다.
글로벌 대세에 역행하면서 생겨난 급격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성장 동력 멈추는 것은 예견된 시나리오다. 엔진이 정지되면 주어진 파이를 독차지하려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판을 친다.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부르고, 특정 집단이 국가 기강을 흔드는 정치 재앙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을 부추기면서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가 초래된다. 주류 세력 혹은 세대의 교체는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진다. 시대정신에 걸맞은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 하는데 그런 운(運)이 없어 보인다. 16년의 유연한 지도력으로 두 번째 ‘라인강의 기적’을 완성하고 떠나는 독일 메르켈 총리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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