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진칼럼] 1표가 개인과 나라와 세계의 운명을 바꿨다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총알보다 강한 1표’가 역사를 뒤바꾼 국내외 선거 이면사

조정진 발행·편집인 기자페이지 + 입력 2021-10-26 09:40:06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용어가 소환됐다. 중도에 사퇴한 김두관·정세균 두 후보의 득표수를 총투표자수에서 빼는 바람에 ‘49.31%→50.29%’로 결선 투표 없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그러나 뒷심을 발휘하던 이낙연 후보 캠프에선 사사오입개헌 사건을 거론하며 거칠게 항의에 나서 경선 후유증이 만만찮다. 1% 차의 반란이다.

아슬아슬하게 1표 차이로 선거 결과는 물론 개인과 인류 역사가 뒤바뀐 사례가 꽤 된다. 우리나라의 1954년 사사오입개헌 사건도 1표가 문제였다. 집권 자유당의 이승만 대통령 중임제 개헌안 통과를 위해선 의원 203명의 3분의 2인 135.33명 이상, 즉 최소 136명이 찬성해야 했다. 개표 결과 찬성 135명, 기권 7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이틀 후 자유당은 “세상에 0.33명은 없으니까 135명이 3분의 2”라며 ‘4 이하는 버리고 5 이상은 끌어올리어 계산’하는 사사오입 이론을 적용해 가결을 선포했다. 희대의 코미디였다.

선거에서 1표 차 당락 사례는 이따금 있다. 그중 가장 극적인 사례는 재검표 과정에서 세 번이나 당락이 바뀐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충남 청양군의원 개표 결과다. 3명을 뽑는 선거에서 무소속 김종관 후보와 민주당 임상기 후보는 똑같이 1399표를 얻어 공동 3위가 됐다. 재집계 끝에 김 후보가 1표 차로 앞섰으나 재재집계에선 동수가 돼 연장자 우선 규정에 따라 임 후보가 당선자로 선포됐다가, 법정에서 다시 뒤집혀 김 후보가 최종 당선자가 됐다. 모두 1표 차로 엎치락뒤치락 한 것이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1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사례는 13건이나 된다. 제2회 때인 1998년 충북 청원군의원 선거에서 장원재 후보가 1167표로 1166표를 얻은 김영근 후보를 물리쳤다. 제3회 때인 2002년 충북 충주시의원 선거에서 1표 차로 낙선했던 곽호종 후보는 제4회 때인 2006년엔 1표 차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2008년 강원 고성군수 보궐선거 때는 4597표로 동수가 나와 현장 재검표 끝에 1표 차로 황종국 후보가 당선됐다. 선관위는 “선거법상 없는 절차이지만 후보들을 위해 재검표를 실시했다”고 말해 부정선거 의혹이 수두룩한데도 재검표를 방해하는 현 중앙선관위와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2015년 폐지된 간통죄는 2008년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4인, 위헌 5인으로 6표를 얻어야 하는 ‘위헌’ 정족수에 1표 모자라 7년을 더 버텼다. 2019년 부천시의회는 찬성·반대 각 4명, 기권 1표로 과반인 5표를 못 넘겨 예산을 전액 삭감당해 야간약국이 없어졌다. 2020년엔 국기모독죄가 헌법재판소에서 1표 차이로 합헌을 유지하게 됐고, 동갑내기 두 변호사가 맞붙은 부산변호사회 회장 선거에서도 1표 차이로 황주환 후보가 당선됐다.

1표 차가 역사를 바꾼 사례는 다른 나라에도 있다. 영국 국왕 찰스1세는 1645년 의회 표결에서 91대 90, 1표 차로 총사령관에 임명된 크롬웰에 의해 처형됐다. 공교롭게 그의 운명을 가른 1649년 재판 결과도 68대 67로 1표 차였다. 1800년 토머스 제퍼슨은 하원에서 1표 차로 제3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고, 1824년 제6대 대선 역시 1표 차로 존 퀸시 애덤스가 승리했다. 1839년 미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서는 현직인 에드워드 에버렛 주지사가 투표를 독려하다 정작 본인이 5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투표를 못해 1표 차이로 낙선했다. 1868년 앤드루 존슨 제17대 미 대통령은 1표 덕분에 탄핵소추를 모면했다. 1875년 프랑스에선 왕정당 의원 한 명이 배앓이로 불참하는 바람에 1표 차이로 제3공화국이 성립됐다.

영어가 단독으로 미국 공식어가 된 것도 1794년 3000여개의 연방 법률을 영어와 독일어로 반포하려는 미 하원의 표결이 찬성 41표, 반대 42표로 부결됐기 때문이다. 건국 초기 미국엔 독일계가 잉글랜드계보다 많았다. 1945년 텍사스를 미국 영토에 포함할지 여부를 놓고 한 의회 투표도 1표 차이로 가결됐다. 인류 역사상 가장 불행한 1표는 1923년 아돌프 히틀러를 독일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 당수로 만들어준 1표였다. 1934년 총통에 오른 히틀러는 민주공화제 타도·반유대주의 등 25개 조항의 당 강령을 발표하며 독일을 장악,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5000만명을 희생시켰다.

1927년 마오쩌둥은 “정치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이보다 60여년 앞선 1861년 제16대 미 대통령에 당선된 에이브러햄 링컨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고 했다. 부정선거 논란 속에서도 투표는 해야 한다. “나 하나쯤이냐” “투표 하면 뭐해”하는 안일한 태도로는 결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 결국 1표가 모두를 살리거나 죽일 수도 있다.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도 깐부 할아버지의 1표와 구슬 하나로 생사가 오락가락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