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릉 
전주 
진영 논리의 극대화가 만들어낸 낯선 구도
민주주의, 도덕성 등 가치 판단은 뒷전으로
양극화로 인한 ‘보이지 않는 얼굴’과의 싸움
野, 정권 교체 바란다면 이대로는 안 된다
임기가 얼마 안 남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40%는 이례적이다. 비슷한 시기 노무현은 16%, 이명박은 25%를 기록했다. 문재인은 임기 내내 무능의 연속이었고 따라서 이렇다 할 업적도 없다.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은 것만 자꾸 떠오를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여론조사 자체를 의심한다. 여론조사 업체들이 친(親)정부적이어서 엉터리 수치를 내놓는다고.
충분히 이해한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피부로 느껴지는 지지율과는 거리감이 워낙 크니까. 그러나 여론조사는 흐름이다. 같은 결과가 한 두 번이면 몰라도 계속 반복돼 나타난다면 믿을 만하다고 봐야 한다. 문재인 지지율은 7월부터 3개월 이상 40%를 유지하고 있다(리얼미터 조사). 이 정도라면 ‘부풀린 허상’일 수 없다.
일단 현실 인정을 하고 본다면 다음 궁금증은 임기 말 지지율이 왜 이렇게 높게 나오는 가로 이어진다. 여러 해석 중에서 좌파 지지자들의 ‘노무현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시각은 꽤 설득력이 있다. 노무현 임기 종반에 지지층마저 그를 외면했다가 불행한 사태를 맞았던 기억 때문에 끝까지 뭉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경찰, 사법부 등 권력 감시기관들을 총체적으로 장악하고, ‘이중 잠금장치’인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까지 추가함으로써 정권 스캔들이 절대 외부로 드러나지 못하게 틀어막고 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정권 반대를 위한 아날로그 행동들이 원천 차단되고 있는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명료하게 지지율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가운데 눈에 띄는 자료가 나왔다. 미국의 유력한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17개국 정치집단 사이의 갈등 정도를 조사한 내용이다.
주요국 성인 1만8850명을 대상으로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얼마나 심한가”라는 설문을 제시했다. 결과는 한국이 미국과 공동으로 1위였다. 무려 90%의 한국인이 ‘심하다’ ‘매우 심하다’라고 응답했다. 언제부터인가 편이 갈리면서 각종 모임에서 서로 정치 얘기는 삼가는 게 불문율처럼 돼버리긴 했지만 이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
한국과 공동 1위라는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민주당과 공화당 양대 정당이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선거 때마다 으르렁대는 나라 아닌가. 선거가 치러지면 득표율 51% 대 49%처럼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엇갈릴 때가 많다. 패배한 쪽에서는 겉으로는 ‘아름다운 승복’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다음번에 보자”며 이를 갈고 있음은 안 봐도 척이다.
저런 나라에 살면 선거 때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크고 분위기가 살벌할까 싶었는데 남 얘기가 아닌 것 같아 덜컥 겁이 난다. 요즘 해외뉴스에 대만 국회에서 막장 난투극이 벌어진다는 소식이 종종 나오지만 그 대만도 우리보다 훨씬 낮은 69%, 이념 갈등이 유난하다는 프랑스도 65%의 수치에 머물렀다.
물론 한국의 수치가 실제보다 높게 나왔을 수는 있다. 얼마든지 틀릴 수도 있는 게 여론조사니까.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진영 대립과 분열 상태가 중대한 사회 문제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이래서야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을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건 나라를 걱정하는 선량한 국민들의 생각일 뿐이고, 문재인 정권의 입장에선 그동안 펼쳐온 ‘편 가르기’ 전술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가을바람과 함께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서 이런 형세가 내년 3월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시중에서는 정권 교체의 여론이 높다지만 여야 유력 후보들이 모두 비(非)호감 인물들로 채워진 대진표의 구성 상 실제 선거는 또 다른 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레이스에서 확 치고나오는 선두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여권 후보로 낙점된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의혹’으로 수세에 몰려 있지만 야권 후보들의 결점과 한계도 만만치 않다. 야권의 유력 주자인 윤석열의 경우도 자고 나면 또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캐릭터임에 틀림없다. 유권자들이 누구를 덜 비호감인가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판이다.
현 정권의 뻔뻔한 위선 정치에다, 입으로만 민생을 떠드는 쇼 정치에 질린 나머지, 앞으로는 이런 사람들을 그만 봤으면 하는 유권자들이 많다. 이들은 나라의 미래를 팔아 표와 권력을 ‘구매’하는 행태에도 혐오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은 여론 광장에서 겉으로 드러난 일면에 불과하다. 이와는 또 다른 강력한 정서가 한편에 자리 잡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여권은 내년 대선이 ‘이익 투표’로 흐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익 투표’는 내가 속한다고 여기는 진영의 승리를 무조건 앞세우는 투표 행태다. 우리 편이 권력을 잡는 게 최우선이므로 민주주의, 도덕성, 대통령 자질 등의 가치 판단은 뒷전으로 밀린다.
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 40%도 따지고 보면 이처럼 철저한 진영 논리가 빚어낸 것이다. 과거엔 정권이 실적을 내지 못하면 고개를 숙여야 했으나 이제는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은 그들대로 정권 편을 들며 똘똘 결집한다. 낯선 정치구도의 출현이다.
과연 여권의 계산대로 ‘이익 투표’가 이뤄질지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하겠지만 선거공학에서 확실한 40%를 손에 쥔 후보는 크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대장동 의혹에서도 잡아떼기, 모르쇠, 말 바꾸기로 일관하며 “흐흐흐” “크크크” 웃음소리를 내는 이재명 후보의 ‘믿는 구석’이다.
사회 양극화 속에서 소외감을 넘어 절망감을 느끼는 계층이 크게 늘었다. 복지로 포장한 현 정권의 노골적인 현금 살포에 대해서도 나중에 나라가 망할지 몰라도 당장은 반기는 사람들이 많다.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청은 크게 들리지만 현금 뿌리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야당에 이번 대선은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얼굴’과의 힘겨운 싸움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은 예선만 통과하면 대권을 손에 쥐는 것처럼, 이재명만 공격하면 다 되는 듯 움직이고 있다. 야권이 진정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차가운 현실 인식과 전열 정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1
감동이에요0
화나요2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