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대선판 ‘막말’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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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Talk]-민생 위한 자세 절실

이어지는 대선판 ‘막말’ 퍼레이드

오주한 정치전문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1-10-21 00:02:33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정점에 올랐거나 정상을 목전에 두고서 말 한마디 잘못해 패가망신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침묵은 금이다(Silence is golden)”나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식자(識者)들은 ‘막말’을 경계했다.

실언을 내뱉었다가 땅을 치고 후회한 대표적 인물은 가까이로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있다. 그는 2004년 3월 대학생 기자단과 만나 청년층 투표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미래는 20‧30대의 무대다. 그런 의미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라고 말했다가 감당할 수 없는 역풍을 맞았다.

우선 총선 비례대표 후보직을 반납하고 백의종군(白衣從軍)해야 했다. 해당 망언은 약 3년 뒤인 2007년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17대 대선 본선에 오른 정 의장은 이명박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에게 20％p 이상 득표율 격차로 참패하고 말았다.

멀리 있는 막말 사례로는 서기 3세기 진(晉)나라 황제였던 사마충이 있다. 그가 남긴 대표적 ‘명언’은 “곡식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앙투아네트와 달리 사마충의 발언은 엄연히 진서(晉書)·자치통감(資治通鑑) 등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다.

사마충의 하불식육미(何不食肉糜)는 수백년 뒤 구전(口傳) 등을 기반으로 작성된 다수 역사책에 기록될 정도로 전국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 당대 백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그는 민심이 악화되고 팔왕의 난이 발발하자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결국 동해왕 사마월 집권 후 어이없게도 떡을 먹다가 체해서 목숨을 잃었다.

다만 여러 사서에서 사마충이 지적장애인으로 기록된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즉 그의 망언들은 심성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그저 어린아이 같은 백치적 순수함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현대 학계의 중론이다.

대선을 앞두고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단연 ‘막말’이다. 여당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형수 관련 발언이 구설수에 올라 곤혹을 치른 바 있다. 그는 해당 발언을 인정하고 사죄했지만 이후로도 ‘미개인’ 등 설화(舌禍)를 겪고 있다. 야권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국민의힘 해체’ 등으로 논란이 됐다.

근래에는 한 대선주자의 약 4년 전 발언이 회자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7년 5월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대표는 이 인물에 대해 “지난 2월 공무원 대상 강연에서 대학 시절 자신에게 퇴짜 놓은 여학생을 ‘씨X년’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바른정당도 “막말 퍼레이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고 거들었다. 해당 인물 측은 “박 전 대표가 가짜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가 “2017년 기사에 입장을 낼 것도 없고 박 전 대표가 유세차에서 거친 언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는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 교수 데이비드 이스턴의 말처럼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다. 국민이 원하는 건 대선주자들의 심성 논란이나 각종 의혹을 ‘가짜뉴스’로만 몰아붙이는 태도가 아니라 민생(民生)을 위해 준비된 자세다. 우리 정치권에서 막말이 사라지는 그 날을 손꼽아 고대해본다.

오주한 정치전문기자 jhoh@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