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기수를 돌린 지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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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남쪽으로 기수를 돌린 지마왕

지마왕의 남진정책 실패는 약소국 신라의 설움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1-10-06 10:13:38

파사왕의 뒤를 이은 왕은 6대 지마왕이다. 『삼국사기』는 지마왕을 ‘파사왕의 적자이며 어머니는 사성부인이다.[婆娑王嫡子母史省夫人]’라고 기록한다. 적자(嫡子)는 왕위계승의 적통자인 정실왕후의 소생을 말한다. 그런데 『신라사초』는 지마왕이 태자가 되기 전에 따로 태자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누구일까?

덕공태자와 지마태자의 갈림길

파사왕은 석탈해의 사로국을 병합후 경주에 안착하며 두 명의 왕후를 맞이한다. 석탈해의 딸 아혜(阿惠)와 김허루의 딸 사성(史省)이다. 이때 아혜는 덕공(德公)을 낳고(서기 120년), 사성은 지마(祗摩)를 낳는다(131년). 덕공이 형이고 지마는 동생이다. 덕공과 지마는 어머니가 다른 이복형제로 파사왕의 아들이다.

처음 태자가 된 사람은 덕공이다. 그런데 『달문대모기』(남당필사본)는 덕공태자가 지마에게 태자자리를 양위했다고 설명한다. 무슨 사정이 있을까? 덕공태자는 어머니 아혜왕후가 사망하면서 태자자리를 내놓는다. 이는 당시 왕실권력의 역학관계를 반영한다. 왕후가 사망 또는 어떠한 사유로 권력을 잃게 되면 그 아들 또한 권력을 잃게 된다. 그래서 덕공태자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양위의 형식을 빌려 사성왕후의 소생인 이복동생 지마에게 태자자리를 넘긴다.

금관가라에게 밀린 지마왕

지마왕 시기 신라는 처음으로 가야와 왜국을 만난다. 가야는 금관가라(경남 김해)이고, 왜국은 임나(부산 동래)이다. 아버지 파사왕이 주로 경주 북쪽의 여러 소국을 병합했다면 지마왕은 경주 남쪽으로 기수를 돌린다. 경주 정착에 성공한 박씨왕조 신라가 본격적으로 외연을 확대하며 남진정책을 펼친다.

먼저 금관가라이다. 사건의 발단은 서기 115년 금관가라가 신라 남쪽변방에서 행한 노략질이다. 『삼국사기』는 금관가라의 행위를 ‘구(寇)’로 표현한다[加耶寇南邊]. 떼를 지어 약탈하는 도적행위이다. 노략질 행위의 주체는 금관가라의 군대가 아닌 백성이다. 이에 지마왕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황산하(黃山河·경남 양산 물금)를 건너 금관가라로 쳐들어간다. 그러나 지마왕은 서기 115년과 116년, 두 차례에 걸친 공격 모두 실패한다.

이 사건은 당시 신라와 금관가라의 역학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마왕의 신라는 금관가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마디로 지마왕은 금관가라를 너무 쉽게 보았다가 당한 것이다.

왜국(임나)과의 불편한 관계 형성

다음은 왜국이다. 왜국은 임나이다. 지마왕은 금관가라 공격이 실패하자 121년 대증산성(大甑山城)을 쌓는다. 대증산성은 지금의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소재한 동평현고성이다. 지마왕은 대증산성을 전초기지로 삼아 서쪽의 금관가라를 압박할 심산이다. 원래 대증산성 지역은 임나의 지배영역이다. 임나는 석탈해와의 인연 때문에 대증산성을 일시적으로 신라에 양도한다.(※ 석탈해는 왜출신 호공의 도움을 받아 경주에서 사로국을 창건했다.)

그런데 신라는 대증산성을 쌓은 직후인 서기 121년 4월, 곧바로 임나(왜인)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듬해 4월에는 임나(왜병)가 경주 도성을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져 신라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일본서기』에 내막이 나온다. 일본의 고대국가 구주왜(九州倭) 숭신왕(崇神·10대)이 죽어 임나왕족 소나갈길지(蘇那曷叱智)가 조문단으로 일본에 파견된다. 이어 소나갈질지는 숭신왕의 뒤를 이은 수인왕(垂仁·11대)으로부터 비단 100필을 선물로 받고 귀국하는데 대증산성의 신라인들에게 비단을 모두 탈취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두고 『일본서기』는 ‘이때부터 두 나라의 원한이 시작되었다[其二國之怨始起於是時也]’고 기록한다. 다시 말해 신라의 비단 탈취사건이 계기가 되어 임나가 보복차원에서 신라를 공격한다.

특히 『삼국사기』는 임나의 신라 공격이후인 123년 신라가 왜국과 강화를 체결한 것으로 나온다[與倭國講和]. 원래 강화는 쌍방이 동등한 관계에서 체결하는 것이 아니다. 한쪽은 강자이고 또 한쪽은 약자이다. 약자인 신라는 강자인 임나에게 불문곡직하고 머리를 숙인다.

결과적으로 지마왕의 남진정책은 실패로 끝난다. 금관가라에게는 힘에 밀리고, 우호관계의 임나는 적대관계로 변화한다.

지마왕의 남진정책 실패에는 약소국 신라의 설움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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