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길선의 백제 망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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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길선의 백제 망명사건

신라와 백제, 두 나라 영토전쟁의 계기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1-10-28 09:35:58

신라 8대 아달라왕 시기 아찬 길선(吉宣)이 백제로 망명하며 신라와 백제 양국 간에 정치적, 군사적 파란을 일으킨다.

『삼국사기』 기록의 길선 망명사건

『삼국사기』<신라본기> 아달라왕 기록이다. ‘아찬 길선(吉宣)이 반란을 꾀하다가 발각되자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백제로 도망쳤다. 왕이 글을 보내 그를 요구했으나 백제가 허락하지 않았다. 왕이 노하여 군사를 보내 정벌하였는데 백제는 성안에서 지키기만 하고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는 양식이 떨어져 돌아왔다(阿飡吉宣謀叛發覺懼誅亡入百濟王移書求之百濟不許王怒出師伐之百濟嬰城守不出我軍粮盡乃歸).’ 발생년도는 아달라왕 12년인 서기165년이다. 이 내용은 <백제본기>에도 똑같이 나온다. 다만 발생년도는 개루왕 28년인 155년이다. <신라본기>와는 10년 차이가 난다.

사건 내용은 간단하다. 신라 길선이 백제로 망명하자 아달라왕은 길선의 송환을 요구하고 백제 4대 개루왕이 이를 거부한다. 이에 아달라왕은 군대를 보내 백제를 공격하지만 백제가 대응하지 않고 수성을 고집하자 군량이 떨어져서 회군한다. 『삼국사기』가 서술한 신라 길선의 백제 망명사건 전모(全貌)이다.

길선 망명 사건의 실체적 접근

그런데 『신라사초』에 상세한 내막이 나온다. ‘길선(吉宣)이 모반한 일이 드러나자 부여(백제)로 도망했다. 왕이 부여에게 길선을 바치라 명하였으나 부여가 듣지 않았다. 왕이 크게 노하여 장군 대해(大解)에게 서로군(西路軍)으로 부여를 칠 것을 명했다. 길선은 길문(吉門)의 손자로 밀화(密華)의 아들이다. 그의 딸을 부여로 시집보내 부여의 좌평(左平)이 되었다. 부여의 골녀(공주)에게 장가들어 자녀 10여명을 낳고 부여의 도성에 큰 저택을 두었다. 왕이 다른 계략을 의심해 군대의 일을 맡기지 않았다(吉宣謀反事覺走入夫余上命夫余獻之夫余不聽上大怒命大解將西路軍伐夫余吉宣以吉門之孫密華之子嫁其女於夫余而仍爲夫余左平娶夫余骨女生子女十余人置廣宅于其都上疑其有異謀不以兵事委之).’

정리하면 이렇다. 길선은 신라귀족 길문(吉門)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길원(吉元)이며 어머니는 신라 6대 지마왕의 딸인 밀화(密華)공주이다. 길선의 몸에는 신라 왕족의 피가 흐른다. 특히 길선은 백제 개루왕에게 자신의 여동생과 딸을 바치고, 자신은 개루왕의 딸과 혼인한다. 이런 연유로 길선은 신라와 백제 양국에 큰 저택과 처첩을 두고 막강한 권세를 누린다.

그러나 길선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마음을 먹는다. 자신이 직접 신라왕이 될 욕심으로 반역을 꾀하다가 오히려 신라 아달라왕에게 제압되며 백제로 도망간다. 문제는 백제 개루왕의 태도이다. 개루왕은 길선의 행위가 도에 어긋남에도 길선이 매형이자 장인인 까닭에 감히 인정을 끊지 못하고 길선의 보호막 역할을 선택한다.

결국 아달라왕은 개루왕이 길선을 돌려주지 않자 백제를 공격한다. 『삼국사기』<신라본기>와 <백제본기>가 소략해 기록한 길선 망명사건의 또 다른 이면이다. 특히 『신라사초』는 길선 망명사건으로 인해 ‘이때에 이르러 결과적으로 반하여 양국이 화친을 잃게 되었다(至是果反兩國失和)’고 기록한다.

초기 신라와 백제의 본격적인 영토전쟁의 시작

길선 망명사건은 초기 신라와 백제의 관계가 우호적에서 적대적으로 변화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또한 이를 계기로 두 나라는 본격적인 영토전쟁을 벌이며 한반도 고대국가의 중심축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영토전쟁의 시작은 길선 망명 사건 2년 후인 서기 167년에 벌어진 조비천(현 충북 옥천군) 전투다. 조비천은 추풍령 서쪽이다.

이후에도 두 나라는 계속해서 충돌한다. 모산성(충북 진천), 구양성(충북 괴산), 원산향(경북 예천), 부곡성(경북 군위), 와산성(충북 보은), 요거성(경북 상주) 등으로 모두 소백산맥 주변 일대이다. 신라의 경우 아달라왕의 뒤를 이은 벌휴왕 시기이며, 백제는 개루왕의 뒤를 이은 5대 초고왕 재위 시기이다. 이로써 두 나라는 소백산맥을 기준으로 자연스레 경계선이 그어진다.

길선 망명사건은 초기 신라와 백제, 두 나라의 관계 설정을 가름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전문가 칼럼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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