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불신 만연한 중고차, 개방 없인 공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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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21-10-26 00:02:50

중고차 시장 규모가 신차 시장을 압도한 지 오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차 이전등록 대수는 395만대다. 신차등록 대수인 191만대보다 무려 2배나 크다. 중고차 시장 규모가 매년 5%씩 고속 성장하다보니 2025년에는 시장 규모만 50조원에 달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중고차 시장이지만 소비자 불신이 만연하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소비자상담센터에 신고된 중고차 관련 상담건수는 1만8002건이다. 스마트폰과 정수기 대여, 점퍼·재킷류에 이어 4위다. 1000만원이 넘는 고가의 내구성 소비재 중에선 중고차에 대한 불만이 압도적이다. 심지어 5월에는 허위 중고차 매물을 올린 업자에게 속아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화물차를 산 6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들 사이에선 대기업이 중고차 판매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하루빨리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한 이후부터 대기업의 신규 진입과 확장이 금지된 상태다.

2019년 동반성장위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제한 기간이 끝나면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허용 근거가 마련됐지만 관할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아직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당초 중고차상생협력위원회를 만들어 업계 간 협의를 진전시키려 했지만 중고차 매매업계가 불참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중고차 시장 개방 협의는 처음 논의가 시작된 시점을 기준으로 2년 8개월, 개방 여부에 대한 법정 결정시한 기준으로 1년 5개월째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빠져있다.

중고차 매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제외되면 대기업이 중고차 판매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소상공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기존 중고차 판매업자 입장에선 강력한 경쟁자가 생겨나는 만큼 중고차 시장을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제외하는 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생존권 위협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막대한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입할 경우 기존 중고차 판매업자들의 매출이 감소하는 등 피해가 우려되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간 중고차 시장에서 발생한 소비자 피해를 감안하면 대기업 허용이라는 극약처방이 불가피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소비자를 속이는 허위매물 피해가 빈번한데다 일부에선 욕설과 협박까지 서슴치 않을 정도로 낙후됐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높아지면서 중고차 매매업자를 통한 거래도 급감하는 추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차 거래에서 개인 간 거래가 54.7%를 차지했다. 매매 업자를 통한 거래는 45.3%였다. 미국, 독일 등 해외에선 중고차 개인 직거래 비중이 30% 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국내 소비자들이 매매업자를 통한 중고차 거래를 불신한다는 반증이다. 굳이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더라도 신뢰를 잃은 중고차 시장이 얼마나 더 생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중고차 시장에 영세 소상공인들이 많다곤 하지만 생계형 적합업종의 취지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8년 12월 시행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은 소상공인의 경영안정과 소득향상 도모 외에도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기존의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 피해가 다수 발생한다면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이라는 목적과도 어긋난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심의한 동반성장위원회도 이미 2019년 11월 중고차 시장은 생계형 적합업종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중기부에 제출했다. 동반위가 심의한 업종 중 부적합 결론을 내린 건 중고차 판매업이 유일했다.

중기부가 중고치 시장 개방을 미루고 있는 걸 두고 소비자 피해를 방관한 채 직무유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을지로위원회가 주관한 ‘중고자동차 산업발전협의회’이 최종 결렬되면서 공은 주무부처인 중기부 산하 ‘생계형적합업종지정 심의위원회’로 넘어온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중고차 시장 개방을 미루다간 국내 중고차 시장 자체가 공멸할 거라는 우려를 지우기 힘들다.

물론 중고차 시장이 갖고 있는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말 그대로 극약처방이자 차악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건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법·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투명한 경쟁을 촉진시키되 중고차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를 기만하는 불법·부정행위에 대해선 지금보다 처벌의 수위를 높이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한다. 허위매물 한 대를 팔면 수백만원의 차익을 얻는 반면 적발됐을 때 내는 벌금은 고작 30만원에 불과하다. 어쩌다 단속에 걸리면 운이 나빴다고 치부할 수 없을 정도는 돼야 한다.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